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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노아 Mar 19. 2024

반려견 코디의 분리불안은 내게
선물이었다!

요즘 운동과 산책을 겸해 길거리를 걸어 다닌다. 40여분을 경보로 걷다 보면 어느새 몸에는 뜨거운 기운이 모락모락 솟는다. 꽃샘추위의 영향일까, 아직 바깥공기는 찬데 두터운 후드 티 안의 온도는 20 여도를 넘는 듯하다. 그래도 바깥공기가 차서 후드 티를 더 동여매게 된다. 20년 만에 귀국한 후, 한국 생활에 적응 중인데 그중의 하나가 한국날씨이다. 귀국 직전에 3년을 살았던 곳이 모스크바인데 그곳에 비하면 따뜻하다고 해야겠지만 한국 날씨만의 은근한 매서움을 가벼이 볼 것은 아닌 것 같다. 


매서운 날씨에도 길거리에서 유모차를 종종 보게 된다. 덮개가 덮여있고 찬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방풍 커버도 잘 여며져 있다. 아기를 데리고 산책하려니 어쩔 수 없으리라 생각했고 한편으로는 굳이 추위에 아기를 데리고 나와야 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하나 곧, 이런 나의 생각은 부질없는 것임을 알게 된다. 그 유모차의 주인이 아기가 아니고 반려견임을 눈으로 보게 된다. (개모차라는 단어도 알게됨)


한국에 귀국한 후, 반려견 유모차를 처음 봤을 때는 신선한 놀람이 있었으나 지금은 이러한 장면에 익숙해졌다. 사실, 지난 20년 동안 유럽, 러시아에서 생활했지만 반려견 유모차는 본 적이 없으니 놀랄 수밖에.. 한국민의 Pet 사랑도 대단하지만 Pet 유모차라는 한국의 비즈니스 모델 진화 속도도 글로벌 톱클래스라 해도 무방 할 듯하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반려견과 살고 있는 딸의 반려견 코디 사랑도 이에 못지않다. 코디의 딸바라기 사랑 또한 만만치 않다. 사랑이 과한 듯, 잠시라도 떨어져 있질 못하니 코디에게 분리불안 장애까지 생겼으니 말이다. 코디의 분리불안 증상에 마음 아파하는 딸의 모습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28년 전 첫 아이를 낳고 아이를 돌보던 내 마음처럼 자신은 내팽개친 채 온종일 코디생각뿐인 딸아이가 안쓰럽다.


딸이 반려견을 아끼고 사랑을 주는 모습은 흐뭇하지만, 결핍보다 과잉이 무섭다는데... 딸의 지나칠 정도의 반려견에 대한 사랑이 가늠이 잘 되지 않는다. 딸의 외로움, 허전함, 쓸쓸함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아 내 마음은 더 저린다. 감정적으로 허할 때 딸은 코디에게 기댔을 것인데, 그 마음을 아빠인 내가 알아주지 못하고 챙겨주지 못한 것이 이내 내 가슴을 파고든다. 반려견에 의지하는 딸아이의 마음, 감정, 생각의 작은 부분이라도 미리 챙겨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에 내 가슴이 자꾸 아파진다. 



'과거에 있었던 것', 이름하여 그것은 의지가 굴릴 수 없는 돌덩이다(주). 내 과거 딸에게 본의 아니게 소홀했던 모습 역시 지금 나에게는 의지로도 굴릴 수 없는 돌덩이가 되었고 딸아이에게도 지난 시간들이 자신의 의지로도 채워지지 않는 빈 공간을 만든 듯하여 걷는 내내 내 마음은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진다.


딸아이와 공감을 못하는 아빠에게 이 메시지를 전해주려 코디는 자기 몸을 희생하면서 그렇게 아팠나 보다.. 기특한 녀석..




딸과 코디를 위해서, 서로의 건강한 관계 지속을 위해, 서로를 지속 돌봐주기 위해, 코디의 증상을 치료하기로 했다. 코디가 사회성을 회복하고 독립적으로 성장하면서 든든한 딸의 후원군이 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사회화 과정 훈련을 시작하기로 했다. 첫 단계가 코디를 유치원에 보내는 것이었다.


오늘로 벌써 3주 차에 접어든 코디의 유치원 적응기를 지켜보고 있다. 마치 손주를 유치원에 보낸 후, 성장과정을 지켜보는 것과 흡사한 듯하다. 첫날, 코디는 생소한 환경에 적응을 못해 보모의 꽁무니만 쫓아다녔다. 다른 강아지들의 열렬한 환대를 받았지만 도망 다니기 바빴고 겁만 잔뜩 먹은 채 하루가 끝났다. 데리러 온 딸을 보자마자 한걸음에 달려와 품에 안겨 몸을 축 늘어뜨렸다. 집에서도 곧바로 잠에 빠졌다. 온종일 신경을 곤두 세웠을 것이고 극도의 에너지를 사용했을 것이니 강아지도 이렇게 긴장을 푸는 게 당연하겠지..


두 번째 날은 강아지 무리 사이를 제법 걸어 다녔다. 기웃기웃 대화를 시도하는 듯했다. 대화는 길게 가지 못한 듯했고 유치원 선배들이 그리 반가운 제스처를 취하지 않는 듯했다. 그러다 구석에 혼자 있는 녀석을 발견하고 슬그머니 옆에 앉았다. 그것도 잠시, 다시 어슬렁어슬렁 삼삼오오 있는 강아지 무리들에게 다가가 어울리기 위해 노력했다. 정말 코디는 장족의 발전을 보았다. 불과 두 번째 등교에서 이렇게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코디가 대견스러웠다. 그 순간만큼은 딸을 잊은 듯 보였다. 이 날 저녁도 코디는 딸의 침대 위에서 축 늘어졌고 곧바로 골아떨어졌다.


두 번째 주, 지난 주간의 유치원 생활에서 코디는 더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쭈뼛쭈뼛하는 모습이 줄었고 유치원에 들어서자마자 강아지들 무리 속으로 직진을 하였다. 자연스럽게, 온전히 어울리지 못하였지만 멤버로 조인, 승인받기 위한 시험 구간인 듯했다. 뛸 땐 같이 뛰고, 걸을 땐 같이 걷고, 먹을 땐 같이 먹는 모습에서 코디가 부단히 노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고 곧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을 기다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성 감각을 살려내어 독립적 성장을 시켜보려는 의도대로 코디가 움직여 주고 있었다. 딸이 픽업을 갔을 때는 변함없는, 일관된 동작으로 지체 없이 딸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첫날처럼 축 늘어지지 않고 딸의 품속에서 강아지 무리를 내려다보는 여유도 생긴 듯했다.


내일은 3주 차 유치원 등교하는 날이다.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유심히 볼 생각이다. 코디가 유치원을 가고 싶어 하는지 아니면 아직도 유치원 가는 것에 긴장을 하고 있는지.. 유치원 도착했을 때의 반응도 지켜볼 예정이다. 코디의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딸은 느낄 수 있기에..


코디의 유치원 도전기는 조금씩 성과가 나타난다. 코디 스스로 무척 애쓰는 모습이 역력히 보인다. 점점 강아지 무리 속에서 생활해야 함을 깨닫는 듯하고 분리불안 장애로 발생했던 과민성 대장 증상도 나타나고 있지 않기에 코디의 불안 수위가 낮아지는 듯 보인다. 한편으로는 딸과의 관계도 돈독해 보인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는 시점에서의 재회 모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애틋하다. 아이가 4살 때쯤 출근할 때마다 보채고 내 품에서 떨어지지 않던 아이가 퇴근하는 내게 달려와 안기던 그때가 생각난다. 그 시절, 아이도 나를 그렇게 떨어지기 싫어했었는데...




유치원에서 조금씩 성장하는 코디의 모습을 보는 딸의 얼굴에도 안도, 평온, 기대가 보인다. 참으로 다행이다. 코디에 대한 걱정, 우려, 불안의 모습은 확연히 준 듯하다. 딸의 얼굴에 나타난 편안함에 나의 마음도 가벼이, 평온하게, 흐뭇하게 해 준다. 


이번 코디의 분리불안장애를 통해 나는 오랜 시간 외국생활을 하며 공허하고 쓸쓸했을 딸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대견함이 가슴 깊이에서 느껴진다. 얼마나 많은 시간 엄마를, 아빠를 그리워했을까.. 얼마나 소소한 것들까지 나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을까? 얼마나 부모와 함께 하고 싶은 것을 참아냈을까? 이 모든 것들을 그저 바쁘다는 핑계로, 열심히 너희들을 위해서 살고 있는 아빠라는 위장으로 내 마음과 딸아이의 심정을 외면했을까?


코디의 분리불안은 안쓰러운 일이지만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듯이 아마도 코디덕에 나는 딸아이에 대해 빚진 마음을 지금부터라도 갚아야 할 숙제를 선물로 받았다. 아이야... 항상 이 아빠가 든든하게 너의 뒤에 있단다... 너는 항상 자랑스러운 아빠의 딸이고 아빠는 항상 네가 원할 때 그 자리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널 사랑할 것이란다.



 주> 니체,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2015,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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