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노아 Jan 28. 2024

핼러윈에 들이닥친 트라우마 2
: 원칙주의자의 이면

by 헝가리

본 글은 핼러윈에 들어닥친 트라우마 1편에 이어지는 글이므로 지난 part 1을 먼저 읽으시길 권해드립니다!


'원칙주의자'라면 다소 포용력이 없더라도 조직에 적합한, 신뢰 있는 자를 의미할 것인데 왜 원칙주의로 대변되는 그가 이런 사태를 겪었단 말인가?

'목에 칼이 들어와도'라는 말은 '원칙대로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이 표현은 법과 규범을 엄격히 준수하는 진정한 원칙주의자를 가리키는 말이지, 절대로 융통성 없이 꺾이지 않는 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고대 중국의 전설적인 전략가 제갈공명이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가장 신뢰하는 부하 마속을 처형한 이야기_읍참마속(泣斬馬謖)_(주 1)은 이러한 원칙주의의 극단적인 예를 보여준다. 원칙주의자들은 '부러질지언정 휘거나 굽히지 않는다'는 태도를 지녔으며, 자신의 신념과 지조를 지키려 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원칙주의는 여전히 유효한가

 

과거와 달리 오늘날에는 '원칙대로'라는 말이 종종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국회에서 의견이 분분할 때 '원칙대로 합시다'라고 결론을 내리는 경우, 이는 종종 책임 회피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또한, 공무원들 사이에서 '원칙대로'라는 말은 때로 갑질을 의미하는 것처럼 변질되기도 한다. 이처럼 전통적인 '원칙대로'의 의미는 현대 사회에서 다소 왜곡되어 발전하고 있다.



 

어떤 개념을 제대로 인지한다는 것은 참으로 존재하는 것을 발견하기 위해 자신이 원래 자연스럽게 안락함을 누렸던 현상세계를 떠나는 것이다. 파르메니데스는 낮과 밤의 문을 넘어서 '인간들이 밟았던 길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신성한 길로 비상했을 때 (중략) 

즉, 현상이 아닌 중요한 것이 존재해야 한다는 생각(주 2)이 개인의 정신에 존재할 때만이 개념을 제대로 인지했다고 할 수 있다.


원칙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선 원리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원리(原理)란 근본이 되는 이치다. 이치는 진리이며 진리는 불변이다.

이에 따라 다양한 원칙이 가변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원칙(原則)은 원리를 적용하기 위한 규칙이나 법칙이기에 융통성을 전제한다. 따라서, '목에 칼이 들어와도'는 원리에 입각한 원칙일 때 통용될 수 있는 것이며 원리가 없는 원칙은 오히려 목에 칼을 맞을 짓을 스스로 불러올 수 있다.


박 법인장은 고집스러운 원칙주의자였다. 사업에서 거래선들의 비리 혹은 속임수라고 판단되는 사례가 있을 때는 가차 없었다. 단지 그 사유만으로 제품 공급을 중단, 거래를 단절시켰다. 사례의 크고 작음은 상관없었다.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 이상 거래를 해 온 거래선이라도 마찬가지였다. 거래선 오너의 작은 욕심이나 거래선 직원들의 일탈 때문이었더라도 거래 중단의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거래를 중단할 때는 적정한 정리 비용이 지불되어야 했는데 신뢰 파괴를 사유로 냉정히 거절했다. 

 

이로 인해 거래선들의 불만은 커져만 갔고, 여러 소송이 발생했다. 심지어 부도를 맞는 거래선도 있었다.  분명 핼러윈 저녁에 발생한 린치는 이런 불만을 가진 거래선들 중 하나 혹은 거래선들이 담합하여 사주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기적인 원칙으로 얻은 영광은 수치요 죄악이다.
 – 윌리엄 쿠퍼 - 


핼러윈에 겪은 박법인장의 린치사건으로 인해 나는

원칙주의 그리고 공명심이란 무엇인지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원칙주의는 제도하의 법규와 규칙을 철저히 따르는 생활 방식을 의미한다. 이는 전통, 규범, 질서를 중시하며,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실수를 최소화하고 타인을 어려운 상황에 빠뜨리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위해서다. 간단히 말해, 원칙주의자는 자신뿐만 아니라 조직 전체를 위험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기본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법인장으로 34년 근무하면서 만난 많은 이들 가운데는 한 치의 틈을 주지 않고 매뉴얼과 규율대로 업무를 처리하는 직원들이 있다. S기업 김 차장은 알아주는 원칙주의자다. 그는 능력도 있고 절도가 있으며 일 처리 또한 깔끔하다. 김 차장은 모든 일에 ‘칼’이고 ‘빡빡’하다. 출퇴근 근태는 당연하고, 점심시간도 예외 없이 딱 1시간 10분이다. 팀원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경고를 준다. 택시비는 거리를 계산해 체크하고, 주말, 퇴근 시간 이후의 경비 역시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단돈 1원도 허용치 않는다. 예외가 없다. 

 

김 차장과 같은 사람들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등의 장점이 있지만 그에게서 인간적인 매력을 느낄 동료는 그리 많지 않다. 김 차장의 원칙대로 에 숨이 막힌다는 하소연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김 차장은 점점 조직에서 소외되고 조직에는 서서히 균열이 일어난다.

 

박 법인장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원칙주의는 때로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조직 내에서의 소외감과 거래선과의 갈등이 그의 개인적인 삶에까지 영향을 끼친 것이다. 이는 인간을 이롭게 하려는 원칙주의가 유연성과 인간미를 잃음으로써 인간에게 해가 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조직과 거래선에서 소외당하고 본인의 아집을 위한 원칙주의를 회사를 위한 공명심(公明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과연 이들은 원칙을 실천하면서 무엇을 간과했던 것일까?



어떤 가치라도 그 가치보다 더 큰 가치가 있다. 쉬운 예로 '엄격함과 너그러움의 경계가 분명치 않을 때  너그러움이 먼저다'라는 공자의 말씀이 있다. 엄격한 원칙 위에는 인간에 대한 너그러움이 더 큰 가치로 존재해야 하고 어떤 현상에서 더 우선적으로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앞서 언급했듯이 원칙을 뛰어넘는 불변의 근원, 원리라는 것이다.

 

모든 집단, 즉 조직, 사회, 국가는 시대에 따라 다른 원칙을 만들어 관습으로 이어지지만 어떤 시대에도 불변의 원리를 적용하여 원칙을 만든다. 가령, 선, 윤리, 인간중심이라는 가치는 시대와 국가와 인종을 너머 선 불변의 원리다. 이를 기준으로 세워진 원칙만이 가치 있다.

 



사실 나에게도 박 법인장의 경우와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 지역의 작은 동네 유지가 운영하던 중고제품, 병행수입제품 가게에서 승인 절차도 없이 자사 브랜드, 로고를 사용하여 브랜드 이미지 훼손, 고객들의 불만을 야기시켜 당사를 상대로 소비자들의 소송이 발생했었다. 원칙대로 하자면 이 가게를 역고소하여 손해배상 청구와 당사 브랜드 사용중지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나는 이 가게를 끌어안았다. 정식 거래선으로 등록하고 우리의 가이드대로 판매, 홍보 활동을 하도록 교육을 시켰다. 가게도 브랜드 이미지에 맞게 더 깔끔하게 재단장을 하도록 비용의 50% 지원을 해주었다. 당연히 이 가게의 판매는 늘어났고 이 동네에서 당사의 이미지는 더 좋아졌다. 이러한 내용은 입소문을 타고 옆 동네들로 퍼졌다. 당사 제품을 팔겠다는 Mama & Papa’s store(작지만 지역소비자를 잘 아는 전파상 같은 가게, 유럽에서는 Buying Group이라 함)들이 몰려들었다. 동네 마마&파파 가게들과 당사의 윈윈 사례가 된 것이다.

 

우리는 보다 더 높은 가치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모든 기업은, 기업의 조직은, 조직의 구성원은 모두 사람이며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제도나 형식이 사람을 위할 때에만 가치가 있는 것이며 여기서 '사람을 위한다'는 것은 '개인'뿐만 아니라 개인을 둘러싼 모든 환경까지 사람을 중심으로 사고할 수 있는 정신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한 덕목이 기업가에겐 필요하다. 그중, 중요한 한 가지 덕목은 거대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협력관계의 모든 개인을 함께 성장하는 경영인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거래하는 파트너들이 잘 되게 하고 이들의 건강한 판매 활동을 지원하여 이들이 신바람이 나서 사업을 하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이슈가 생겼을 때 채찍을 먼저 주기보다는 잘못을 깨치도록 교육을 시키고 제대로, 건강하게 경영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먼저이다. 한마디로, 이기적 이타주의를 실행하는 것이다.


주 1> 읍참마속(泣斬馬謖) : '울면서 마속의 목을 벤다'는 뜻으로 공정한 업무 처리와 법 적용

주 2> 정신의 삶, 한나아렌트, 2019, 푸른 숲

이전 07화 사탕 대신 칼 ! :핼러윈에 들이닥친 트라우마 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