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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노아 Nov 19. 2024

고행의 인생테 그리고 슬픔의 승화

일상이 글이 되다 II

한 사람의 인생 여정은 그 사람의 신념과 삶의 태도를 오롯이 보여준다. 특히, 산티아고 순례길을 두 번 완주하고,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포함한 세계 각지의 길을 걸어온 한 선배의 이야기는 감동, 감탄을 자아낸다.


산티아고 순례길 두 번 (1500km), 히말라야 EBC 해발 5550M 트레킹, 알프스 3대 미봉 트레킹, 파타고니아(아르헨티나, 칠레) 트레킹, 까자고 천사산맥 트레킹, 캐나디안 로키 트레킹, 베트남 사파 트레킹, 해파랑길 750km, 남파랑길 1,470km, 서파랑길 1,800km, 제주 올레길 425KM, 지리산 둘레길 300km, 이순신백의종군길 670km, 서울 둘레길 157km… 


세계 곳곳에서 걷기를 하신 한 선배의 기록이다. 대표적인 곳을 추렸지만 분명 걸은 곳은 더 많았을 것이다. 중남미에서 북미를 거쳐 중앙아시아, 동남아를 돌아, 유럽 땅끝 마을을 찍고, 한국의 곳곳을 걸은 기록이다. 가장 최근의 기록은 두 번째 산티아고 순례길인데 이번에는 프랑스 길이 아닌 포르투갈 길이었다.(주 1) 


이 길은 지금 75세(?)가 되신 한 선배의 인생테다. 걷는 게 중독처럼 된 사유와 사연이 분명 있을 것이고 세계를 걷는 도전에도 뜻하는 목적이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선배의 스토리를 바탕으로 한다.   




그의 삶에서 걷기는 단순한 운동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선배의 걷기 여정에는 항상 부인이 같이 하며 친한 동료 부부와 같이 한다. 같이 하는 여정이니 부부간에 생기는 교감과 공감이 어떨지 짐작이 되고 동료와는 우정 이상의 정과 생각이 공유될 듯하다. 트레킹이라 하기에 분명 이 긴 걸음은 고행이었을텐데 고행의 여정에서 열게 되는 마음의 넓이와 깊이는 어떠할까? 말을 나눌 필요도 없이 서로의 얼굴, 표정만 봐도 생각을 알고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듯하다. 걷는 것에 뜻을 같이하고 고행을 선택함에도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니, 생각으로 소통하고, 마음으로 헤아리고, 행동으로 배려하는 선배와 부인, 동료 부부 상호 간의 교감 그리고 그렇게 공유된 시간과 경험은 단순한 우정이나 가족애 이상의 결속감을 만들 듯 하다.


지금도 여전히 길 위에 서 있는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 한 부류는 산티아고 길을 걸은 사람이고 또 한 부류는 그 길을 걷지 않은 사람이다. 그리고 산티아고 길을 한 번도 걷지 않은 사람은 있지만 산티아고 길을 한 번만 걸은 사람은 없다.” 산티아고 길을 걷지 않았지만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된다. 걷는 것도 중독이기에 걷기에 빠진 사람은 계속 걸으려 하게 되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10번 다녀온 사람도 있기에 그 말뜻은 충분히 전달 된다. 선배의 말에는 길 위에서 얻은 깨달음과 중독적인 경험이 담겨 있다. 걷기가 단순한 신체활동이 아니라 삶의 철학이 된 것이다.




이 선배의 걷기 이유가 산티아고를 다녀왔기 때문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무심코 내뱉는 말에 왜 걷기를 하는지 참 이유를 알 수 있다. “배는 항구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지만, 항구에 머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주 2) 코엘료의 글을 인용하면서 배가 항구에 정박하려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듯 집에 안주하고 있으라고 나이 먹는 게 아니라고 얘기한다. 산이 높은 것을 확인하려고 산에 오르는 것이 아니듯, 저기 길이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길을 걷는 것 또한 아니라고 한다. 


어떤 사람이 항구를 떠나자마자 매우 심한 태풍을 만나 여기저기를 떠다니며, 곳곳에서 불어닥친 바람의 풍향변화에 따라 같은 해역을 빙빙 돌아다녔다고 하면, 것을 가지고 긴 항해를 했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주3) 


산이 있어도 내가 오르지 않으면, 길이 있어도 내가 걷지 않으면 산도, 길도, 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얘기한다. 힘들게 오르면서, 걸으면서 고생도 하고 후회도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더욱 성숙해지고 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김형석 교수의 글을 인용하면서 걷는 의미를 하나 더 추가한다. “인생에서 가장 보람 있는 일은 남을 위해 사는 것이다(주 4)”를 공감하면서 걷기의 의미를 찾았다고 한다. 그래서 선배는 걷기의 의미를 더 확장해갔다. 걷기가 남을 위해 봉사하는 일이 되도록 했다. 1Km를 걸을 때마다 1000원을 적립했고 1년에 1천 KM를 걷는다면 1백만 원을 적립하게 된다. 주변의 친지나 모임에서 동참하게 된다면 일 년에 수천만 원도 가능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이 생각은 곧 실천에 옮겨졌고 BTT (Blue Tree Trekking) 걷기 모임을 만들어 매 분기 걷기 행사를 하여 모금을 하였고 그 기금을 매년 푸른 나무재단(주 5)에 기부하였다. 그리고 본인이 걷는 한, 이 재단 후원은 계속할 것이라 했다. 


결국 걷기를 하는 이유가 성숙하기 위해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그리고 남을 위해 살기 위해서라고 했다. 선배의 스토리를 알게 된 순간, 내 가슴이 뜨거워졌고 한편으로는 부끄러워졌다. 75세의 연륜에도 성숙하려 노력하는 겸손에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고, 남을 위해 살기 위해서라는 뚜렷한 목표에 또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나머지 한 가지,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란 말에 숙연해졌다. 




이 선배에게 걷는 의미는 그저 인생의 성숙과 자선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 것의 동기는 분명 개인적인 가족사에서 비롯되었다. 포르투칼을 정기적으로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매순간 소홀함없이 '걷는 것에 정성'을 다하는 이유 또한 자신의 깊은 슬픔을 두 다리를 통해 길위에 뿌리기 위함이리라. 이렇게 뿌리깊게 심겨진 자신의 슬픔을 삶의 의미로 승화시키려 하기 위함이리라. 


선배에겐 늦둥이 외동아들이 있다. 선배가 45세에 얻은 자식이지만 이들 부부에게 외동아들의 의미는 남다르다. 1994년 몹시도 비바람이 치던 1월, 그는 포르투칼 리스본의 기차역에서 외동딸을 잃었다. 이에 대한 회환과 원망, 고통을 짊어지고 살던 어느 날 먼저 세상을 떠난 딸과 너무나 닮은 아들을 얻은 것이다. 누나가 살아 있었다면 태어나지 못할 새 생명에 힘을 얻어 선배 부부는 힘을 내었고 더없이 열심히, 성심껏 살았다. 그리고 지울 수 없는 슬픔은 마음속에 담아두고 걷기를 시작했다. 이번 산티아고 순례길을 특히 리스본에서 시작한 여정을 딸아이를 기억하기 위함이고 딸아이를 위한 길이라고 했다.


가슴이 메어졌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생생한 기억들은 지워지지 않고 그리움을 불러온다고 했다. 이제는 원망보다는 모두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슬픔도 마음 깊숙이 담아두어 조금씩 들어내려고 한다며, 그렇게 힘이 닿을 때까지 계속 걷고 신체가 살아 있을 때까지 더 열심히 사려 한다고 한다. 


가슴에 새겨진 슬픔을, 슬픔의 감정을 이겨내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감정을 이겨낸다는 표현이 적절하지 아닐 수 있는데 감정은 상대할수록 거세어지고, 이겨내려 하면 더 힘겨울 수 있기 때문이다. 선배는 말한다.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은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신체의 활동을 통해 조금씩 슬픔을 덜어내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 활동의 결과로 남을 위하는 일을 하면서 슬픔은 승화시키는 것이라고.


선배의 입에서 '삶의 의미'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그 앞의 나는 부끄럽고 숙연해졌다. 나의 모습은 여전히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음이다. 의미 있게 산다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공유하고, 깨달음을 통해 사람들은 뚜렷한 행동을 하고 있지만 정작 나는 그 의미에 대한 생각조차 부족하다. 그럼에 삶의 깊이와 채워짐이 충분한 선배의 모습은 내게 진중한 자극이 된다. 그리고 매일을 저렇게 열심히, 목표와 함께, 조금의 시간도 소홀함이 없이 그러나 느린 듯이 살아가는 선배의 모습에 존경심이든다. 


선배의 이야기는 나에게 깊은 성찰의 기회를 준다. 나는 지금 어떤 의미를 추구하며, 얼마나 성숙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선배를 바라보며 나는 다시금 묻는다. 삶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어떤 의미를 만들었으며, 만들어 가고 있는가?


가슴이 뛰게 하는 선배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주 1) 산티아고 순례길 포르투갈 길 : 이 길은 프랑스 길 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걷는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시작하여 산타렝 토마르, 코임브러, 포르투를 거쳐 산티아고로 가는 640km 여정이다. 

(주 2) 파울로 코엘료, 순례자, 2011, 문학 동네

(주 3) 세네카, 인생철학이야기, 2016, 동서문화사

(주 4) 김형석, 백 년을 살아보니, 2016, 덴스토리

(주 5) 푸른 나무재단 : 청소년 폭력예방재단으로 아이를 청소년 폭력에 잃은 김종기 이사장이 사재를 털어 설립하였다. 학교 폭력 피해자를 돕고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2019년 61회 막사이상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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