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을 하는데 고기를 선물 받았다. 왜 이런 해프닝이 생겼는지 따지자면 전적으로 내 잘못이다. 채식을 한다고 미리 공표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테니까. 친구와 멀리 떨어져 살면서 매년 돌아오는 생일에 선물로나마 마음을 주고받고 있었는데, 최근 자세한 얘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다. "채식하는 사람에게 돼지고기를 줘버렸다"며 당황한 친구와 한바탕 웃으며 추억으로 간직했지만, 이렇게 선물로 곤란한 일은 없는 편이 좋을 것이다. 오늘은 선물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미니멀라이프에 발을 들인 사람이라면 한 번쯤 선물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물건을 줄이고 싶어서, 소비 기준이 명확해져서, 이제는 다른 사람들이 주는 선물을 받기가 곤란하다. 선물을 거절하지 못하고 받게 되면 상대에게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든다. 비단 미니멀리스트만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선물 때문에 곤란을 겪는다. 생일 선물, 기념 선물, 명절 선물 등 어떤 선물을 해야 할지 사소한 고민부터 불필요한 선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사후 고민까지 골머리를 앓는다. 이런 고민을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내가 선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건 3년 전의 일이었다. 퇴사를 앞두고 직장 동료에게 퇴사 기념 선물로 명품 브랜드의 향수를 받았다. 동료들이 같이 준비한 선물이라고 하는데 거기다 "저 향수 안 써요"라며 단호하게 거절할 수 없어서 "감사합니다" 하고 넙죽 받아와야만 했다. 그 향수는 훗날 다른 사람의 손으로 건너가고 말았다.
한 번은 사촌 언니가 프랜차이즈 카페의 커피와 초콜릿 케이크 기프티콘을 보내 주었다. 커피도 케이크도 먹지 않는 터라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평소 말투와 다른 애교 섞인 문자를 보내며 거절 의사를 밝혔다. 안 쓰던 하트도 붙여가면서. 이렇게 우리가 마음을 부담 없이 표현할 때 요긴하게 사용하는 기프티콘도 처치 곤란일 때가 많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첫 번째 원인은 서로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몰라서다. '나는 선물로 마음을 표현했으니 그걸로 땡.' 상대가 선물을 받고 진심으로 기뻐하는지, 혹시나 어떤 곤란을 겪고 있지는 않은지 관심을 가져 본 적이 있는가? 어쩌면 선물을 준다는 것은 상대방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이 주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동시에 선물을 받은 사람의 책임도 있다. 충분한 정보 제공의 역할을 하지 않았으니 상대는 부족한 정보 안에서 성심껏 선물을 골랐을 것이다. 어느 한쪽의 잘못만은 아니다.
서로에게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 선물로 오고 가면 결과적으로 돈과 시간과 물건이 낭비된다. 거기다 감정까지 상한다면 더욱 큰일이다. 서프라이즈 선물은 뜻밖의 감동이 아니라 자칫 당혹스러움을 선사할 수도 있다. 그런 불상사를 막으려면 상대방을 먼저 파악하는 게 우선이다. 선물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평소의 취향을 눈여겨보거나 넌지시 물어보는 방법밖에는 없다. 이 글에서는 '선물을 어떻게 하느냐'보다 '불필요한 선물을 거절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선물 거절하기
선물을 거절하면 과연 상대방이 싫어할까? 지난 경험을 통해 살펴보자.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친구에게 기프티콘으로 영양제 세트 선물을 받은 적이 있다. 채식을 시작하고 영양제는 따로 챙겨 먹지 않고 있기에 오메가-3와 비타민은 필요하지 않은 선물이었다. 친구는 이런 사정을 알 일이 없었다. 미안한 마음에 선뜻 거절하지 못하고 며칠을 혼자 속앓이를 하다가 친구를 붙잡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돌아온 답변은 "선물을 받아주지 않아서 서운한 마음보다는 미안하다는 말에 마음이 더 쓰인다. 그러니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였다.
올해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친구들과 생일 선물을 주고받지 말기로 한 것이다. 생일을 앞두고 한 친구가 필요한 것이 있느냐며 물어 왔다. 직접 만나 소비에 대해 달라진 생각을 밝히고 축하 인사만으로 고맙다는 마음을 전했다. 덧붙여 앞으로는 선물을 생략하자고 제안했고 친구는 흔쾌히 "네가 원한다면 그러자"고 답해주었다. 이어서 고기를 선물해 준 고마운 친구에게도 같은 제안을 했다. 덕분에 "사실 조금 형식적인 면도 있었던 것 같다"는 속내도 들을 수 있었다.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눔으로써 허례허식을 허물고 서로에게 한발 더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다름 아닌 용기다. 생각해 보자. 선물을 받은 사람이 내가 준 선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어떻겠는가? 당신은 그렇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그 사람이 내가 준 선물을 잘 사용한다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어도 크게 마음이 상하지 않을 테니까. 그 선물을 누군가에게 주거나, 판매하거나,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서운해하는 사람도 그가 그 물건 때문에 미안해하며 억지로 끌어안고 있는 것보다야 차라리 그 편이 낫다고 생각할 것이다. 누구도 자신이 준 선물이 짐이 되길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도 선물을 거절할 때는 마음 편히 보내주어야 한다. 고마운 마음은 이미 받았고 감사 인사를 전달했다면 물건에 남아 있는 건 없다. 그리고 미리 거절할 수 있다면 서로에게 미안할 일도 만들지 않게 된다.
그러니 선물을 거절하는 걸 너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상대방이 정말로 당신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네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줄 몰랐어. 얘기해 줘서 고마워"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니 걱정할 시간에 진솔하게 대화를 나눠 보자. "선물은 싫어!"라고 단호히 선을 긋는 게 아니라 "선물을 거절한다고 마음은 거절하는 건 아니야"라며 부드럽게 말을 건네 보자. 그리고 당신과 계속 함께하고 싶다는 솔직한 마음도 같이 전하면 좋을 것이다.
최선의 방법은 상대에게 미리 알리는 것이다. 충분히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모든 사람에게 말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가까운 사람에게는 먼저 말할 필요가 있다. 말로 하기 어렵다면 메신저 프로필에 선물은 사양한다는 문구를 기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부담스러운 선물을 줄이고자 한다면, 다음 세 가지를 고려해 볼 수 있다.
1. 선물에 대한 거절 의사를 미리 밝히고 설명하기
2. 필요한 물건을 직접적으로 얘기하기
3. 물건이 아닌 형태의 선물을 제안하기
- 상품권 형식의 선물을 주고받기
- 식사 등 만남으로 대신하기
- 특별한 활동을 함께하기
- 선물 대신 기부 활동을 제안하기
- 선물 금액의 상한선을 결정하기
선물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선물을 고를 때는 많은 고민을 한다. 특히나 상대가 선물하기 까다로운 사람이라면 선물을 주고받는 과정 모두가 서로에게 부담이 될지 모른다. 그럴 때 '선물을 주지도 받지도 않는 것'이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대신 얼굴을 보고 만나서 함께하는 시간을 가져 보는 건 어떨까? 시간이 없다면 다정한 문자나 전화 통화, 손 편지로 마음을 전할 수도 있다.
어쩌면 우리는 '축하한다'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에 마음을 담을 줄 몰랐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선물로 대신하려던 마음을 직접 표현해 보는 게 어떨까? 자꾸만 선물로 대신하려 하다 보면 진심을 전하는 방법을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우리가 주고 싶은 것은 선물이 아니라 마음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