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노아 Mar 05. 2024

변화를 거부하다!

지킬 것은 지키고 싶다

변화, 변화, 변화!!


어느 때부터였던가 가늠이 안되지만 우리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단어가 변화이다. 어디를 가던, 어디에 있던, 우리는 삶과 연계하여 변화를 얘기한다. 친구의 입을 통해서, 직장 상사와 동료의 입을 통해서, 그리고 부모, 형제를 통해서 변화라는 단어를 듣게 된다. 또한 변화가 제목인 책들도 많고 그 안에서 변화가 주연 배우가 되어 스토리가 전개된다. 이 모든 변화를 얘기하는 곳에서 보편적인 기준이 하나 있다. 변화가 없거나, 변화를 안 하거나, 변화를 못 하는 것은 실패자가 되거나 혹은 퇴행자가 된다는 것이다. 기업에 적용하면 망해가는 기업이 된다는 것이다.  


도대체 변화가 뭐길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이가 이렇게 주장하고 외치는가?


변화(變化)는 세상에 존재하는 물체의 형상, 성질 등의 특징이 달라지는 것을 말한다. 특징이 강해지거나 약해질 수도 있고, 새롭게 되는 것도 변화라고 한다. 사람에 적용하면 눈에 보이는 외양의 모습, 나타나는 말과 행동이 달라질 때와 성격과 마음과 같은 내면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을 변화라고 한다. 


그러면 고대 사상가들은 변화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 


그 유명한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 "우주에 변하지 않는 유일한 것은 '변한다'는 사실뿐이다 (宇宙中唯一不變的是變化)"은 널리 회자되고 있는데 ‘변함없는 것은 변한다는 사실뿐’이라는 말이다. 우리에게는 불변의 진리처럼 여겨지고 있다. 


주역의 해설서인 [계사전]에는 “역,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易, 窮卽變, 變卽通, 通卽久, 역은 끝까지 가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며, 통하면 오래 지속한다)고 했는데, 이 문장은 변화를 본질로 하는 역을 요약해서 보여주는 구절인데 변해야 오래간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다.


공통적으로 변화는 필요한 것이고 변화에 적응하면 성장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사라지거나 도태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변화를 양극의 논리로 한번 보자. 


가. 변하는 것 VS 변하지 않는 것


우주의 목적은 진화다. 진화는 변화를 전제한다. 그렇다면 우주의 모든 생명체는 변한다는 것을 전제하기에 인간은 무조건 변한다. 신체적으로 변하고 정신도 다 변한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보이지 않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맑은 영혼, 순수한 마음, 깊은 사랑과 같이 결코 태어난 갓난아기와 같이 지켜야 할 것들은 변하지 않을 수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것들이 변하지 않을까? 갓난아이와 같은 마음, 영혼을 지키지 못해 사악해져 가는 영혼, 혼탁한 마음, 불장난 같은 사랑들도 봤다. 변하지 않는다는 것 쉽게 얘기할 수 없는 것 같다. 단지, 변하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 같다. 


나. 스스로 변하게 하는 것 VS 스스로 변화시킬 수 없는 것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라곤 오로지 정신뿐이다. 신체는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변해간다. 그렇다면 내가 관심 두어야 할 부분은 정신뿐인 것이다. 젊은 외모를 부여잡으려 애써봤자 소용없지만 지혜로운 정신을 소유하고자 애쓰는 것은 바람직한 변화에 동참하는 자발적 주체성의 가장 아름다운 힘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지만, 결국 변화는 일어난다는 것이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변화라는 요구가 지배를 하고 있다. 생존하기 위해서, 성장하기 위해서,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그러나 이 변화의 요구로 인해 가끔은 지치고 감정의 동요, 감정의 메마름이 생기기도 한다. 세상이 변하고,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변하고, 궁극으로 우주가 변하기 때문에, 변화의 물결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 도도한 흐름에 치여 지칠 때가 있는 것이다.  


지난 35년 동안의 기업 활동에서 무수히 많은 변화를 요구받았고, 나 또한 변화를 외쳤고 시대의 흐름에 맞게 나를 변화시켜 왔다. 기업도 생존하기 위해, 나도 그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뒤처지지 않기 위해 변화라는 수단을 목표처럼 떠 받들어 살아왔다. 그러면서 ‘변화가 필요 없는 곳은 없을까?’, ‘있는 그대로 살아가면 안 될까?’하는 답이 없는 질문도 해봤다.


가끔 생각한다. 변화 안된 그때의 시간들을.. 청명하게 맑은 물이 흘렀던 한강을, 큰 청송 나무 그늘 아래의 평상에서 쉬던 고향의 언덕을, 문을 열면 새가 지저귀고 제비 집에 새끼들이 재잘거리던 집들을, 모자랐지만 베풀고자 했던 마음이 넘치는 마을을, 성실히 일하면 성취가 있던 시스템을, 증명하지 않아도 믿었던 순수함이 있던 사회를... 그러면서도 서로 변하기를 요구하지 않았던 그때를…


첨단화, 도시화, AI시대에 부질없는 얘기 임도 안다.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세상은 변화, 아니 진화하고 있음을 안다. 내가 못 본 것, 못 들은 것,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 있다는 것은 내가 모르거나, 변화를 모르고 있음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아도 될 것이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가치관도 변해야 하는 시대에 변하지 않도록 굳건히 지켜야 할 것은 지키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하려는 마음이다. 시대가 어떻게 변하든, 어떤 것을 요구하든 내가 정한 것들을 하려는 것이다. 나를 위한 것들을 하려는 마음가짐, 의지는 변하면 안 된다. 나를 잘 다스리고 다듬어 유익하게 쓰이도록 하기 위한 마음가짐, 의지는 변하면 안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한 루틴을 실행하는 마음도 변하면 안 되는 것이다.


거창하게 시작한 변화에 대한 얘기가 소소한 나의 마음가짐으로 내려왔지만, 

그럼에도 매일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리고 많은 것들이 변하고 있지만, 

변하지 않도록 지켜야 할 것은 지키고 싶다. 

그것은 내가 잘 쓰이기 위해 나를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다.

이전 10화 “딸의 반려견 코디에게 분리불안장애가 생겼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