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자의 시각에서 ~
참 오랜 기간 배웠는데 세상엔 여전히 배울 것이 많다. 책, 스승, 친구, 상사, 동료들에게서 그리고 후배들에게서도 배우는 것도 많다. 최근에 다양한 영역에서 자신의 세계를 키우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스타트업을 열어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이들이 특히 내 관심을 끌어당긴다. MZ 세대가 주축을 이루고 있고, 20대부터 4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는 스타트업 세계는 36년을 한 기업에서 일한 나에겐 미지의 영역이다.
대면하고 얘기를 나누기도 전에 이들에게서는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기운이 있다. 신선 냉장고에서 갖 꺼낸 채소처럼 푸른빛과 이슬이 송송 맺힌 청초한 생동감이다. 이들이 내뿜는 기운의 원천이 뭔지 궁금해서 대화 중에도 그 답을 찾고 싶어 몰입을 하게 된다. 젊은 세대를 통칭하는 MZ들의 다양한 모습들이 있는데 이들의 기운은 분명 다르다.
앞의 여러 글에서도 얘기를 하였지만 한국의 젊은 세대가 어려움으로 신음하고 있고, 더욱이 지금이 과거 어느 때보다 젊은 세대가 돈을 벌기 어려운 시기라고 한다. 경제의 불확실성, 청년실업, 자영업 몰락 등의 화두에서 어느 하나 건강한 부분이 없으니 분명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많은 수의 대학생들은 학자금을 걱정해야 하고, 졸업 후에도 취직을 걱정해야 하며, 일할 곳을 구해도 다음 단계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여전히 많으니 제 아무리 미래는 불투명하다고 하지만 그 불안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해결하기 쉽지 않은 사회적 모순에 빠진 상황에서 시대의 주역이 되어야 할 젊은 세대는 희생의 세대가 되어 고민은 깊어지고 동시에 냉소적이고 부정적인 기운은 강해져 이 세대를 아우르는 전체 느낌은 신음으로 대변되는 듯하다.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해도 돌아오는 것은 불안한 현실이니, 어느새 삶의 기준, 가치의 기준은 불안 해소의 해답이라 생각되는 '돈'으로 대변되어 이 세대를 지배한다. 소중한 것보다는 필요한 것에 무게를 두고, 중요한 것보다는 당장 급한 것에 허둥지둥하고, 꿈보다는 현실에 허덕이면서 방향 없이 정신세계의 혼란과 사고의 혼탁 속에 정체성은 상실되고 있다.
그러나, 여러 무리의 젊은 사람들이 보여주는 모습을 통해 상술한 냉소적인 이해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하게 된다. 이들과의 대화에서, 이들의 자세에서, 이들의 단어에서, 이들이 그리는 꿈에서 다른 기운을 느낀다. 이들은 배우고 생각하고 고민한 것을 구체화하려 한다. 아이디어가 구체화되는 모습에서 가능성을 찾아낸다. 가능성에서 확신을 갖고 비즈니스로 나아가는 도전을 한다. 이를 위해 투자자를 찾아다니고 이들을 설득한다. 설득의 과정에서 때로는 초라해지기도 하지만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믿고 될 때까지 시도한다. 물론 좋은 아이디어는 여러 곳에서 투자하겠다고 나선다. 험난한 과정으로 획득한 투자는 객관적 검증이니 한 단계 더 강한 확신을 주어 아이디어를 구체화함에 박차를 가한다.
시간을 금 이상으로 여기고 분까지도 쪼개어 사용한다. 흔히 듣는 혼밥, 이기적인 특성도 나타나지 않고 팀 정신으로 똘똘 뭉쳐 같이 만들어 간다. 쌓인 피로를 회식으로 푸는 모습에 회식을 기피하는 시대의 특성과도 다름을 보게 된다. 부정적인 단어는 들을 수가 없고 된다는 믿음과 된 후의 성취, 성공에 대한 단어만이 들린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현상을 이해하는 관점도 그냥 젊은이가 아니다. 벌써 기업가의 시선, 관점, 안목을 가졌다. 피동적이지 않고 능동적이고 방어적이지 않고 적극적이며, 안 되는 이유보다는 해야 하는 이유가 먼저이다. 부유한 자는 1%의 가능성을 보고 시도하고 가난한 자는 1%의 리스크에 포기한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이들의 눈빛은 예사롭지 않다. 최근 9개월 동안 듣고 본 신음하는 이들의 눈빛과는 분명 다르다.
한 스타트업대표는 과일의 단맛에 몰입한다. 매해마다 다른 과일의 맛, 특히 당분에 대해 고민을 계속하던 차에 균등한 당분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 찾아낸 비법을 들고 후원, 투자자들을 찾아 설득을 한다. 분명히 된다는 것을 확신으로 설명하고, 비법이 결과로 나타날 때 그 이후의 파생 효과는 복리로 확대됨을 보여주어 후원과 투자를 끌어낸다. 생각을 구체화하고 당분이 채워진 과일 맛을 확인하면서 성취감을 얻는다. 그 성취감은 된다는 확신으로 다져지고 비즈니스로 펼쳐진다.
생각을 결과로 만들어 내는 과정을 공정으로 디자인하여 설비를 갖춘다. 연구한 기술들을 공정에 접목하여 설비가 움직이게 하고 공정의 비효율성은 걷어낸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생각대로 반듯한 공정이 완성되고, 설비는 상당한 틀을 갖춰 당분을 머금은 과일로 탈바꿈시킨다. 그리고 탄생한 아이디어는 예쁘게 포장되어 만날 주인을 기다린다. 다시 태어난 듯, 단장된 과일은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 여기저기로 배달된다. 생각이 결과로 구체화되고 매출과 이익으로 정량화되어 투자자들의 믿음에 보답을 한다. 그리고 꿈을 꾸는 스타트업 대표는 다음 단계의 성취를 향해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긴다.
스타트업 세계에는 부정적인 모습들도 많다. 꿈, 사명보다는 시작부터 IPO, Exit을 염두에 두는 이들도, 보이는 것만 포장하여 돈만 벌려는 이들도, 짧은 단기간의 성과에만 집중하는 이들도 많다. 이들을 만나 보았기에 눈빛, 자세, 몸짓, 단어가 다름을 안다. 이들에게 스타트업은 돈 버는 툴이다. 돈을 벌기 위해 스타트업 세계의 사각지대를 활용하고 포장에 집중한다. 창업자는 Exit 하고 남겨진 직원들만 회사를 지키지만 과포장된 스토리는 현실에 부딪혀 실체가 드러나고 앙상한 뼈만 남은 좀비기업이 된다. 이러한 스타트업 무리들은 아무리 설득력 있는 얘기를 늘어놔도 좋은 기운을 느낄 수 없다.
같은 시대, 같은 세대.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이 시대가 핑계가 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동기가 된다. 같은 어려움에 저당 잡혀 있지만 어떤 이의 눈빛은 보석 같고 어떤 이의 눈빛은 돈의 노예가 되어 있다.
다시 세밀히 봐야겠다. 엔터프리너(Entrepreneur)와 엔터프리너가 되고자 하는 이들은 보편의 MZ와 다르고 특히 눈빛이 다르다. 이들에게는 통용되는 MZ 특성이 적용 안된다. 꿈을 좇는 엔터프리너들의 깊은 눈빛이 있기에 여전히 희망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