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지수 Oct 27. 2024

태평양과 인도양을 건너 전세지옥에서 탈출하여 이제는 하

태평양과 인도양을 건너 전세지옥에서 탈출하여 이제는 하늘로     

내가 되겠다고 정한 거니까

그걸 위해 싸우다 죽는다 해도

상관없어.     

-루피     


 하선 전부터 나는 빠른 결정을 해야 했다. 두 달 뒤 다시 배를 타느냐 아니면 지금 비행훈련원에 도전을 하느냐.  

 가장 큰 고민 사항은 역시 훈련 비용이었다. 훈련 비용으로는 최소 일 억 원이 필요했다. 이 돈은 분납이 가능한데 내가 가진 돈은 훈련을 시작할 수밖에 없는 정도였다. 다음 고려해야 할 사항은 신체검사였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신체검사에서 떨어지면 그 돈은 내게 휴지조각이나 다름 없어진다. 마지막 변수는 나의 나이였다. 훈련원에서는 34세 이하의 나이에 입과 할 것을 권고했고 나는 서른셋이다. 두 달 휴가 후 다시 반년 간 승선을 하면 34살을 지나 35살이 가까워져 있을 것이다. 

 나는 결단을 해야 했다. 지원하기로 했다. 일단 지원해서 떨어진다면 배를 타고 내년에 다시 한번 지원해 보기로 했다. 그 후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아니 무서워서 생각을 못 하겠다. 지원 자격은 크게 영어와 신체검사가 있다. 영어는 토익 750점 이상 맞으면 되는데 처음 본시험은 그 이상을 넘기지 못했다. 한때 엘지전자 헝가리법인에 다니며 영어로 일하며 돈까지 벌어먹던 사람인데 안일하게 생각하고 당연히 750점을 넘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게 부끄러웠다. 다시 시험을 본다고 해도 성적 발표날이 훈련소 지원 마감 이후였다. 큰일이었지만 다행히 대체 성적에 토익 스피킹이 있었다. 130점 이상만 넘으면 되었다. 엘지전자를 퇴사 후 2년간 거의 영어를 쓰지 않아서 걱정이었지만, 이번에는 일주일 정도 착실히 준비해서 다행히 그 이상의 준수한 점수를 받았다. 

 사실 영어 시험만 통과되면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는 데는 큰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신체검사에서 발목을 잡혔다. 젊은 사람은 문제없이 통과할 거라고 들어왔는데 콜레스테롤 수치에서 재검 판정을 받았다. 이게 다 배에서 마신 맥주 때문이다. 월요일에 재검 판정을 받고 목요일에 재검을 받았는데 그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도파민이 최대로 분비되는 유튜브나 인스타를 봐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조종사에 대한 꿈이 눈앞에서 자꾸만 아른거려 눈을 뜨고 있는데도 앞이 보이지 않는 느낌이었다. 내가 할 수 있던 건 재검에 합격하기 위한 컨디션 조절과 목요일날 재검이 불합격된다면 어떻게 해야 될지 걱정하는 것뿐이었다. 다행히도 나는 재검에 통과됐다. 조종사들은 일 년 내내 몸관리를 하고 특히 검사 한 달 전에는 채식동물이 된다고 한다. 내 몸을 첫 번째 재산으로 소중히 해야겠다. 

 사기꾼들에 대한 첫 재판일과 같은 날 있던 9월 11일에 시행된 입소 면접도 무난히 합격했다. 조종에 진심이었기에 면접에 떨어질 거라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나는 드디어 울진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울진비행훈련원은 바다와 맞닿아 있다. 그곳에서 수평선을 넘어 창공을 가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가장 큰 걱정은 재정적 문제다. 내가 나머지 훈련비용을 얻는 방법은 민사소송을 통해 공인중개사와 집주인에게 빼앗겼던 돈을 받아내는 것뿐이다. 그들이 과거에 내 행복을 수탈해 자신의 행복을 채워 넣은 것처럼 이제는 내가 그들의 행복을 빼앗아 내 꿈을 이뤄갈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모험을 거는 내 심정은 생택쥐베리의 소설 [야간비행]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레이더가 없던 1930년대, 비행기를 몰고 야간비행을 하던 우편배달부 주인공은 달비치 비치는 안데스산맥 상공을 순항하고 있었다. 안데스 산맥의 봉우리만 보이고 중턱 밑은 짙은 구름으로 가득 차있었다. 기름이 전부 다 떨어졌고 이제는 별 수 없이 구름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나도 돈이 없지만, 지금 조종사에 도전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모험을 걸지 않을 수 없다. 

 레이더 없는 야간 비행을 시작하는 심정이다. 

 마지막으로 코로나로 인해 수천 명의 비행낭인이 적채 되어 있다고 한다. 최종적으로는 그들과도 경쟁해야겠지만, 지금 당장은 나 자신의 권태, 무지와 싸워야 한다. 날 이길 수 있다면 경쟁자들도 이길 수 있다. 과거의 내가 고생했기에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다. 오늘의 내가 매일에 충실하여 미래의 내게 조종사라는 직업을 반드시 전해줄 것이다.               

이전 26화 하선 후의 소확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