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노아 Nov 09. 2024

도둑질에서 만난 인연과 행운에
대하여..

도전자들 이야기 II

학위 과정 1년 차 2학기 과정이 벌써 반이 훌쩍 넘었다. 25년 만에 또 찾은 교정의 정취에 빠지노라면 어느새 시간은 저 뒤로 지나가고 있다. 다시 찾은 학교 교정에 배어있는 따뜻함, 맑음, 청명, 흥, 젊음, 그리고 탐구의 기운은 내 가슴에도 찐하게 배어든다. 교정의 신선함은 머리를 맑게 해 주었고, 휘날리는 라일락 잎은 눈동자를 열어주었고, 농구 코트의 땀 내음은 코끝에 거센 기운을 불어넣었고, 밝은 후배들의 재잘거림은 흥의 리듬으로 다가왔고, 도서관의 진중한 소리는 묵직하게 지혜의 욕구를 독려해 주었다. 교문을 나서면 길거리 한 모퉁이의 떡볶이 포장마차 향도 잠들어 있던 감각을 불러내었다. 하루 종일 교정에 있노라면 육체는 힘이 드나, 뇌는 과하게 활동하여 오감을 활짝 열고, 이성을 불러내고, 지성을 자극하고, 감성을 독려하고, 의식을 작동시키고, 그리고 감각을 활성화시켰다. 


매월 첫째 주 토요일, 일요일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원우들과 한 강의실에서 하루를 같이 보낸다. 강의, 발표, 토론의 과정은 왜 이들이 학위 과정을 지원할 수 있었는지 그 동기의 적정성과 자질을 증명해 낸다. 책과 아티클을 통해 얻게 되는 지식과 지성에 경험을 갈아 넣으니 그 발표 내용은 충분히 가치롭다. 준비과정에서 쏟아부은 호기심, 집중력, 혼신, 탐구, 열정은 고스란히 내용에 묻어나고, 정리한 내용을 PPT로 시각화하고, 발표로 핵심을 경청자의 뇌리에 박히게 하는 역량은 감각적으로 느껴진다. 학업에 임하는 이들의 표정에는 호기심과 자신감이 겹으로 마주하고 있고, 아는 것을 나누고자 하는 여유와 배려도 두터운 겹으로 겹쳐 있다. 지성과 격을 갖춘 원우들을 만난 것은 뒤늦은 도둑질 과정에서 얻은 행운이고 소중한 인연이다. 내게 도둑질을 허락한 이들을 소개하며 왜 이들이 내게 소중한지 나누고 싶다.




원우들 몇 명을 소개하고자 한다. 22명의 학위 과정 동기의 대표를 맡은 훈영이는 대기업 임원으로 재직 중으로 만능 재능꾼이자 가족사랑꾼, 소통꾼 리더다. 후배, 동료, 선배를 끌어안을 수 있는 그릇을 가지고 있고 배려할 줄 아는 넉넉한 여유도 가지고 있다. 발표와 토론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들으면 그 생각의 건전함, 세밀함, 진지함을 알 수 있고, 과정을 통해 얻어가고자 하고 시간과 열정을 쏟으면서 진정성으로 준비하는 자세와 그간 쌓아온 지식의 량도 무척 크다. 양극의 관점으로 표현하면 음양이 최적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사람이다. 


동기의 학업을 자발적, 적극적, 창의적으로 지원하는 학술 담당 우진이는 배우는 학자이다. 증권거래소에서 포청천의 지혜와 냉철함으로 신규진입 기업들을 심사하는데, 우진이의 모습을 보면서 증권거래소 역할에 긍정적인 관점을 갖게 되었다. 배움에는 주저함이 없고, 모름이 불편하여 알아야 하며, 호기심의 영역이 넓기에 답을 찾아야 한다. 지혜롭고 지적 능력이 높아 총기가 드러난다. 자신에게 엄격하나 타인에게는 유연하고, 얘기꾼은 아니나 얘기의 즐거움과 높낮이를 조절할 줄 알고, 자신의 꿈과 목적을 향해 한 땀 한 땀 왜 배우는지의 의미를 만들어간다. 인풋이 많기에 아웃풋이 많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동기들에게 과제와 발표, 지식 탐구의 모범을 보여주는 주연이는 놀라우리만큼 똑똑 소리가 나는 똑똑이다. 회계펌 멤버답게 과제에 대한 탐구력, 준비력, 그리고 완성력이 매우 높다. 주연이 다음의 발표자도 실력이 뛰어나지만 주연이 다음에 발표를 하는 것은 운이 없다고 봐야 한다. 교수의 강의, 원우의 발표, 원우와의 토론에 적극적인 반응으로 독려하고, 좋은 결과를 끌어내는 마력이 있다. 까다로운 성격일 것이나 배움의 장에서는 능동적으로 앞장서고 먼저 소통하는 모범이 되는 사람이다. 


촌철의 질문, 명료하고 위트가 있는 표현, 독려하는 여유와 배려하는 마음이 넘치는 일진이는 매력 덩어리다. 목소리마저 끌림이 있고 우월한 신체 구조에 번뜩이는 지혜까지 겸비하고 있다.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하지만 원우들이 다가가게 되는 끌어당김이 있다. 사안, 현상을 보는 시각은 긍정적이며 위트로 의견을 나누는 능력자이다. 어떤 논문을 쓸지 궁금함이 생기게 하는 가치 덩어리 사람이다. 

(여러 사람을 더 소개하고 싶지만, 여기서 중략…)                   




퇴임을 하고 120세를 돌아가는 시점에 학위 과정을 시작한 것은 어쩌면 무리한 도전 일수도 있다. 원하는 수준의 지식과 갭이 클 수도 있고, 활용할 수 없는 배움이 될 수도 있고, 소중한 시기의 시간을 잘못 사용한 결과가 될 수도 있다. 실력이 부족하거나, 뇌 활동이 부족하여 못 따라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기우이고, 나의 이 도전은 교정의 에너지에서, 원우들의 인연으로 힘을 받고 시간이 갈수록 가속도가 붙는다. 우려보다는 실행으로, 부담은 기대로, 버거움은 즐거움으로 대체되고, 도전의 여정에 같이 있는 좋은 인연들이 덤으로 행운처럼 왔기에 가치롭다. 이 도전의 여정에서 뭘 얻어갈 수 있을지 명확히 보인다.   


좋은 인연은 곧 참 행운이고, 참 행운이 주어진다는 것은 신의 개입이다. 이 인연들을 만난 것은 신의 개입이기에 소중하게 여겨야 하고, 분명 좋은 쓰임을 염두에 두고 맺어준 것이니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인연이 맺어졌다는 것은 그 인연에 대한 나와 너의 기대보다 신의 기대가 더 큼을 의미한다. 인연과 행운은 늘 같이 하고, 좋은 인연의 결과는 복(행운)으로 나타난다. 우리가 자주 얘기하는 ‘운칠(運七) 기삼(技三)’ 에서 운도 Network(인연)의 결과물이다. 즉, 좋은 인연을 만난다면 내 운을 내가 만들 수도 있다. 


인연의 힘은 강하다. 이것은 우주의 원리로, 현생에서 인연이 일어나기 위해선 억만갑자의 시간이 소요될 정도로 소중하다. 나의 이 인연은 교정의 향기에 끌려왔기에 가능했지만, 이미 오랜 시간 전에 오늘을 위한 인연의 끈들이 있었음이다. 도전을 계속할수록 인연은 넓어지고 그 끈은 성취로 이어질 것이다.                  

이전 13화 여러 갈래의 선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