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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원 Sep 27. 2024

이런 돼지국밥이 있습니다



이런 돼지국밥이 있습니다        



돼지국밥 하면 떠오르는 지역은 부산이다.

아주 어려서 부산에 몇 년 살았지만 그때는 돼지국밥이 뭔지도 몰랐다.

성인이 된 후 순댓국이나 곰탕과 같은 고깃국을 좋아하면서 부산에 가면 돼지국밥을 한 번씩 먹게 된다.

서울에 살면서 순대국밥이나 설렁탕, 혹은 곰탕집은 많아도 돼지국밥을 잘하는 집은 많이 보지 못했다.

그래서 서울에서 돼지국밥을 맛있게 먹은 기억은 거의 없다.          



오늘 저녁까지 일이 있어 일터 근처에서 일찌감치 저녁을 먹기 위해 근처를 산책 겸 나가서 식당을 둘러봤다.

2년 전쯤 지나가면서 본 적은 있지만 유심히 본 적은 없는 작은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에는 일반 식당이 아니라 쿠킹 클래스를 하던 곳이 식당으로 바뀌어 있었는데 메뉴에 돼지국밥이 있다.

‘라푸라’라고 하는 식당 이름과 마치 작은 이탈리아 음식 식당이 더 어울릴 것 같은 분위기의 식당에 ‘돼지국밥’이라니.

검색도 해본 후에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들어가니 아직 이른 시간이라 첫 손님인 나는 ‘맑은 돼지국밥’을 주문했다.          



돼지국밥의 유래는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먹을 것이 없는 배고픈 상황에서 미국 부대가 제공하는 돼지 뼈를 고아 설렁탕을 만들어 먹기 시작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돼지국밥은 전쟁통에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작은 삶의 희망의 온도를 올려준 음식이라 할 수 있다.

부산에서 먹은 돼지국밥의 이미지는 설렁탕과 같은 뽀얀 육수에 고기가 국물 깊숙이 들어 있는 이미지로 기억되어 있다.

그런데 마치 깔끔한 이태리 식당 같은 이곳의 ‘맑은 돼지국밥’은 맑은 국물에 너무도 정갈했다.

일부러 국밥에 어울리게 지은 고두밥이 맑은 국물에 말아져 그 위에 여러 겹의 얇은 돼지 수육이 다소곳이 얹어져 있다.

시장통 국밥집 사장님 분위기가 아닌 정갈한 쿠킹 클래스 선생님 같은 주인의 손을 통해 탄생한 돼지국밥은 그 이름의 느낌과 다르게 너무도 투명하고 깔끔하다.

이곳에 가서 이 돼지국밥을 몇 번 먹고 나면 내 마음도 맑은 국물처럼 맑아질 것 같다.          



경기 중계를 할 때 극적인 역전극이 펼쳐지면 캐스터가 “이런 경기가 다 있습니다.”라고 흥분하며 외친다.

오늘 속으로 “이런 돼지국밥이 다 있습니다.”라는 탄성으로 반전의 한 끼를 맛있게 먹었다.

계산을 하며 주인에게 식당 이름의 뜻을 물어보니 ‘라푸라’가 ‘너와 나의 푸드 라이프’라는 뜻이라고 한다.

부산이 아닌 일터 근처에서 만족스러운 돼지국밥을 만나니 속이 든든하다.

가끔 저녁을 혼자 먹어야 할 때가 생기는데 이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이따금 이 맑은 국물로 허기도 채우고, 냉기도 온기로 바꾸려 한다.  


            

#라푸라

#맑은돼지국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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