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터키
2023년 8월, 괴첵(Göcek)(주 1)을 방문했다.
괴첵은 크루즈와 세일링 애호가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휴양지이지만 아직 현지인들에게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지중해, 에게해, 마르마라 해, 흑해와 연결된 세면을 자랑하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안탈리아와 보드룸과 같은 유명 휴양지들 사이에서도 그만의 숨겨진 매력을 지니고 있다. '숨겨진 보석'이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이곳은 제프 베이조스, 빌 게이츠, 로만 아브라모비치, 그리고 Zorlu Family와 같은 세계적인 재벌들이 휴식을 취하기 위해 찾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여러 나라에서 사업을 진행하면서 나에게는 뜻밖의 특별한 인연들이 있다. 인연이란 단어를 모르는 이는 없겠지만 내게 '인연'이란 단어는 '내 인생에 개입된 선물'같은 존재에게만 붙이는 단어이기도 하다. 호연이든 악연이든 내 인생에서 뭐라도 남기는 사람들....
내가 터키(주 2)에 5년간 머물면서 만난 Dr. Ugur Erdener (주 3)도 내게 특별히 선물 같은 인연의 주인공이다. 2016년 3월, 회사의 행사에서 첫 만남을 했는데 본인의 사회적 위치와는 다르게 참으로 겸손하였다. 배려, 경청, 진솔로 사람을 대하고, 맺은 인연들에 정성을 다하며 결이 비슷한 인연들을 연결함에 주저하지 않는 여유가 많은 분이었다.
이번 괴체 여행 역시 그의 소개 덕분에 오스트리아인 Mr. Karl Stoss(주 4) 부부와의 귀중한 만남으로 이어졌다. 단지 5일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마치 오래된 가족처럼 빠르게 친밀해졌고, 이별의 순간에는 서로의 손을 놓기 아쉬워했다. 이 부부는 프랑스 파리, Cannes 해변, Cote D’Azur, Vienna, Thailand 등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조용하고 평화로운 삶을 즐겼다.
소개받은 터키 사람들도 넘치는 에너지와 긍정의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필립모리스에서 전략 담당을 맡고 있는 Kuterdam, 그리고 젊은 사업가인 Gokem과 Emre, 그들의 행동과 언어에서 즐거움이 넘쳐흘렀다. 이들에게는 타고난 듯한 포용력과 배려, 그리고 여유가 몸에 배어 있었다. 그들과의 대화에서는 사회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면서도 함께 살아가려는 그들만의 이타적인 삶의 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
이런 부류의 인연들이 내게 하나둘 연결되면서 이들을 닮고 싶은 욕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들에게는 공통적으로 충분한 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은 단순히 돈이 많음을 떠나 진정한 '부'를 실천하는 점에서 내게 큰 영향을 미쳤다. '부'라는 삶의 잉여가 더 넓은 포용과 배려, 그리고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려는 의지로 전이되고 이러한 그들의 사회적 역할과 개인의 행복이 상호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주었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졌다.
욕구란 아는 것과 비례하는 것일까.
보지 않았으면 품지 않았을 미래가 내게서 샘솟았다.
Dr. Ugur는 80세에 가까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185cm의 키와 탁월한 체력을 자랑하며, IOC 멤버의 바쁜 일정 속에서도 일주에 여러 나라를 오가는 출장을 소화해 냈다. 60대 중반의 Karl은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체력과 함께, 그의 온화한 미소에서 평온함이 느껴졌다. 40대 초반인 Kuterdam, Gokem, Emre는 탄탄한 체형을 유지하며, 그들의 대화 속에서 끊임없이 흘러넘치는 즐거움과 유쾌함이 느껴졌다. 이들의 부는 단지 돈이 아닌 선함과 건강함이라는 두 가지 덕목을 겸비한 아우라를 내뿜고 있었다.
이들로부터 느껴지는 긍정적인 에너지와 공명의 힘은 주변의 분위기를 완전히 변화시켜, 누구라도 이들의 긍정적인 기운에 동화되게 만들었다. 마치 이들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듯, 나 역시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에너지를 교환하며, 한국에서 경험했던 졸부들의 기운과는 전혀 다른, 마치 신세계에 가까운 높은 차원의 에너지를 경험하게 되었다.
고양된 정신이란 이런 것이겠지.
실천으로 증명해 낸다는 것도 이런 것이겠지.
삶의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도 이런 것이겠지.
그래서 나는 궁금해졌다.
이들이 지닌 부와 긍정의 에너지가 어떠한 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이러한 요소들이 상호작용하여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실제로, Kuterdam, Gokem, Emre는 자신들의 재산을 활용하여 스포츠 유망주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재단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었다. 정부의 지원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이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미래의 스포츠 스타들을 위한 기반을 마련해주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재능 있는 아이들을 찾아내고 키우는 것을 넘어, 그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있었다.
더 나아가, 이들이 설립한 투자 회사는 젊은 인재들에게 스타트업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실현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었다. 이들은 단순히 자금만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멘토링과 노하우 공유를 통해 젊은 창업가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고 있었다. 필요한 곳에는 재능 기부도 서슴지 않으며, 자신들의 배움과 성장에도 끊임없이 투자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노력은 개인의 성장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이들의 부와 에너지가 어떻게 선한 힘으로 작용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Kuterdam, Gokem, Emre의 행동은 자신의 노력으로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고 그의 연결선상에서 창출된 잉여를 사회로 환원하는, 단순히 우리가 일컫는 '성공'이라는 개념을 초월한 개인이 전체를 위한 이타의 실현으로 자신의 인생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기적 이타주의란, 자신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하며 타인의 행복을 위한 행동을 취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이익 또한 중요하게 여기는 더욱 적극적인 이타주의의 한 형태이다. 이는 단순히 베푸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게 베풀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율성을 포함한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개인이 육체적, 정신적, 금전적으로 건강하고 풍요롭게 살아감으로써, 장기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는 단순히 자신을 소진시키면서 남에게 주는 행위가 아닌,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이로운 더 발전적인 태도로 볼 수 있다.
자선제도는 인간애를 모독하는 것이다.
향연이 다 끝난 후에도 상다리는 상 위에 남아 있는 음식들로 휘청거리건만
그 상에서 떨어진 빵 부스러기나 나누어주는 것을 소위 자선이라니!
살면서 이기적 이타주의를 직접 실천하는 사람들을 지인으로 알게 된 것에 감사하다. 이들은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베풀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자연스레 행동으로 옮기는 이들이었다. 그들에게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은 마치 숨 쉬듯 공기처럼 자연스러웠으며, 오히려 자신에게 붙여진 이기적 이타주의자라는 단어조차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한 듯 그저 일상이 그러한 삶이었다.
반드시 이루어야 할 일이 있을 때 자연은 그 일을 실제로 행할 천재를 빚어냅니다. 인간은 자신을 꼭 필요한 매개자로 인식해야 합니다. 매개자가 된 인간은 자신을 빚어낸 요소들을 잘 알고 있으며, 자신의 일에 전념합니다. 그래서 읽거나 생각하거나 바라볼 수 없더라도 이제껏 끊어졌던 가닥들을 연결해서 하나의 완전한 밧줄을 만들어 냅니다(주 6).
정말 귀한 인연은 밧줄처럼 그렇게 이어진다. 악연은 불행을, 호연은 행운을. 아니다. 악연 역시 행운을 위한 전조이며 호연 역시 앞으로 일어날 불행에 대비한 인연이니 어떤 이를 만나든 나와의 인연은 소중한 것이다. 인연과 행운의 기운은 이렇게 나의 인생에 관여하여 나를 변화시킨다. 인연의 법칙은 간단하고 분명하다. 한 생각이 움직여 세상이 일어나고 나아가 우주가 벌어진다(주 7). 이렇게 인연은 부지불식간에 찾아와서 문을 두드린다. 공평하게 찾아오는 인연을 악연으로 만들지 호연으로 가져 갈지는 나의 인지의 선택이다. 나의 경험이 축적된 인지에 맡겨둘 일이다.
귀한 인연으로 맺어진 사람들 사이에는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다. 그들은 겸손함, 검소함, 건강, 가족, 영혼, 우정과 같은 근본적인 가치들을 중요하게 여기며, 마치 저글링을 하듯이 이를 균형 있게 조화롭게 관리한다. 이들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더 나은 가치를 향해 오늘과 지금 이 순간의 균형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들은 베푸는 행위를 통해 베풂을 받고, 사랑을 나눔으로써 사랑을 경험하며, 천천히 걸으며 자신의 뿌리와 향할 방향을 성찰한다.
그들은 매 순간을 가치 있게 여기며 살아간다. 하루하루가 모여 전체 삶을 구성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어떤 순간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가 의미 있는 곳에서 사용되기를 바라며, 그러한 삶의 '의미'를 찾는 하루하루가 '즐거운 선물'인 것이다. 이러한 균형 잡힌 삶의 태도와 지혜는 그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이기적 이타주의를 모범적으로 실천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주변을 변화시킨다. 그렇게 전이된 개개인은 사회를 이루고, 나아가 우주의 귀한 구성물질로서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이룬 후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나는 이쯤에서 다시 멈춰 깊이 생각해 본다.
나에게 좋은 인연이 이어지게 하려면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름다운 순간을 원한다면 내가 아름다움을 가질 수 있는 자가 먼저 되어야 한다. 소중한 것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소중한 것이 내게 머물 수 있도록 나를 비워내야 한다.
괴첵으로의 여행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다. 정신적으로 휴식을 취하고 함께 한 이들의 삶을 배우는 정신의 여행이었다. 이는 내게 진정한 나 자신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일상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자연과 하나 된 시간. 자연이 분명 나를 괴첵으로 부른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를 갈 때는 몰랐으나 여행이 끝나는 시점,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나의 지난 35년의 '일'과 사회적 지위가 준 거대한 선물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인생의 진리인 '내가 쓰일만한 가치를 지닌 인간'이 되어야 함을 알려준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의 나는 나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지?
나는 소중한 인연들과 그들과 함께 했던 기억 속의 경험들, 그렇게 배운 삶의 지식들을 어느 지점에서 누구와 어떻게 세상의 보탬이 되도록 내놔야 하는지?
(주 1) Göcek : 터키 도시, 에게해 해변에 위치하고 섬과 산으로 보호되어 일 년 내내 조용한 곳
(주 2) 터키(Turkey)는 최근에 국명을 투르키에 (Turkiye)로 변경하였으나 여기서는 터키라고 표현
(주 3) Dr. Ugur Erdener : 터키 NOC 위원장 겸 IOC 위원(현), 세계 양궁 협회장(현), IOC World Anti-Doping Agency(WADA) 대표
(주 4) M.Stoss : 오스트리아 IOC 위원. IOC 스포츠 프로그램 운영 이사회장
(주 5) 이기적 이타주의자, 앨런패닝턴, 2011, 사람의 무늬
(주 6) 자기 신뢰철학, 2020, 에머슨, 동서 문화사
(주 7) 1% 인연의 힘, 2015, 이재운, 책이 있는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