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글이 되다 II
아내와 함께 제주도에 가게 되었다. 내가 몰랐던 아내의 어린 시절이 묻어 있는 곳, 제주로 여행을 떠나는 기분에 설렌다. 제주도는 아내의 고향이고 어릴 적 추억이 담긴 애틋한 곳이다. 마음속의 제주를 아내는 꽤 오랜 기간 동안 방문하지 못했다. 나의 회사일로 인해, 지난 20여 년간 해외에서 줄곧 살았기에 그동안 제주를 방문할 기회를 만들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아내의 설렘, 궁금함, 기대는 더 했을 듯하다. 도착 첫날, 아내는 추억의 마을을 방문하였고 옛 기억을 더듬어 구석구석을 찾아보았다. 기억은 정확한 듯한데 그 기억에 남아 있는 흔적은 보이지 않으니 아내의 아쉬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큰 나무 한 그루 외는 마을에는 남아 있는 게 없으니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한걸음 뒤에서 본 아내의 뒤 모습은 담담한 듯 하지만 씁쓸함이 묻어 나는 듯했다.
추억 속에 남아 있는 그곳을 찾아갈 때의 설렘과 기대는 마치 선남선녀의 첫 선을 볼 때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만남의 설렘과 만날 사람에 대한 기대가 있듯이 어릴 적 뛰놀던 곳에 대한 향수도 같을 듯하다. 그 모습 그대로 있다면 솟아나는 감정과 추억의 자극들은 아마도 주체하지 못할 듯하다. 그때의 느낌으로 가슴속에 따뜻함을 묻어내고 싶고, 그때의 기억들로 잠시 그리고 조금이라도 마음을 맑게 하고 싶을 듯하다.
우리네 가슴속에는 이러한 곳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가면 반가이 맞이하고, 있던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면서 나의 변모도 받아 줄 수 있는 넉넉한 곳이 마음에 있을 것이다. 아내 마음의 고향인 제주의 작은 마을이 그렇듯이 내게도 이런 곳이 있다. 외할머니가 사신 곳은 시골 언덕 중턱에 자리 잡은 단출한 기와집이다. 중간에 부엌을 두고 양쪽에 방이 있고 큰방 앞에 대청마루가 있어 언덕 아래를 내다볼 수 있었다. 대청마루를 내려서면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정도의 비포장길이 있고 이를 가로지르면 텃밭으로 이어진다. 텃밭엔 여러 종류의 야채들이 있어 여기서 나온 야채들로 여름 한 낮엔 비빔밥을 종종 먹었는데, 매운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서 땀 흘리며 먹던 기억이 뚜렷하다.
할머니 집을 지나 언덕 방향으로 올라가면 동네 이장집이 있었다. 열일하셨던 아저씨였는데 인사에 대해 무척 예민하셨던 분이었다.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도 그 집을 지나갈 때는 마치 ‘제가 지나가니 허락해 주세요’라고 신고라도 하듯이 크게 외치면서 인사를 했었다. 이장집을 지나 곧장 언덕 위로 올라가면 꼭대기에 큰 나무가 있었고 그 나무그늘 아래에 넓은 평상이 놓여 있었다.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놀이터였는데 어떤 이유였는지 자주 갔었다. 여름밤에는 파란색 모기장 속 모기향까지 피우고 대청마루에 누워 세상의 아름다움을 생각하였고, 선명하고 맑은 많은 별들을 보면서 소소한 꿈을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다 생리 현상이 밀려오면 할머니집과 이장집 중간 지점에 있던 구식 화장실을 찾아야 했었는데 불도 없던 터라 칠흑 같은 밤에 이곳을 가는 것이 꽤 큰 도전이었다.
여름 방학이면 종종 생활을 했던 이곳은 나에겐 특별함을 주었다. 시골, 할머니, 마을 사람들, 대청마루, 큰 나무와 대평상, 텃밭의 싱그러움, 넘칠 듯 가득한 별들처럼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소중한 특별함이 있는 곳이다. 추억을 떠올릴수록 마음이 맑아지고 있음이 느껴지는 기운이 있는 곳이다. 추억의 여운은 그곳을 다시 찾을 때 그 모습 그대로를 볼 수 있을 듯 한 꿈을 꾸게 한다.
복숭아나무가 많았던 한강변의 추억도 뚜렷하다. 한강변의 거친 모래로 땅을 만들고 물을 가두어 작은 고기들을 몰면서 놀던 곳이었다. 맑은 물속 작은 물고기들이 수면아래 모래를 헤집으며 다녔고 여름날에는 멱을 감을 수 있는 천연 담수탕이었다. 업무 출장 때마다 들렀던 미국 LA 근교 래돈도 비치도 그러했다. 스팀으로 찐 새우를 소쿠리에 푸짐하게 담아서 내어 주던 그곳도 이국 땅이지만 정을 느낄 수 있던 곳이었다. 엉성했지만 여유로웠고 푸짐했지만 저렴하여 누구든 편안한 마음으로 석양을 즐길 수 있는 곳이었고, 새우를 찌던 스팀기에서 나오는 뜨거운 수증기는 겨울에도 사람들 마음에 따뜻함을 전달해 주던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추억의 장소, 옛 정취가 남아 있는 곳이 극히 드물다. 아내가 오랜만에 찾은 고향 마을에는 그때의 흔적이 대부분 지워져 자취조차 찾을 수 없었다. 마을을 가로지르던 개울은 도로가 되었고 수영하며 놀던 마을 어귀의 바다는 콘크리트 방파제로 둔갑해 버렸다. 이정표 역할을 하던 큰 나무만이 남아 있는 마을의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만 갖고 돌아왔다. 그때의 모습만이 아내가 생각하는 고향이기에 아내의 아쉬움과 씁쓸한 마음은 어찌할꼬?
내 마음에 남아 있는 외할머니집, 이장집도 사라졌고 도로가 되었으며 집 앞 텃밭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언덕 꼭대기에 있던 큰 정자나무는 남아 있지만, 정취라곤 느낄 수 없는 완전히 다른 곳이 되었다. 복숭아나무가 많았던 한강변의 얘기는 상상 속에 남아 있을 법한 거리가 되었다. 이국땅이지만 LA 근교 래돈도 비치의 푸짐한 인심, 수증기 가득한 따뜻함을 나누어 주던 사람들, 그리고 맥주 한잔의 추억에 담아 오던 석양의 운치는 사라지고, 얄팍한 인심들로 가득하고 건조한 상업지구가 되었다.
그냥 옛 모습, 옛 마음 그대로 두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옛 것이 그리울 때가 부쩍 많다. 천연의 모습으로, 때 묻지 않은 모습으로, 정겨운 모습으로, 넉넉한 모습으로, 따뜻한 모습으로, 때로는 무서운 모습으로 남아 있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힐링이라는 용어로 순수의 시대를 체험하자는 실험적인 시도를 하는 분들이 많다. 추억이 깃든 카페, 음악, 물품 등과 함께 자연스럽고 때 묻지 않은 시절을 그리워하며, 그 시절을 다시 느껴보자는 취지의 활동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이는 옛 것을 그리워하고 옛 것에 대한 존중의 마음이고, 옛것의 가치를 그리워하는 마음이다. 바뀐 세상에서 옛 것에 대한 아쉬움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속에 담아 두고 싶은 정취, 추억이 있는 곳은 그대로 있었으면 하는 바람은 해보지만, 그들에게만 그것을 지켜달라는 것은 이기심이니 마음에 담아 두고만 있을 뿐이다. 건조한 삶에 이런 잔잔한 공간에 대한 바람이 있는 것도 나쁘진 않은 듯하다.
옛것을 그대로 다시 만나고 싶은 것은 비단 나만의 욕심일까.
아마 모두가 그리 원한다면 그것을 남겨두었을 것인데 많은 이들이 그것을 원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원하지만 지킬 힘이 없어 빼앗겼거나 이도저도 아니면 지키고 싶은 마음조차 없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도통 모르겠다.
왜 우리는 어린 시절을 사진 속, 기억 속에서만 만나야 하는 것인지.
과연 이러한 '잃음'이 손실인지조차 모르는 이 시대의 우리 자신들을 원망해야 하는 것인지.
힘을 가진 자들의 욕심에 손도 못써보고 너무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채 발만 동동 구르는 안타까움을 어찌해야 하는 것인지.
하지만...
지금 내 머릿속을 강타하는 것은
과연 나는 나의 아이들을 위해 무엇을 지켜주려 애쓰고 있는지 나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이조차 무엇인지 모른다는 사실이며 지킬 것을 위해 내가 힘, 의지를 지니고 있는지도 의문스럽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