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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오마카세 (1)

절망의 끝에서

by 동그라미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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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오마카세 (1)

절망의 끝에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의 시간에 누군가는 주저앉지만, 누군가는 더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혁진은 카페를 오픈할 준비를 하면서 차 한잔의 향을 맡으며 눈을 감고 지난 몇 년간을 돌아보았다.

지금 자신이 서 있는 공간, 자기가 가는 길이 누군가에게 이끌려 온 꿈과 같기만 하다.

오늘도 카페에는 지치고 또 낙심한 사람들이 찾아올 텐데 불과 몇 년 전 자신의 처지도 다르지 않았다.

그 시간을 통과하며 겪었던 생각과 마음들이 오늘도 이 자리에서 손님들을 맞이하는 원동력이다.


2018년 봄.

경영학을 전공하고 여행업에서는 대기업 자회사 외에는 가장 큰 기업에 입사했을 때, 스물여섯 혁진의 미래는 탄탄대로처럼 보였다.

입사 첫날, 부모님은 자랑스러워하셨다. "우리 아들, 드디어 취직했네."

친구들도 부러워했다. "와, 너 그 회사 들어갔어? 한턱내라."

혁진도 자신감에 차 있었다. '이제 시작이야. 열심히 하면 과장도, 부장도, 언젠가는 임원까지도 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 기대는 만 2년 만에 산산조각 났다.

2020년 가을.

연초에 코로나 팬더믹과 함께 시작된 경제 위기의 여파는 금세 끝나지 않고 가을까지 이어지면서 견실하던 회사도 위기가 찾아왔다.

코로나 팬더믹으로 인해 여행업은 가장 큰 타격을 받았고 혁진이 다니던 회사도 결국 부도가 났다.

어떻게든 위기를 넘기고 이겨보려던 회사 동료도 결국 뿔뿔이 흩어져 자기 살길을 찾아야 했다.

혁진은 그날 퇴근길에 멍하니 걸었다. 손에는 짐을 담은 박스. 2년간 자신의 자리였던 책상의 물건들이었다.

'이제 뭐 하지?'


6개월 후.

혁진은 수십 번의 입사 지원서를 냈다. 그리고 열 번이 넘게 떨어졌다.

혁진은 서류를 넣고, 면접을 보고, 떨어지는 일을 반복했다. 모아둔 돈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부모님께 손 벌릴 수는 없었다. 이미 대학 등록금으로 빚을 졌는데, 더 이상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혁진은 낮에는 카페 아르바이트를, 저녁에는 대리운전을 시작했다.

카페 아르바이트 첫날.

"혁진 씨, 아메리카노 두 잔이요!"

"네, 알겠습니다!"

혁진은 앞치마를 두르고 커피를 만들었다. 경영학을 전공하고, 중견 기업에 다녔던 자신이 지금 시급 9,000원짜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일은 일이었다. 혁진은 성실하게 일했다.

밤에는 대리운전을 했다. 술 취한 손님들을 태우고, 집까지 데려다주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손님이 구토를 하기도 했고, 때로는 반말과 욕설을 듣기도 했다.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지?'

혁진은 자주 이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불안정한 삶 속에서 혁진은 삶의 여백을 찾았다.

낮에 카페에서 일하고, 밤에 대리운전을 하고, 그 사이 틈틈이 시립 도서관에 들렀다.

혁진은 일주일에 서너 권의 책을 읽었다. 철학책, 심리학책, 인문학책, 에세이 등.

'나는 정말 사회에 필요한 사람일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떤 가치를 만들 수 있을까?'

혁진은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재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혁진아, 구청에서 기간제 직원 뽑는대. 2년 계약직인데, 관심 있어?"

"무슨 일인데?"

"복지 업무야. 형편 어려운 분들 댁에 방문해서 돌봄 서비스 제공하는 거. 급여도 괜찮아."

혁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응, 지원해 볼게."


2022년 봄, 구청 복지과.

혁진은 기간제 직원으로 채용되었다. 그의 업무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웃들을 방문하여 실질적인 돌봄을 제공하는 일이었다.

첫 방문지는 독거노인 김칠순 할아버지 댁이었다.

혁진이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방 안은 오래된 신문지 냄새와 곰팡이 냄새가 났다.

김 할아버지는 작은 창문 옆에 쪼그리고 앉아 멍하니 밖을 보고 있었다.

혁진은 방 안에 익숙한 냄새가 아니라 '외로움' 냄새가 가득하다는 것을 알았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구청에서 나왔습니다."

"누구신가요?"

"저는 혁진이라고 합니다. 할아버지 건강은 좀 어떠세요?"

할아버지는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괜찮아. 그냥... 좀 외롭지."

혁진은 할아버지 옆에 앉았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할아버지는 아내와 자식들을 모두 잃었다. 혼자 이 방에서 몇 년을 살고 계셨다.

돈이 없는 것도 힘들지만, 더 힘든 건 외로움이라고 했다.

"아무도 날 찾지 않아. 난 이제 쓸모없는 사람이야."

혁진은 할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아니에요, 할아버지. 제가 있잖아요. 제가 자주 올게요."

2년 동안 혁진은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경제적 어려움을 넘어선, 마음의 외로움, 고통, 상처, 불안을 짊어진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암 투병 중인 홀어머니.

실직 후 알코올 중독에 빠진 아버지.

학교 폭력으로 상처받은 청소년.

이혼 후 홀로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

혁진은 그들의 넋두리와 한숨을 들었다. 그들의 눈물과 분노를 함께했다.

그리고 돈이나 물질적인 지원보다,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들어주는 존재가 절실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자신의 감정을 이해해 주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혁진은 도서관에 앉아 노트에 적었다.

'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일을 하고 싶다.'

'사람들이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내가 겪었던 고통이, 이제는 누군가를 돕는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

혁진은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바로,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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