파도를 이겨내는 법
선상괴담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
-속담
비 오는 밤이었다. 비록 커튼을 쳐서 밤도 비도 보이지 않았지만, 커튼을 뚫고 적도의 음기가 선내에 들이닥쳤다. 어째서인지 조명이 평소보다 더 어둡게 느껴졌다. 선배는 어묵탕을 안주로 맥주를 마시며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우리의 두 발을 의지하고 있는 이 배에는 과거에 선원이 두 명 죽었어.’
이 한마디에 부원식당에 있던 모든 양기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술에 취한 듯 정신이 몽롱해지고 내 기분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그 시기로 빨려 들어간 듯했다.
‘이곳에는 서른네 명이 타고 있지만 고인들의 혼까지 포함해 사실 서른여섯 인 거지. 가끔 배식할 때 접시를 맞춰놔도 한 두 개가 모자를 때 있지? 그건 고인이 배고파서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러 왔기 때문이야.’
실제로 접시 숫자를 계산해서 놓아두었는데 한 두 장이 모자를 때가 있었다. 이전에는 실수였거나 했지만, 이후에는 자꾸 망자들이 떠올라 소름이 돋기도 했다. 아무리 정확히 접시 개수를 세도 이런 현상은 빈번히 일어났다. 말 많은 사람에게 두 시간 동안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들으며 기를 다 빨린듯한 표정을 짓자 선배는 신나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한 번은 말이지 식료품 창고에 들어갔는데 영하 20도의 고기창고 안에서 두 사람이 대화하는 소리를 들었어. 두꺼운 스뎅 문을 뚫고 나올 정도로 하이톤의 목소리였지. 가끔 창고에는 주니어 사관들이 개인 부식을 가지러 오기도 해서 인사나 하려 들어갔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선배의 초점이 어긋난 눈은 그때 당시를 회상하며 느낀 감각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옆 테이블마저 선배 이야기에 집중하기 시작하자 선배는 신들린 듯 말을 이어나갔다.
‘부모님 중 한 분이 무당인 모 선원은 이 배에서 자주 가위에 눌렸어. 부모님께 이야기하니 부모님은 자정에 방 네 개의 모서리에 동전탑을 쌓아 놓으라고 했대. 그 후에 방 가운데에 촛불을 놓고 촛불이 다 타오를 때까지 망자를 향한 기도를 드리라고 했어. 무당은 그 후에 동전을 전부 바다에 던지라고 했는데 던진 후에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뒤돌아 보지 말라고 몇 번이고 이야기했대. 선원은 부모님의 말 대로 기도를 드리고 동전을 바다에 던졌어. 방에 돌아가기 위해 뒤로 돌아서자마자 익숙한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리며 어딜 가냐고 같이 놀자며 소리를 쳤대. 방에 돌아와 시계를 봤는데 4:44분이었다는 거야. 그 선원은 기도한 시간이 길어봐야 한 시간 정도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지.’
그 외에도 음기의 바다에 떠다니다 보면 귀신을 보는 건 으레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베테랑 마도로스들의 말이 있었다. 오랫동안 배를 탄 사람 중 귀신을 보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이제는 옆 테이블뿐 아니라 뒷 테이블까지 음기의 파도가 넘쳐버린 모양이었다. 조타수 직책을 맡고 있던 어느 갑판장은 자기도 봤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북해도와 사할린을 정기운항하는 컨테이너선을 탔었어. 겨울이면 북해도와 사할린의 산들이 흰 눈으로 뒤덮여 눈부시게 아름다웠어.
야간에 사할린 항구에 입항하는 날이었어. 도선사가 탑승하고 All station standby가 되어 밤에 줄을 잡으러 내려갔어. 달빛이 강해 세상 모든 것을 밝게 비춰주던 날이었지. 조금은 떨어진 섬에 쌓여있는 눈이 달빛에 비쳐 배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반짝이는 게 너무 예쁘고 신기했어. 여기에 정신이 조금 팔렸던 거 같아. 항구에 도착하기 전 작은 어촌을 지나는데 많이 피곤해서 정신이 살짝 아득해졌어. 흰 눈이 덮여있는 산은 어느 여성의 머리처럼 보였고 마을과 약간의 작은 불빛은 사람 얼굴처럼 보였고 수면에 길게 늘어져 비친 산과 마을이 어느 한 많은 여인의 소복처럼 보였어. 신기해하고 있는데 조금씩 정말 사람의 형태로 변하는 거야. 그 상황에 신기하게도 귀신이 예뻐 보이더라고. 멀리서 조금씩 사람의 형태를 띠어가는데 기쁨과 두려움이 동시에 들 무렵 귀가 찢어질듯한 고음의 소리가 나며 잠에서 깬 듯 정신이 차려졌어. 그게 꿈이었는지 현실인지 아직도 분간이 안가. 그 일이 있고 얼마 뒤 북해도에 앵커를 박을 일이 있어서 호텔에 머물렀는데 텔레비전에서 설녀(유키온나)가 나왔는데 딱 그 모습이더라고.”
나는 귀신이 두렵지도 않고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날의 잠자리는 뒤숭숭했다. 다음 날 평소와 같이 새벽 5시에 부식창고로 내려갔다. 육고에서 이야기가 들렸다는 선배의 말이 떠올라 긴장했지만 다행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야채고에서 계란을 꺼낸 후 문을 닫고 나왔는데 문이 다시 열렸다. 창고 문은 절대 혼자 열릴 수 없는 딸깍 소리가 나며 밀폐되는 문이다. 냉장창고는 평소보다 조금 더 으슬으슬하게 느껴졌고 온몸에는 닭살이 돋았다.
파도를 이겨내는 법
자신 스스로를 믿어준다는 것은 아마도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거라 생각해요
당신은 뭐든지 할 수 있어요
-밥 로스
원양상선의 주방에서는 매일 오후 5시면 B데크의 갤리(주방)에서 일 인분의 저녁식사를 담는다. 오늘의 메뉴는 청양고춧가루와 파프리카가 들어간 찜닭 그리고 불향이 가득한 숙주나물이다. 정갈하게 담은 도시락을 들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벽에 기댄 채 뻑뻑해진 눈을 잠시 감는다. 바쁜 주방 업무에 그동안 눈 깜빡이는 것을 깜빡했다는 걸 눈치챈다. 눈에 눈물이 다 차오르기도 전, 야속한 엘리베이터는 도착한다. 정원이 5명인 작은 엘리베이터의 정면에는 큰 거울이 달렸다. 풀 죽은 나를 마주하기 싫다. 시선을 낮게 깔고 바닥에 다른 선원의 발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탑승한다. 브릿지(선교)까지 다섯 개 층을 올라가는 짧은 시간은 긴 한숨을 내쉬기에도 부족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에 하늘과 바다가 있다. 2m 길이의 강화유리 10장이 파노라마처럼 붙어있다. 아파트 14층 높이의 선교에서는 인도양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하늘이 유리처럼 맑은 날의 가시거리는 10마일(16KM)이다.
MUSCAT호는 중동을 정기운항하고 있다. 한국에서 출발하여 동중국해와 남중국해를 지나 싱가포르 해협을 건너고 뱅골만을 넘으면 아라비아해의 오만이나 카타르에 도착한다. 그동안 다섯 번의 타임존(시간대)을 통과한다. 매일 5시면 선교에 오르지만 위도와 경도, 시간에 따라 천해만별(天海萬別)의 하늘과 바다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덕분에 밥을 올리러 선교에 갈 때마다 매번 다채로운 화장과 헤어스타일, 옷차림을 하는 여자 친구와 만나는 것처럼 기대하는 마음으로 올라간다.
태양이 강해질수록 얼굴이 붉게 변하는 나와는 다르게 바다는 빛을 받을수록 푸르러진다. 반면에 하늘이 햇빛을 가리면 바다는 생기를 잃고 즉시 회색으로 변한다. 그날을 마주하기 전까지 가장 애정했던 기억은 하늘이 바다색이었고 바다가 하늘색이어서 수평선의 경계 없이 하늘과 바다가 이어진 것이었다. 파스텔 블루와 우유가 섞인 듯한 화이트홀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일등 항해사가 타수를 잡고 있다. 내게 곁눈질로도 시선을 주지 않고 오직 정면을 바라보며 사무적인 인사를 건넨다. 시선과 손을 떼지 않고 파도와 두려움을 무찌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만 집중한다. 거대한 머리통과 두툼한 어깨근육이 있는 그의 뒷모습에서는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LNG선과 35명의 운명을 쥐고 있는 수호자가 지속적으로 앞을 견시하며 식사를 할 수 있게 유리창 바로 아래 망원경과 서류철이 놓여 있는 선반에 밥상을 차린다.
밥상을 차리는 동안 곁눈으로 배의 미래를 구경한다. 바다가 성나있다. 국그릇에 담긴 미역국이 배의 롤링에 철렁거린다. 반만 담겨있는데도, 곧 국그릇을 넘어가버릴 것처럼 위태롭다.
뱃머리에서 바다를 가르며 물보라를 일으키는 소리, 시속 38km로 나아가는 배와 적도의 무거운 공기가 부딪히는 바람소리, 기계장치의 크고 작은 소음 그리고 공조기 소리가 섞여 음악처럼 들린다. 음악은 클라이막스를 향해 가듯 조금씩 다급해져 갔다.
배 위의 하늘은 짙은 남색이었다. 대부분의 햇빛이 구름에 잡혀 윤슬을 볼 수 없었다. 무스카트호와 우리가 나아가야 할 하늘에는 회검색 구름이 바다처럼 가득 차있었다. 그 구름은 끝을 찾기 힘들 정도로 높게 솟아있었다. 구름이 물에 젖은 솜이불처럼 무거워 보였다. 분명 구름 아래로 비를 내뱉고 있을 테였다.
심상치 않은 하늘에 호기심이 생겼고 일등항해사에게 물었다.
‘눈앞에 폭풍이나 스콜이 보이면 돌아가나요? 통과하나요?’
평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나의 뜬금없는 질문에 일등 항해사는 고개를 내 쪽으로 향하고 약간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내 흥미가 생겼는지 내 쪽으로 몸을 돌리고 대답했다.
‘이까짓 비구름에는 예정된 항로대로 나아갑니다.’
‘폭풍 속으로 들어가는 게 두렵지 않으세요?’
‘나의 항해 지식과 경험 그리고 배를 믿고 나아가야 해요. 이미 제 머릿속에는 모든 긴급 상황에 대한 프로토콜이 선명하게 나열되어 있어요. 혹독한 사관의 서열 문화 속에서 배를 타며 깨달은 바, 항해나 선상 생활에서 스스로를 믿지 못하면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힘으로 어떤 십자가를 짊어지고 계신가요?’
‘삼등 항해사가 되어 첫 배를 탔을 때 선장님이 해준 말을 아직도 잊지 못해요. 9만 3천 톤의 상선과 LNG는 물론, 35명의 선원뿐 아니라 그들의 가족까지 생각하며 거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어요. 비록 보잘것없는 세 줄짜리 견장이지만 어깨에 달 때마다 오른쪽에는 책임감을, 왼쪽에는 믿음을 지고 항해를 합니다.’
‘지금껏 항해를 하며 가장 힘겨웠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이등 항해사 시절 필리핀 부근의 남중국해를 지나가고 있을 때였어요. 태풍을 만났습니다. 안테나가 날아갈 만큼 지독했죠. 제발 이번 파도만 넘기자는 심정으로 위태롭게 한 발 한 발 나아갔어요. 이젠 정말 죽겠다 싶었을 때, 세상이 고요해졌습니다. 태풍의 눈 속에 들어간 거였어요. 삼십 분 동안 태풍의 눈을 통과하였고 그동안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어요. 다시 태풍 속으로 들어가자 8m의 해일이 배에 들이닥쳤죠. 식은땀을 닦으며 파도를 이겨냈는데 뒤를 돌아보니 별거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일을 겪은 후로 어떤 파도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습니다. 이제는 가끔 배를 새차하기 위해 스콜이 보이면 항로를 약간 비껴가 비를 맞게 할 때도 있어요.’
‘멋지네요. 하나 배웠습니다. 식사 맛있게 하십쇼.’
나보다 부족한 거라고는 나이뿐인 일등 항해사의 자신감과 프라이드, 뱃심에 순식간에 매료되었다. 나도 내 인생의 일등 항해사가 되리라 다짐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며 오랜만에 거울을 보니 태풍의 눈이 담겨있는 듯한 생기 있는 눈빛을 볼 수 있었다.
모든 선원들이 식사를 마쳤다. 내 싱크대 위에 겹겹이 쌓여있는 철판의 식기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턱을 깨물고 내쉰 한숨보다 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천천히 그러나 꼼꼼히 설거지를 하고 정리했다. 더 이상 도마를 때리는 칼 소리가 들리지 않는 어색한 주방을 떠나 방에 들어가려 한 찰나, 한 줄기 빛이 비상구 창문을 통해 들어와 내 방문 앞에 그어져 있는 걸 보았다. 그 선을 넘지 못하고 홀린 듯 빛을 따라 비상구로 향했다.
문을 여니 비에 한바탕 씻겨 내려진 투명한 대기가 노을에 빛나고 있었다. 어릴 적 먹던 작고 투명한 분홍색 복숭아 사탕의 속에서 밖을 바라보는 것처럼 세상이 영롱하게 빛났다. 비상계단을 통해 뒤쪽 갑판으로 올라가니 우리가 지나온 폭풍과 배의 물 꼬리가 보였다. 한층 가벼워진 먹구름은 아직도 약간의 비를 내리고 있었다.
지나온 폭풍을 돌아보니 가슴이 벅차올라 눈물을 흘렸다. 지금껏 흘렸던 슬픔의 눈물과는 소금 결정 모양이 다를 것이다. 나는 승선 전에 많은 눈물을 흘렸고 선상에서도 조금씩 흘리고 있다. 원양상선이 내 눈물을 밟고 올라서있는 기분이다.
태풍 같았던 지난날이 구름 속에 비쳐 보인다. 나를 실은 배는 3만 8천 마력의 엔진이 돌리는 스크류의 힘으로 물과 과거를 밀어내며 앞으로 나아간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왼쪽 어깨에는 나에 대한 믿음을 오른쪽 어깨에는 스스로를 구원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짊어진 채 남은 청춘을 다 받쳐 내 삶의 태풍을 뚫고 나아가리라. 지금껏 항하사의 파도를 이겨낸 일등 항해사와 쉬지 않고 원양을 가르는 상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