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 III - 5 편
인생의 절반을 글로벌 비즈니스에 몸담았습니다. 지난 30여 년 경험과 구력이 해외 비즈니스를 계획하거나 도모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찬찬히 그간의 경험, 실용적인 얘기를 풀어내봅니다.
본 주제의 글은 저의 브런치북 '도전자들의 이야기 II'(목요일 발행)와 '30년 해외비즈니스 이야기 II'(일요일 발행)에는 10편이 발행될 때까지만 싣도록 하겠습니다.
저의 해외 비즈니스 이야기는 브런치 작가 지담과의 공저로 출간을 준비 중입니다. 지담은 브런치 작가이자 교수이며, 5년간 꾸준히 새벽독서를 이끌어 오고 있고, 지난 2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5시에 인문학의 깊이 있는 내용의 글을 브런치에 올려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저와 지담과의 공저는 개인의 경험이 불안과 급변의 사회에 사업을 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의미 있게 전해져 그들의 삶에 유익한 경험서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9월 내지 10월 출간예정이며 브런치에 우선 조금씩 공개하고자 합니다.
본 주제의 글은 새롭게 만들 저의 브런치북으로 매주 목/일요일, 지담브런치북 '지담과 제노아가 함께 쓰는 성공' 매주 토요일 5:00A.M. 발행됩니다.
사업을 한다는 것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과 아무리 뛰어난 개인이라도 결코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가령, 정치나 경제, 기후와 같은 영역은 제 아무리 역량 있는 사업가라도 개인의 통제밖에 존재하면서도 내 사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극위험변수라고 할 수 있다. 이들 동유럽권의 마피아가 연계된 사업의 메커니즘이나 문화 역시 개인의 통제밖에서 내 사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위험변수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쯤에서 그 나라의 문화를 바꾸는 것은 우리로서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자 변수라 인정하더라도 개인의 통제영역 내에 있는, 즉 우리 한국인이 지니고 있는 원칙주의나 자신의 사업적 성향, 사고체계에 대해서는 한 번쯤 짚어볼 필요가 있다.
고대 중국의 전설적인 전략가 제갈공명이 자신의 신념을 위해 신뢰하던 부하, 마속을 처형한 이야기 '읍참마속[泣斬馬謖]'을 들어봤을 것이다. 공정한 업무처리나 법을 적용하기 위해 사사로운 감정을 포기하는 원칙주의를 대변하는 사자성어라고 할 수 있다. '부러질지언정 휘거나 굽히지 않는다'는 굳건한 태도. 우리는 이 태도를 숭배해 왔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칼을 꺼냈으면 무라도 잘라야'와 같은 말들을 어려서부터 줄곧 들어왔고 조직생활에 있어서도 우리에게는 자율성보다는 경직성에 더 적응해야 하는 문화 속에 살아왔다. 게다가 한국의 남자라면 거쳐야 하는 군대문화는 이러한 경직성, 원칙주의적인 사고를 더욱 굳건하게 다지게 해 준다.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는 사업가라면 그 나라의 문화부터 이해해야 한다고 1, 2장에 걸쳐 강조한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경직과 정도를 숭상하는 만큼 이들에게는 유동성과 여유가, 우리의 상하복종이나 상명하복이 허용되는 범주보다 이들에게는 수평적, 능력위주의 문화가 더 지배적이며 우리에게는 제도와 규정을 칼같이 지켜내는 것이 공명심다운 행위에 근접하겠지만 이들에게는 어떤 규정에서도 개개인의 특성을 반영해 주는 것이 훨씬 거래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일터문화인 것이다. 박법인장의 사례는 그 나라 문화의 흐름에 따라 사업을 해나가지 않을 경우 '지키려는 노력이 오히려 그릇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였다고 할 수 있다.
박법인장은 고집스러운 원칙주의자였다. 사업에서 거래선들의 비리나 속임수라고 판단되는 사례가 발견되면 가차 없었다. 그리고 규정대로 그 사태를 수습했다. 비리는 제품공급이나 거래중단으로 이어졌는데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간 거래해 온 거래선이라도 모두에게 공평하게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게다가 상대의 잘못으로 인해 우리 쪽도 손해 본 것이라는 판에 박힌 논리에 의해 거래중단 시 적정한 정리비용을 지원해 주지도 않았던 것이다. 신뢰파괴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할 상황처럼 냉정하게 사업을 이끌었다.
사실 박법인장의 잘못은 없다. 그 누구도 개인에게 이 잘못을 돌릴 수는 없다. 박법인장은 회사 내 조직문화에 의해 그렇게 시행한 것이며 회사차원의 대처를 책임지는 책임자로서 더 공평하게 원칙과 내규에 따라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간과한 것은, 여기는 한국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러한 소소한 거래선들의 불만이 계속 쌓여갔고 심지어 거래중단으로 부도를 맞은 거래선들도 생기게 되다 보니 결국 거래선들끼리의 담합이 마피아를 사주하는 지경까지 몰고 간 것이라 할 수 있다. 어쩌면 박법인장은 회사를 대신해 피해를 입은 희생양이었을 수도 있고 유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고지식한 기업인일 수도 있다.
피로 얼룩진 핼러윈을 겪으며 나는 당시 내게 물었던 질문을 이 책을 읽는, 글로벌비즈니스를 꿈꾸는 기업 내지 기업가에게 묻고 싶다.
원칙주의가 항상 바람직한 결과를 도출하는가?
공명심이란 과연 어느 선까지 지켜내야 하는 것인가?
회사를 위해 개인의 희생은 감수되어야만 하는 것인가?
어떤 개념을 제대로 인지한다는 것은 '참'으로 존재하는 것을 발견하기 위해 자신이 원래 자연스럽게 안락함을 누렸던 현상세계를 떠나는 것이다. (중략) 현상이 아닌 더 중요한 것이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이 개인의 정신에 존재할 때만이 개념을 제대로 인지했다고 할 수 있다(주 1)
원칙주의, 공명심이라는 두 단어는 조직생활의 잔뼈가 굵은 기업가나 정치인들에게 아주 익숙한 안락함일 것이다. 하지만 이 두 단어를 적용하는 순간, 자신이 그 사태를 더 가치 있게 이끌 수 있는 길을 포기하거나 회피하는 길로 들어설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아니, 오히려 회피하기 위해 이 두 단어를 이용하는 사람도 있다.
해외에서 34년 근무하면서 만난 많은 이들 가운데는 한치의 틈도 주지 않고 매뉴얼과 규율대로 업무를 처리하는 직원들이 많았다. 그중 S기업의 김 차장도 소문난 원칙주의자였다. 능력도 출중했고 절도가 있고 일처리 또한 너무나 깔끔해서 신뢰도 높았지만 단 한 가지, '칼'같이 '빡빡'한 그의 원칙주의적인 공명심은 모든 팀원들을 경직시켰다. 경직은 숨결이 들어갈 틈이 없기 때문에 고인 물처럼 썩는다. 경직과 경직이 만나면 마찰을 일으키고 마찰은 소모로 이어진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경직된 문화는 조직구성원 개개인을 경직시키고 경직된 개인과 더 경직된 개인에게서 도출될 부산물은 마찰 즉, 갈등밖에 없다. 처음엔 하소연이고 푸념이고 넋두리이겠지만 이는 침묵으로, 침묵은 비난으로, 비난은 날카로운 칼이 되든 육중한 망치가 되든 반드시 조직을 붕괴시킨다.
물론 원칙주의자들에게는 상당히 큰 장점이 있다. 실수도 거의 없고 '일'에 있어서만큼은 확실한 신뢰를 줄 수 있지만 유럽에서 사업을 성공하려면 일을 잘하는 것보다 감성을 서로 나누는 것, 삶을 교류하며 교제하는 것이 오히려 더 일의 성과에 중요하다. 그러니 자신이 지키려는 원칙이 아집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점검해야 한다. '엄격함과 너그러움의 경계가 분명치 않을 때 너그러움이 먼저'라는 공자의 말씀은 오히려 동양보다 유럽에서 사업하는 이들에게 더 강력하게 적용시켜야 할 덕목인 듯하다. 경직된 원칙을 따르기보다 세상의 흐름에 순응하는 원리를 따라야 하는 곳이 우리나라보다는 유럽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일중심이 아니라 인간존중의 가치를 더 원하기 때문이다. 복지가 우리보다 월등한 이들에게 일은 삶의 부분일 뿐, 우리처럼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켜내야 할 자리가 아닌 것이다.
III - 6편에서 이어집니다.
(주 1) 한나아렌트, 정신의 삶, 2019, 푸른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