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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노아 Mar 14. 2024

당신은 키오스크에 익숙하십니까?

좌충우돌 한국 생활, 가는 시간 늦추기

지난 20여 년 이상 해외에서 사업을 하고 한국에 도착한 지 어느새 2개월 반이 지났다. 세월은 유수 같다더니 너무 빠르게 앞서간다. 한 달, 일주일의 일정은 내가 정한 과제들이 쉴 새 없이 진행되고 하루는 루틴을 완성하기 위해 집중하다 보면 금방 지나간다. 


안 해봤던 일들을 시작했고 새로운 영역의 지식을 배우면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해외에서 보낸 시간을 포함하여 지난 35년 동안 겪었던 시간의 속도보다 더 빠른 듯하다. 삶에 자극을 주기 위해 새로운 환경을 만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빠르다’라고 느끼는 이 상황을, 다시 20대, 30대의 시간 속도처럼 느리다고 느끼게 바꾸려 한다.  내 사고는 내가 바꿀 수 있다. '시간이 빠르다, 느리다'에 시간이 코웃음을 칠 것이다. 시간은 무조건 자기 속도로 아주 일정하게 가니까. 문제는 나의 사고에 '시간이 빠르다'라고 정리되어 있으니 그것을 바꾸는 것은 나의 몫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새로운 것, 새로움은 도파민을 만들어 뇌를 활성화시키고 기억에 오래 저장한다. 오래 저장될수록 기억의 밀도를 높인다고 한다. 휘발성 기억들이 많으면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고 느끼고 반면 오래 저장되는 기억들의 밀도가 높으면 시간이 더디게 흘러간다고 느낀다고 한다.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 가고, 새로운 자극을 만들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은 기억에 오래 남아 자각하는 시간의 속도를 늦출 것이다. 지금 도전하고 있는 새로운 영역들이 나의 자각에 변화를 줄 것이다.




한국에서의 생활환경은 생각한 범위를 훌쩍 넘어선다. 솔직히 정신을 못 차릴 정도이다. 너무나도 편리한 환경인데 내겐 어렵고 시행착오가 자주 발생한다. 이 환경 속에서 생활하는 한국민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냐고 하시겠지만 느릿느릿 움직이는 곳에서 오래 생활한 나로서는 긍정적인 충격이 크다. 내가 기억하고, 알고, 예상한 한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매년 2번씩은 업무 목적으로 한국을 방문하였기에 한국에서의 생활이 어떨지 다 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은 착각이었다. 생활환경에 대해 구체적인 이해, 경험 없이 겉핥기만 하고 갔으니 아는 게 없었다. 되돌아보니, 회사에서 준비한 편의로 체류 기간 동안 아무런 불편함이 없이 지낼 수 있었다. 숙소도, 차량도, 식당도, 기타 개인 볼일도.. 나 스스로 찾아서 할 필요가 없었기에 한국 생활의 구석구석에 대해 굳이 알려하지 않았다. ‘어려울 게 뭐 있겠어? ‘부딪혀서 하면 다 되겠지’, ‘한국 사람이 한국에서 생활하는데’.


2달 반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일상에서 좌충우돌이다. 한 번은 영화 ‘노량’을 보러 집 근처의 CGV에 갔다. 인터넷에서 예약을 해야 함은 알았기에 원하는 시간에 맞추어 날짜를 정하고 예약을 했다. 글로벌 스탠더드 시스템이기에 예약은 어렵지 않았고 나름 노련하게 예약을 했음에 만족했다. ‘별거 없네’, ‘생활에 큰 불편은 없겠어’. 간단한 예약 과정이지만 스스로 자만하고 있었다. 아뿔싸, 그런데 예약이 다가 아니었다.


30여분 전에 영화관에 도착하였다. 예약한 티켓을 어디서 받아야 할지 몰라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눈치 구력을 발휘하여 주변을 살폈고 과거처럼 티켓 창구는 없었지만, 사람들이 키오스크 앞에 줄을 서서 티켓을 구하는 것을 봤다. 키오스크는 여러 대가 있었고 대기 줄이 상당히 길었다. 첫 번째 키오스크에서 20여분 기다린 후, 내 차례가 되어 티켓을 발행하려 했다. 


이게 웬일인가? 티켓 발행이 쉽지 않다. 용어도 익숙지 않고 어떤 버튼을 눌러야 할지 몰라 여러 차례 시도해야 했었다. 영화 상영시간이 가까워지고 뒤엔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내가 시간을 잡고 있었다. 내 머리 뒤로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보기에 안타까웠는지, 바로 뒤에 서 있던 여학생이 차분한 설명을 해주었고 덕분에 무사히 티켓을 발행하여 입장할 수 있었다. 간단하고 직관적으로 할 수 있는 것도 못하여 도움을 받았으니, 나 조차도 놀랐고 헛웃음만 나왔다.   



이 사례는 다소 가벼운 해프닝이다. 다음 겪은 일은 간첩으로 오해받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정도의 사건이었다. 서울 근교에 갈 일이 생겨 버스 타고 가는 것을 시도했다. 외곽으로 가는 버스 정류소까지 택시로 잘(?) 찾아갔다. 버스 정류소에는 다음 버스가 몇 분 뒤에 온다는 정보를 알려주는 스크린이 있었다. 움찔 놀랐다. 이게 무슨 시스템이지? 외국 어느 나라에서도 버스 정류소에 실시간 정보를 전하는 스크린이 설치된 것을 본 적이 없고, 실시간 정보에 다음 버스 도착 시간을 분 단위로 알려주는 사례를 본 적이 없다. IT 강국이라는 수식어가 옳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과하다는 생각도 했다.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 신용카드로 버스비를 계산하려, 디지털 기기에 카드를 탭 하였다. ‘삐이~’라는 소리가 났고 결제가 거절되었다. 내 신용카드는 교통비를 지불하는 기능이 없는 것이었다. 난감했지만 과거 방식으로 현금으로 내겠다고 했다. 버스비가 얼마인지도 몰랐지만 수중에 있던 10,000원권을 기사에게 주려고 했다. 그러자 기사는 차에 거스름돈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고 거절하였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약속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 버스를 타고 가야 했기에 내릴 수가 없었다. 나로 인해 버스가 출발을 못하는 상황이었고 운행 시간을 지켜야 했기에 운전기사가 대신 결제를 해 주었다. 나중에 송금하겠다는 얘기도 했으나 기사는 끝내 계좌를 알려주지 않았다. 교통비 결제를 할 수 있는 카드가 따로 있다는 것과 버스 요금이 2,800원이라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그날 정직하고 좋은 운전기사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그렇지만 한참 동안 당황했고 한국 생활 준비가 많이 부족함을 깨달았다. 


교통카드가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지하철을 타야 할 일이 생겼다. 목적지는 서울 시청역. 집 근처 역에서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한 노선을 공부한 후, 표를 사러 갔다. 옛날 같이 매표원이 있는 창구는 아예 없었고 티켓은 키오스크에서 구매해야 했다. ‘또, 키오스크에서..’ 얼마 전에 있었던 영화관 티켓 사건이 트라우마로 떠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티켓 한 장을 발매하지 못해 한참을 헤맸다. 허둥지둥하는 게 불쌍하게 보였는지 이번에도 뒤에 서 있던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거참..


커피를 사러 집 근처의 길거리에 있는 작고 좁은 Takeout 전문 커피숍 창구에 들렀다. 일하는 직원에게 직접 아메리카노 중간 사이즈를 주문했다. 그런데 자기에게 주문하지 말라고 했다. 대신, 옆에 세워진 키오스크에 직접 주문하고 결제한 뒤 자기에게서 커피를 받아가라고 했다. 더듬더듬, 한참을 걸려 주문에 성공할 수 있었고 커피를 받아 들었지만 멋 찍었다. 


한국 생활이 아직 쉽지 않다. 상당한 부분이 디지털로 대체되어 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진화가 무척 빠르고 웬만한 서비스 프로세스의 시작 포인터는 키오스크이다. 식당에는 테이블마다 포터블 키오스크가 설치되어 있어서 주문은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고 키오스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도전 자체가 되었지만 재미가 있다. 때로는 당황스러운 상황에 봉착하지만 그 순간은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짜릿하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방식들이 내게는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 낸다. 이 경험들은 새로운 자극을 만들고 익숙했던 기억들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풋을 만든다. 


도전하고, 경험하고, 자극해서 새로운 상황을 만들고, 인식하여 기억의 밀도를 높인다. 그리하여 시간의 흐름을 늦추고 20대, 30대의 20Km, 30Km 속도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배움, 새로운 활동이 우리들에게 더 필요한 이유이다. 시속 50Km~ 60Km 속도처럼 시간이 빠르다고 느껴질 때는, 50대, 60대에서 아무것도 안 해서, 새로움이 없어서 그렇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세월이 빠르다고 얘기를 꺼내는 것은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라고 외치는 것과 같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결국, 시간이 빠르다 느리다. 라기보다 내가 시간을 자유롭게 쓰느냐 못쓰느냐에서 나는 갈팡질팡 중인 것 같다. 시간은 무조건 정확하게 일정속도로 가고 있다. 나는 내게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을 지금 내 인생에 들이려는 중이다. 이러한 좌충우돌이 내 시간이 버려지는 느낌으로 오기에 아마도 시간이 빠르게 나만 놔두고 가버린 느낌에 사로잡힌 것은 아닐까. 내가 시간을 내 것으로 온전히 활용하기 위해선 적응, 적응, 적응, 모르는 것들을 서둘러 배우고 싶고. 익히고 싶고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그렇게 나의 중년도, 한국생활도 제자리에서 제시간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 믿는다.


나에게 한국에서의 2달간의 좌충우돌, 우왕좌왕은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르겠지만 내가 가야 할 길을 명확하게 나는 알기에 이 어설픈 시간들에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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