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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몽을 만들어줘야 하나

by 부만나 Mar 11. 2025


아이를 임신했을 때, 나는 태몽을 꾸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꿈을 기억하지 못했다.

주변에서는 태몽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산모 커뮤니티에는


"용을 보았어요"

"맑은 물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를 잡았어요"

"빨간 사과가 가득한 나무를 봤어요"와 같은 근사한 태몽 이야기들이 넘쳐났다.


어떤 이들은 태몽의 내용으로 아이의 성별을 점치기도 했고, 아이의 미래가 찬란할 거라고 기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특별한 꿈을 꾸지 못했다.


밤마다 잠들기 전 '오늘은 의미 있는 꿈을 꾸게 해 주세요'라고 속으로 빌었지만, 깨어나면 기억나는 건 평범한 일상의 파편들뿐이었다.


"당신은 태몽 꿨어?"

남편에게 물었다. 아이 아빠도 태몽을 꿀 수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나? 글쎄... 특별한 건 없었던 것 같은데."

두 사람 다 특별한 꿈이 없었다.






이상하게도 서운했다. 마치 우리 아이가 세상에 올 준비를 제대로 못 해준 것 같은 미안함이 밀려왔다.






어느 날 엄마들 모임에서 한 선배 엄마가 말했다.

"괜찮아, 나도 첫째 때는 태몽이 없었어. 그래서 내가 만들었지.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로."


그 말에 눈이 번쩍 뜨였다. 꼭 실제로 꾼 꿈이어야만 할까? 우리 아이를 위한 이야기, 우리 가족만의 특별한 서사를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그날 저녁, 나는 오래된 사진첩을 꺼내 들었다.

내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며 문득 궁금해졌다.

"아버지, 제가 태어날 때 태몽 같은 거 꾸셨어요?"

전화기 너머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글쎄... 기억이 안 나는구나." 잠시 침묵 후 아버지가 웃음 지었다.



엄마는 내가 열 살 때 돌아가셔서 물어볼 수도 없었다. 엄마가 꾼 태몽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어떤 내용이었는지 영원히 알 수 없게 되었다. 그 순간 묘한 상실감이 밀려왔다.

엄마에게 물어볼 수 없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가슴을 쓰라리게 했다.



그날 밤, 나는 결심했다. 태몽 이야기를 만들기로. 꼭 꿈에서 본 것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건 그 이야기에 담긴 마음이니까.


"널 기다리던 어느 봄날, 엄마는 꿈에서 작은 새를 만났어. 그 새는 노란 꽃이 만발한 나무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지. 그 목소리가 얼마나 맑고 아름답던지..."


이야기를 만들면서 내 안에 따뜻한 감정이 일었다. 실제로 꾸지 않은 꿈이었지만, 이 이야기는 우리 아이에 대한 나의 바람과 사랑을 담고 있었다. 아이에게 직접 들려주진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만 간직한 이 이야기가 어쩌면 진짜 태몽의 의미가 아닐까 싶었다.







다음 날, 산부인과 검진에서 처음으로 아이의 심장소리를 들었다. 쿵쿵대는 작고 빠른 박동 소리. 그 순간 문득 떠올랐다. 꿈속에서 들었던 것 같은, 작은 새의 노랫소리.


태몽은 실제로 꾸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그날 밤, 진짜 태몽을 꾸었는지도.


나는 이제 내 방식대로 부모가 되어가고 있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남들과 같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엄마의 빈자리가 있어도, 그 자리를 내 방식으로 채워나갈 수 있다는 것을. 태몽을 만들어가면서 배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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