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phi Perich May 23. 2024

한국 호미의 위력


   긴 겨울을 보낸 미네소타 사람들은 봄이 되면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꽃과 채소에 흥분다. 때가 이른 걸 알면서도 씨앗을 심고 수십 가지 모종을 사들여 빨리 날이 따뜻해지길 기다리는데, 짧은 여름을 최대한 즐기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라고 다를 바 없다. 깻잎, 상추, 고추, 부추, 토마토, 수박, 딸기 등... 과도한 욕심으로 매 여름이 되면 수십 개의 화분이 뒷마당 덱을 가득 메웠었다. 올해는 그 지저분함을 없애고자 가든 박스를 하나 주문했다.
   택배가 도착하자마자 설레는 마음으로 서둘러 조립을 해서 뒷마당 한쪽에 옮겨 놓았다. 이제 흙만 부어주면 끝이다 생각했는데, 시아버지와 신랑이 지지대는 무엇으로 할 거냐고 물었다. 잔디는 어떻게 할 거며, 물은 어떻게 빠지게 할 거냐고도  물었다.(설치가 간단하다는 리뷰만 보고 신랑에게 구매여부를 사전에 의논하지 않았었다.)
   "응? 지지대가 있어야 해? 잔디? 잔디가 뭐가 문제야? 물? 물이야 땅으로 빠지겠지?"
   두 사람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Oh, Sophi! No, no, no"라고 말하곤 뼛속까지 새겨진 꼼꼼함으로 내게 설명을 시작했다.

   지지대를 설치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박스가 움직일 위험이 있어 안전하지 않으며, 잔디를 먼저 없애지 않으면 아래에서부터 점차 자라나 나중에는 채소를 키우지 못할 거라고 했다. 가장 큰 문제는 물 빠짐. 아래가 뚫린 가든 박스지만 오랫동안 사용하면 아래쪽의 흙이 단단해지기 때문에 물이 잘 빠지지 않게 되어 채소 뿌리가 썩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아... 몰랐네...
   그때부터 가든 박스 프로젝트에 들어갔다. 홈 디포(Home depot)에서 나무를 사 지지대를 만들고, 잔디를 깨끗이 제거한 뒤 배수가 잘 될 수 있도록 뒷 숲에서 주어온 나뭇가지를 깔았다. 이제 지지대에 박스를 고정하고 나뭇가지 위에 가든 패브릭을 덮어 흙을 채우면 채소 모종을 심을 수 있게 된다.



   이 일련의 과정을 함께 해준 나의 애장품, 바로 호미.
   땅을 파서 지지대를 설치할 때도, 잔디를 없앨 때도 유용하게 쓰였던 이 호미는 3년 전에 아마존에서 구매했다. 며칠 동안 밖에서 비를 맞은 적도 있었고, 사용하고 난 뒤 흙을 닦아내지도 않고 그대로 보관을 한 적도 많았는데 3년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녹도 거의 슬지 않았고, 손잡이 부분이 덜렁거리거나 날이 무뎌지지도 않았다.


완벽한 그립감과 정확한 각도의 날. 이 호미를 만드신 영주 대장간의 장인님, 감사합니다 ♡


   신랑은 처음 호미를 보곤 무슨 호신용 무기를 샀냐고 물었었다. 날카로운 날 때문에 지금도 "가드닝 왜픈(Gardening weapon, 가드닝 무기)"라고 부르는데 호미라고 이름을 알려줘도 자신은 가드닝 픈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든다며 그렇게 부르겠단다.
   욕실 리모델링을 하면서 가든 박스 설치를 도와주셨던 시아버지도 처음 호미를 보시곤 신랑과 같은 반응이셨다. 내가 사용방법을 시범으로 보여주자 "오~~~~ 훌륭한데~~~"라고 말하시더니 "이 뾰족한 날로 나무 잘라도 되겠네"라며 들고 있던 나무에 장난스레 호미질을 하시기도 했다.
   가든 박스가 완성되고 날이 더 따뜻해지면 여러 가지 채소 모종을 심을 것이다. 나의 '가드닝 픈'이 제 실력을 발휘할 날이 멀지 않았다.


호미로 내가 일궈놓은 땅을 고르게 편 신랑이 나무 지지대에 박스를 어떻게 고정할지 시아버니와 의논하고 있다. 치명적인 만두의 뒤태는 덤.


호미로 얇은 판자를 두드려보시는 시아버지. 미처 사진으로 찍지 못해 사진 찍게 한 번만 더 해달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두 사람 :)



브런치북

도서 구입: 종이책 & 전자책 종이책은 빠른 배송이라 웹사이트에 보이는 것보다 빨리 받으실 수 있습니다. (당일배송 또는 1 ~ 3일 이내로 바로 발송됩니다.)

이전 03화 시어머니와 승마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