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소하면서도 규칙적인 삶에 대해 (달리기를 통해 찾은 루틴 삶이란)
강물을 생각하려 한다.
구름을 생각하려 한다.
그러나 본질적인 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
나는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려가고 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란 에세이에서
하루키가 서른세 살부터 시작한 달리기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다.
아침부터 한밤중까지 녹초가 되도록 일을 하던 젊은 시절의 그는
불현듯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마치 아주 치기 힘든 변화구를 던지듯
그렇게 소설가의 길에 들어선다.
'달리기'를 '진심'으로 시작한 이들의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정말이지 놀라울 정도로 열심히 살던 중에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변화와 맞닥 뜨리고
나를 바로 세우는 과정에 놓인다.
그때 마치 자신의 몸을 통해 정신을 깨우듯
격렬한 몸의 움직임, 바로 달리기로 과정을 이겨냈다는 것.
정확하게 그날은 서른일곱 해를 보낸 여느 날과 다름없던
그저 그런 여름의 어느 날 밤이었는데,
갑작스럽게 한번 뛰어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나의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운동화만 신으면 어디로든 자유롭게 내 몸을 원하는 곳에 가져다 놓을 수 있다는
자아 통제감.
터질 듯한 종아리에서 올라오는 혈류의 움직임.
그 혈류가 온몸을 돌고 돌아
뇌의 묵은 찌꺼기까지 쓸어내고
다시 깨끗해진 정신 상태로 돌려놓은 듯한 상쾌함.
그렇게 두어달 때쯤 지났을 때
이른바 '런하이'라는 짜릿함을 느끼기도 했던 것 같고,
<마녀체력>의 이영미 작가를
사심으로 초대해 교육 현장에서 만났더랬지.
그 해는
사실 내가 그 조직에 들어간 첫 해였고,
분주하고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꽉꽉 채워 살던
(뭐 나는 늘 그래왔지만, 그래도 특히나)
시기였다.
당시 6개월 만에 체중이 3kg 늘었는데,
남편은 갑작스럽게 체중이 는다는 것은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고,
건강을 해지면서까지 일을 해야겠냐고 다그쳤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건강도 건강이지만,
자기 관리 안 된 와이프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그의 취향 반영은 아니었을까 -_-
또한 육아에 소홀하지 않았으면 하는 한국남성의 가부장적 이기심도;
작용했을 것 같다.)
물론 그의 말을 들어서는 아니고,
하지만 틀린 말도 아니고 (건강을 해치면 안 되는 거니까)
여하튼 다행히도 나는 오밤중 달리기 덕에
원래의 체중을 회복하고,
건강도 유지하면서
공무원 첫 해, 첫 번째 위기를 넘겼었다.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으며
그때 당시 기억이 떠올랐는데,
그 역시도 막 전업 소설가가 되면서
육체노동은 줄고, 책상 앞에 앉아 원고를 쓰는 생활이 이어지자
체력도 떨어지고 체중도 불었었다고 한다.
이를 잡아준 것이 바로 달리기이고
이는 하루의 시작 새벽 5 - 밤 10시 취침이라는
삶의 루틴도 만들어주었다고.
건강한 삶에서 루틴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바 -
시간과 에너지 배분의 중요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하루키가
어떻게 지금까지
전업소설가로 살아남았는지
깨닫게 하는 대목들이었다.
개인적으로
달리기의 매력이라고 하면
정말 무념무상의 명상의 세계로 빠져들 수 있게 한다는 점.
강물을 생각하려 하고,
구름을 생각하려 했던 하루키처럼
공백을 달리는 시간은
잡념을 사라지게 하며,
다시금 깨끗해진 뇌를 되찾게 하고
새 아침을 맞게 한다.
그래서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낙천성,
친한 후배 말에 의하면 '과하게 해맑은' 나의 밝음의 근원.
그 근원의 일부는 내 몸에 있음을.
글을 쓰는 행위가 얼마나 격렬한 '육체노동'인지는
해본 사람을 알 터 -
그 몰입의 순간을 위해 나는 오늘도 길 위를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