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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결 Sep 20. 2023

다이어트 없이 살기


다이어트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얼마나 될까? 여성이든 남성이든 체중에 대한 고민은 적으나 많으나 매한가지다. 마른 사람은 마른 대로, 살이 찐 사람은 찐 대로 고민이다. 표준 체중인 사람도 그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 우리는 언제쯤 ‘살’ 걱정 없이 살 수 있을까? 이 글은 다이어트에 대한 평범한 여성의 이야기다.


다이어트의 시작은 중학생 때였다. 한창 먹고 자랄 시기에 다이어트라니. 어려서부터 정상 체중을 유지해 왔지만 키가 자라고 살이 빠지면서 외모에 대한 관심이 부쩍 생긴 터였다. 당시 먹는 것을 크게 제한하지는 않았으나 급식을 받을 때 식판에 밥을 조금만 퍼 담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도 먹고 싶은 음식은 다 먹어 가며 특별히 스트레스를 받지 않은 영향인지 다행히 키는 잘 자랐다. 그때 더 잘 먹었다면 몇 센티는 더 자랐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활동량이 줄고 밥을 빨리 먹기 시작하면서 체중이 조금 늘었다. 여전히 정상 체중에 머물렀지만 새로운 몸무게를 갱신했으니 처음 맛본 좌절감이었다. 그래도 공부는 뒷전인 채 살을 빼겠다며 야단법석을 부리지는 않았다. 여느 고등학생처럼 수능을 보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살이 빠질 거라 믿었으니까. 고3 수험생이라는 특권을 방패 삼아 크게 스트레스는 받지 말자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여고에 다녀서 자유로웠던 면도 있었다.


인생 최대 몸무게를 찍은 건 스무 살이었다. "살이 쪘다"라는 말을 인사처럼 들은 것도 생전 처음 겪는 일이었다. 드디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꾸밀 수 있는 자유가 찾아왔는데 무슨 날벼락인가. 대학 가면 예뻐진다는 말은 내 얘기가 아니었다. 입학과 동시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는데 수업이 마치면 곧바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음식점으로 향해야 했다. 일이 끝나면 밤 11시가 됐고 나는 그제야 첫 끼를 먹었다. 야식을 먹고 그대로 지쳐 잠들고 아침에 일어나 졸린 눈을 부여잡고 등교하기 바빴다. 그렇게 쳇바퀴가 돌아갔다. 그때 처음 먹은 야식에 눈을 떴고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기 시작했다. 내 인생 처음 하는 폭식이었다. 내가 번 돈으로 사 먹는 야식은 맛있었지만 늘어나는 체중에 나는 점점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살이 내 인생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불어난 체중 때문만은 아니지만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나는 한 학기를 마치고 휴학을 했다. 휴학 후 집으로 돌아와 집밥을 먹고 지내며 살은 조금씩 빠졌다. 이전보다는 통통한 몸이지만 건강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때 생긴 빨리 먹는 습관, 야식 습관, 스트레스를 받으면 폭식하는 습관이 자리를 잡았고 한동안 불규칙적인 식습관이 오래 지속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 다이어트를 시도했으며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했다.


돌이켜 보자면 나는 학창 시절 친구들 사이에서 밥을 제일 늦게 먹는 축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밥을 먹을 때면 식사를 마친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급하게 음식을 입에 욱여넣어야 할 만큼 밥을 천천히 먹었다. 워낙 먹성도 좋고 먹는 것을 좋아하고 간식도 자유롭게 먹었지만, 그럼에도 날렵한 몸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규칙적인 식사와 더불어 천천히 먹는 습관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자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공부에 그리 열성적이지 않은 학생도 생존 경쟁 속에서 느긋하게 밥을 먹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성인이 되고 그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다이어트의 기본은 식이 조절이다. 천천히 먹는 습관, 소식, 그리고 적절한 운동을 병행하는 것. 식습관이 가장 중요하다. 먹는 것을 운동으로 해결하려 하면 몸이 혹사당하기 십상이다. 한때는 무염식과 운동으로 무리한 다이어트를 하기도 했지만 이후로는 지나친 다이어트를 하지 않았다. 학업과 일에 열중하면서부터는 예전처럼 늘씬한 몸은 아니어도 그럭저럭 내 외모에 만족하며 지내왔다. 적어도 몸에 붙은 군살이 내 모든 행복을 앗아가지는 않았다. 다이어트에 대한 집착은 차츰 사라졌고, 내 몸의 숫자를 모르고 살았다.


그러다 건강에 이상이 생겨 급격하게 살이 빠진 무렵 건강검진을 하면서 몇 년 만에 몸무게를 알게 되었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숫자. 이 몸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졌다. 건강 악화로 빠진 살이지만 어리석게도 한편으로 반가웠다. 한순간 날씬한 몸을 갖게 되니 잠재되어 있던 마른 몸에 대한 욕구가 꿈틀거렸다. 더 욕심이 났다. 몇 년 동안 몰랐던 나의 숫자를 알고 난 뒤로 안 재던 체중을 재기 시작했다. 숫자에 사로잡혀 버리고 만 것이다. 문득 지난날을 떠올렸다. '모르고 사는 게 편했는데.' 나는 그날부로 체중계에 오르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나를 그만 괴롭히기로 했다. 다이어트를 포기했다.




다이어트의 성공 비결은 다름 아닌 '다이어트를 결심하지 않는 것'이다. 지난 경험으로 터득한 다이어트의 법칙이다. 다이어트는 다이어트를 하겠다 마음먹는 순간 실패하고 만다. 오히려 다이어트를 결심하지 않을 때 식이 문제도 스트레스도 없으며 적정 체중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일정 기간 내의 체중 감량을 목표로 할 경우 그 기간이 종료되면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다. 흔히 겪는 요요 현상이다. 나는 그 끝없는 터널에서 빠져나오기로 했다.


다만 건강을 목적으로 식습관을 개선하고 체중을 감량하고 유지하는 일은 필요로 할 것이다. 어쩌면 평생 과제일지 모른다. 다행히 지금은 건강을 계기로 크게 살이 찌지 않는 자연식물식을 하고 있다. 애초에 살을 빼기 위해 시작한 일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적정 체중을 유지하고 건강한 식습관을 확립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역시 다이어트란 자신 모르게 해야 하는 일일까.


물론 먹는 음식만 바꾼다고 해서 체중에 대한 모든 고민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 살은 언제든 찔 수 있다. 하지만 설령 살이 찐다 한들 크게 스트레스는 받지 않으려 한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원인이라는 걸 실로 많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체중의 변화로 결국 내가 달라지는 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이것은 선언이다. 더는 예뻐 보일 목적으로만 다이어트를 하지는 않겠노라. 그런 구실로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않겠다는 나와의 약속이다. 내가 어떤 모습이든 나를 사랑하겠다는 받아들임이다. 거울 속의 나, 타인의 시선에 보이는 내가 아닌, 나는 언제나 나로 살겠다는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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