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기가 될 것인가, 메기에 잡아먹힐 것인가
그분이 오신 뒤로 부서는 조용할 날이 없었다.
매번 똑같던 사업 보고서에는 'NEW'가 붙기 시작했다.
모든 부서에 '신사업' 생겨났고,
새로운 여성 과장이 등장했다.
그녀는 굉장히 쾌활했다.
지금까지 그런 캐릭터는 부서 내에 없었다.
조직 내 활기가 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취재원을 만나러 동행하던 길에
실장님이 내게 물었다.
"메기 효과라고 알지?
미꾸라지만 있던 연못에 메기를 풀어놓으면 말이야......"
지금은 너무 많이 알려지다 못해
옛이야기가 되어버린 바로 그 이론 말이다.
국내에서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1993년 신경영 선언 때 '메기론'을
주창하면서 화제가 된 이론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꼰대이론이라고 부르고 싶지만)
오히려 메기가 들어온 연못의 미꾸라지들은
메기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더 많이 먹고 더 열심히 헤엄치고
그 때문에 더욱 건강해진다는 건데.
모든 조직에 적용되진 않겠지만,
당시 내가 속한 조직에서는
실제로 그런 효과가 눈에 보이게 나타나고 있었다.
변화가 없던 아주 고요한 곳이었으니,
효과는 단박에 눈에 띄었다.
처음엔 너무 비인간적이란 생각도 했다.
'실장님 정말 너무하셔......'
'아니 어쩜 인간을 메기에 비유하냐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몇 년 후
그분이 그곳을 떠나시고 나서야 그 진가가 발휘 됐다.
우리 조직 내에선
앞선 미래 사업들이 발굴됐다.
전체 조직에서 우리 부서가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작고 조용하던 그곳은
"아, 요즘 그 사업 잘 나가던데~~~~~~"
"주임님 요즘 너무 힘드시죠~~~~
아니 그 사업 때문에 기자들 전화 많이 오지 않아요?" <-- 나는 요 얘기를 가장 많이 들었다;;
나의 답변은
"힘들긴 한데... 그래도 진짜 할 일이 있어서 좋긴 좋네요.
10대 공약 사업 안에 들었잖아요.
일 없어서 빌빌대는 것보다 낫죠, 그게 있어서 기자들한테 나가할 말도 많아졌고"
(진심이었음)
그 분과는 정말 많은 추억이 있는데,
둘이 기자회견을 준비하던 어느 날이었다.
대략의 사업 내용을 직접 추려주셨고,
나는 메시지를 정리해 설명회 내용을 정리했다.
헐레벌떡 해당 사업 담당이 실장실에 보고를 들어왔다.
그녀는 상당히 격앙되어 있었다.
첫마디는
"아니 이거 새로울 것도 없고, 원래 하던 건데......."
(나를 힐끔거렸다)
눈으로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니 이 기자회견은 왜 기획해서, 사람을 고생시키냐'
고 눈으로 욕하고 있었다.
침묵했다.
이 모든 기획은
연못에 메기를 넣은 그분의 계획이었다는 걸.
기자회견은 히트까진 아니지만,
중박 정도 터뜨리는 수준에서 마무리됐다.
기사도 기대만큼은 아니었지만,
무엇보다 해당 사업이 자리 잡는데 큰 도움이 됐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기자회견을 준비한 나에게 나쁘지 않은 실적이었지만
사업 담당자이던 그녀에게 가장 큰 공이 돌아간 셈이 되었다.
그녀는 고속 승진했다.
나는 그때 알게 됐다.
연못의 미꾸라지가 될 것이냐, 메기가 될 것이냐고 누군가 질문한다면,
메기도 좋고, 미꾸라지도 좋겠다고.
단지 메기가 없는 미꾸라지탕보다는
메기 한 두 마리 있는 미꾸라지탕이 좀 더 재미있지 않겠냐고 말이다.
연못에 메기를 한 마리도 아니고
몇 마리나 풀어놓고 그분은
조직 내 요직으로 옮겨간 후,
여전히 승승장구 중이다.
승승장구 중에도
내가 조직 내에서 잘 지낼 수 있도록
끝까지 도와주셨다.
정말 끝없이.
여하튼 이후 내가 아는 고위공직자 가운데, 가장 실속 있는 자리를 거머쥐었는데,
너무도 그럴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럴만한 자격과 능력이 충분히 있으니까.
아, 물론 그 분과 다시 일해보지 않겠냐고 묻는다면 나는 고민을 좀 더 해보겠다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