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 아파트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다 보니 익숙한 얼굴들이 많아졌다. 아이들 등교하면 바로 헬스장에 가기도 하고 오전에 못 갈 경우에는 저녁 준비 전에 얼른 다녀오곤 하는데, 시간대에 따라 고정 멤버들이 오는 것도 신기하다. 인사는 건네지 않지만 혼자 마음속으로 출석 체크하듯 익숙한 얼굴들을 살핀다.
제일 먼저 파악되는 얼굴은 내 아이들과 같은 또래친구의 엄마들.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재빨리 시선을 피한다. 다음 순서는 같은 동에 사시는 어르신들. 내가 띄엄띄엄 운동하러 가도 그분들은 매번 운동하며 관리하시는 듯싶어 호감이 상승한다.
우리 동에 사시는 할아버지도 그중 한 분이다. 머리는 하얗지만 키는 180cm 즈음, 허리도 꼿꼿하신 70대 어르신. 오늘도 운동하러 오셨구나 생각하며 지나치곤 했는데, 한 번은 엘리베이터에서 그 할아버지를 마주쳤다. 할아버지께서 먼저 인사하셨다.
"어? 체육관에서 운동하죠? 얼굴 봐서 알아요."
우와! 몸도 건강하실 뿐만 아니라 사람도 잘 알아보시나 보다.
"네! 저도 갈 때마다 봬서 알아요. 매일 운동하시나 봐요."
"하루라도 안 가면 몸이 오히려 힘들어요."
그 뒤로 헬스장, 아니 할아버지 말씀대로 체육관에서 볼 때마다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토요일에 근육 운동을 하고 있는데,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웃으며 다가오시더니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신다. 복숭아맛 사탕.
"아! 감사합니다!"
예상치 못한 사탕에 근육의 당김이 잊힌 듯 절로 함박웃음이 나왔다. 집에 가서 괜스레 가족에게 사탕 자랑도 하고, 거실 테이블에 두고 수시로 쳐다보게 됐다. 복숭아 캔디 하나에 정이 느껴질 줄이야.
복숭아 사탕을 받은 일주일 후, 뜻밖의 곳에서 오이 두 개를 선물로 받았다. 아이가 운동가는 날이라 아이를 태우고 40분을 운전하여 링크장에 도착했다. 아이를 내려 주고 나는 근처 주유소로 향했다. 링크장 바꾼 지 한 달도 되지 않았기에 멀어진 거리만큼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차 연료에 적응하느라 저렴한 주유소를 검색해서 두 번째 찾아간 곳이다.
셀프 주유소라는데 중년의 여자 사장님이 나오시더니 주유를 해 주셨다. 가격이 저렴해서 찾아왔는데 주유까지 해 주니 더운 날씨에 얼마나 편하던지. 일주일 후 다시 찾은 주유소. 이번엔 사장님이 결제 카드를 돌려주며 말없이 오이 두 개를 같이 주신다. 주유소에서 생수, 티슈 받은 지도 오래됐는데, 오이를 받다니. 주위에 논밭이 있던 터라 혹시나 하고 여쭸다.
"오이 직접 키우신 거예요? (네!) 우와~~ 귀한 오이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가격도 저렴하지, 주유도 사장님이 직접 해 주시지, 게다가 오이까지 서비스로 주시다니. 이제 라이딩 올 때마다 이 주유소로 올 것 같다. 오이 두 개가 나를 주유소 단골로 만들었다.
Run of the Mill
평범한, 보통의, 흔해 빠진
mill (방앗간, 공장)에서 나오는 run(생산물).
어디에서나 얻을 수 있는 평범함을 가리킨다.
treadmill(러닝머신)은 원래 죄수의 형벌로 사용되어 사람이 발로 밟아 돌리는 도구였다. 점차 건강히 살고 싶은 부자들의 욕구에 따라 운동 기구로 변화되어 지금의 나도 treadmill(러닝머신)에서 땀을 흘리고 있다.
treadmill이 벌을 내리는 특별한 용도로 쓰였다가 부자들을 위한 운동기구로, 이제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것처럼 특별함이 수천 개 조각으로 쪼개져 평범함 속에 숨어든 듯하다. 특별함은 저 멀리 있는 큰 덩어리가 아니었다. 헬스장에서 받은 사탕 하나, 주유소에서 받은 오이 두 개처럼 일상을 열심히 살아가면 이리저리 통통통통 뛰어다니는 특별함을 만난다.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이런 순간이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