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노아 Mar 21. 2024

두목회, 그것이 알고 싶다

도전자들의 얘기 X

“드디어 내일 두목들 모이는 날이다! 다들 알고 있지?”


보스의 굵고 낮은, 지엄한 명령에 한 명의 예외도 없이 곧바로 대답한다. 


“yes, sir!”


산적도 해적도 아닌데 두목들은 모인다. 서울시내 숨어있는 문화공간을 탐방하기 위해 인적 드문 곳에 비장한 무기를 지니고, 다들 각오 단단히 한 채 우리는 모인다. 보스의 '알고 있지?' 한마디에 일사천리로 자기 스케줄을 모두 정리하고 지엄한 보스의 명에 따르는 것이다.  

이번 모임 장소는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구본창(주 1) 사진작가의 전시회다. 구본창 작가의 첫 작품인 <자화상>부터 최근 작품까지 500여 점의 작품과 자료를 전시하여 작가의 넓은 작품세계를 볼 수 있었다. ‘호기심의 방’에서 출발하여 ‘모험의 여정’, ‘하나의 세계’, ’ 영혼의 사원’을 지나 ‘열린 방’으로 이어지는 항해의 선장은  만능 예술인 다작 작가 겸 도슨트 철호다. 


두목회는 매달 둘째 주 목요일에 만나는 동고회(주 2) 모임이다. 이번엔 철호가 비장의 칼날을 갈고 구본창작가에 대해 화려한 브리핑을 하기 시작한다. 이에 따라 너도나도 질세라 자신이 갈고닦은 폭넓은 문학적, 예술적 사견을 토론하며 긴 항해의 여정에 혼을 심어주었다. '최소한 나의 적이 되어달라!' 우정을 감히 청하지 않는, 진정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은 그렇게 말한다.(주 3) 니체처럼 우리의 토론은 적과 같이 서로의 사고에 하나라도 더 얹으려 하나라도 더 얻으려 집요하다. 


반나절 사진으로 영혼을 정화시킨 두목들은 처음 모임장소에 모였을 때의 표정이 아니다. 이내 눈빛이 살아나고 자신의 지적탐험에 다소 지친 듯 하지만 지적탐구에서 힘차게 노 저은 기색이 역력하여 이 열정을 그대로 살려 2차를 외친다! 


두목들의 2차는 늘 그렇듯 옛 추억을 불러내고 그때의 모습으로 빙의한 상태로 시작된다. 긴 항해에서 마치 승전보를 울린 후 뒤풀이를 거하게 하듯 우리 역시, 소주 한잔을 앞에 두고 분명히, 여러 번 했던 이야기인데도 마치 처음 듣는 듯 서로 추임새를 넣고 박장대소한다. 이런 대본 없는 드라마도 없을 것이다. 각자의 역할을 저리도 잘 해내니.. 마무리될 즈음에는 목이 쉬기도 한다.   


창조하는 자가 찾고 있는 것은 송장이 아니라 길동무다.
  무리나 추종자도 아니다. 
창조하는 자는 더불어 창조할 자, 새로운 가치를 새로운 판에 써넣을 길동무를 찾는다.
창조하는 자는 길동무를 그리고 더불어 추수할 자를 찾는다.
  그에게 있어서는 모든 것이 무르익어 수확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백개의 낫이 부족하다. 
  그래서 이삭을 손으로 뽑아내며 화내고 있는 것이다.
창조하는 자는 길동무를, 자신의 낫을 갈 줄 아는 자를 찾는다. 
  사람들은 그들을 파괴자, 선과 악을 경멸하는 자들이라고 부르리라. 
  그러나 그들이야말로 추수하는 자요 축제를 벌이는 자인 것을.(주 4)  


두목회의 문화 탐방은 동고회의 새로운 지식, 지성의 산실이 되고 있다. 두목회의 눈을 통해 서울시내 곳곳에 있는 문화, 문화재, 문화인의 세계를 본다. 우리 고유의 것, 작품, 장소가 곳곳에 있음을 새롭게 알게 되고 우리가 잘못 보관, 관리하고 있는 실태도 보게 된다. 내게 두목회는 동지들과 예술적, 문학적, 문화적 혼을 교류하고 앞으로 120세를 함께 살아가야 할 동료애의 끈을 더욱 단단히 조여준다. 그리고 다소 지식에서 뒤처질 새라 위축되어 있는 장년을 사는 우리의 지적 눈높이를 올려준다. 그래서, 내게는 제2의 인생을 보다 깊이 있게 살게 하는 돌파구가 되어주는 소중한 모임이다. 


두목들이 내겐 소중한 존재들이다.

이들을 만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지금 함께 있으면서도 다음 날을 기다리며, 

미래를 얘기하면서도 과거로 빠져들고, 

과거 속에서 현재를 반추하며 

기쁜 날을 같이 축하하고, 

어려운 일은 같이 나누고, 

농을 주고받아도 해맑은 미소로 답을 하는, 

마음이 넉넉한 우리들에게, 

배려하는 우리들에게, 

허물없는 우리들에게, 

도전하는 우리들에게,  

마르지 않는 샘물이고

에너지분출의 동력이고 

세상 어디에도 없는 유일한, 즐거운, 값진 가치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나에 대해 다정한 생각을 품게 되었다고 해서 
불쑥 과일 바구니를 보내오는 친구가 아니라,
우정의 의무와 요구 사이에서 상상력과 감수성의 충동적인 움직임으로 
올바른 저울을 내 쪽으로 기울일 수 없다고 해서 
내게 해로운 쪽으로 왜곡하지 않는 그런 친구를 더 원했다. (주 5) 

주 1) 구본창(具本昌, 1953년 3월 6일 ~)은 대한민국의 사진가이자 교수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기업에 취직했던 그는 반년 만에 회사를 그만둔 후 독일 유학 길에 올랐고, 그 후 사진작가가 되었다. 한국 사진 예술의 지적 수준과 국제적 위상을 제고하는 데 크게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제47회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미술 부문 대통령 표창을 받는 등 대한민국 현대 사진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받는다.

주 2) 동고회, 고등학교 동창 모임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브런치 글 링크를 참조

      https://brunch.co.kr/@417061919d91410/15

주 3,4) 니체,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2015, 책세상

주 5)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프루스트, 2014, 민음사



이전 13화 당신은 키오스크에 익숙하십니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