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난 양말을 신기 시작했다

"아, 뭐야 또 구멍 났잖아. 버리자."

양말에 아주 작은 구멍이라도 났다 치면 가차 없이 쓰레기통에 벗어던지던 나였다. 새 양말도 구멍이 나는 순간 바로 쓰레기 신세가 되었다. 양말은 너무도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소모품이었다. 그런 내가 지금은 해진 양말을 몇 번이고 다시 기워 신고 있다. 사람 일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오래 입어 때가 탄 해진 셔츠를 잘라 손수건도 만들었다. 티슈 대신 손수건을 쓰기로 마음먹었는데 새 상품은 사고 싶지 않았다. 천을 따로 구입할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내가 입던 옷인데 깨끗하게 빨아서 쓰면 된다. 그렇게 만든 손수건 두 장을 매일 번갈아가며 요긴하게 쓰고 있다. 내가 손수건을 들고 다닐 줄이야.

한 번은 집안 구석에 있던 어디선가 받아 온 옷인지 출처를 모르는 멜빵바지를 잘라 앞치마를 만들었다. 앞치마라는 이름답게 뒷부분은 과감히 생략한 앞치마. 어차피 앞만 가려주면 되니 뒷부분까지 애써 천을 이어 만들지 않았다. 목에 거는 앞치마는 사용감이 불편해서 잘 쓰지 못했는데 이건 어깨에 끈을 살포시 걸치니 가볍다. 하늘색 앞치마는 집에서 매일같이 함께하는 든든한 지원군이다.

셔츠에 단추가 떨어져도 내 손으로 단추를 달아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바느질이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냥 실을 끼운 바늘을 들고 요리조리 구멍만 메우기만 하면 된다. 바늘로 손을 찌르지만 않게 조심하면 된다. 특별한 요령도 필요 없다. 목표는 단 하나, '구멍을 메운다'에만 집중한다. 엉성하더라도 터진 구멍만 잘 메꿔 주면 옷가지들은 다시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바느질은 숙련된 장인들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손바느질을 직접 해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스스로 쌓은 장벽을 허물고 나서야 비로소 어렵게만 생각한 일도 별게 아닌 일이 된다. 무엇이든 해보지 않고는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냐 아니냐를 가름하는 건 다름 아닌 나였다는 걸 깨달았다.

늘어난 속옷도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입는다. 헌 옷에 대한 느슨한 마음과 정다움이 싹튼 건 언제일까. 언제 이렇게 아까운 마음이 몽글몽글 피어올라 물건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자라난 걸까. 나는 그저 커다란 물결에 몸을 싣고 두둥실 따라왔을 뿐인데 어느새 나를 비롯한 생명체와 물건과 자연이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온 마음으로 느끼고 있다. 우리 모두 자연의 품에 있음을.

그리하여 허투루 먹지 않고, 허투루 입지 않고, 허투루 사지 않고, 허투루 버리지 않는다. 무엇이든 허투루 하지 말아야지. 작은 물건도 허투루 다루면 생채기가 나는 법이니까. 나와 다르지 않은 존재들이니까. 오늘도 다시 뜯어진 양말을 주섬주섬 기워 본다. 조금만 더 생명을 연장해 본다. 아직 쓸모가 많은 녀석이니까. 너와 작별 인사를 해야 할 때가 오면 마음이 허전할지도 몰라. 살다 보니 양말 두 짝에 정을 붙이는 날도 오는구나. 그 마음마저 반가운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