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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노아 Apr 16. 2024

시간이 나에게 맞짱을 뜨려 하다니!

 

처음 독일로 발령받았던 2004년. 나의 인생 여정은 이곳에서 새로운 문을 열었다. 그리고 유럽 곳곳을 돌며 사업을 펼쳤다. 그렇게 10여 개 나라에서 사업을 한지 벌써 20년. 시간이 어느새 이렇게 흘러버려 두 딸아이도 성인이 되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 3달 반. 20년이나 3 달반이나 시간은 날 내버려 두고 어디로 가버리는 듯 순식간에 쉴 새 없이 나의 하루를 훔치듯 지나간다. 

 

그런데 20여 년과 3달 반, 한국에 와서는 안 해봤던 일들을 시작했고 새로운 영역의 지식을 배우면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해외에서 보낸 시간을 포함하여 지난 35년 동안 겪었던 시간의 속도보다 더 빠른 듯하다. 삶에 자극을 주기 위해 새로운 환경을 만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빠르다’라고 느끼는 이 상황을, 다시 20대, 30대의 시간 속도처럼 느리다고 느끼게 바꾸려 한다.  내 사고는 내가 바꿀 수 있다. '시간이 빠르다, 느리다'에 시간이 코웃음을 칠 것이다. 시간은 무조건 자기 속도로 아주 일정하게 가니까. 시간이 날 가지고 노는 듯 내 정신을 이리로 보냈다가 저리로 보냈다가 내가 하루 24시간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도록 날 다그친다.

 

새로운 것, 새로움은 도파민을 만들어 뇌를 활성화시키고 기억에 오래 저장한다. 오래 저장될수록 기억의 밀도를 높인다고 한다. 휘발성 기억들이 많으면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고 느끼고 반면 오래 저장되는 기억들의 밀도가 높으면 시간을 더디게, 그러니까 제대로 느끼게 한다.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 가고, 새로운 자극을 만들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은 기억에 오래 남아 자각하는 시간의 속도를 늦출 것이다. 지금 도전하고 있는 새로운 영역들이 나의 자각, 나의 시간에도 변화를 줄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것 중에 하나가 시간이다. 어느 누구 예외가 없이 균등하게 주어지는데 그 결과 값은 천차만별이다. 시간을 부리는 사람, 시간을 즐기는 사람, 시간을 끌고 가는 사람, 시간을 앞서 가는 사람, 시간을 따라가는 사람, 시간에 끌려가는 사람 등 모두가 시간과 함께 하고 시간과 씨름을 한다. 어떤 이는 시간이 남아 팔려고 하고, 어떤 이는 시간이 부족해 사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시간을 줄여 달라고 하고 어떤 이는 시간을 초월하려 한다. 중요한 것은 시간을 사용한 대가, 결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앞으로 50년을 더 살 것 같아서 그것을 시간으로, 분으로, 초로 계산해 보고 놀랐다고 한다. '아니, 이렇게 많은, 엄청난 시간을 갖고 있는 인간을 감시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도둑맞기 십상인데!(주 1)'하며 말이다. 


그렇다. 시간은 도둑질을 한다. 내가 충분히 누릴 수 있는 권리인데 내 권리를 빼앗아버린다. 아니, 시간입장에선 이렇게 충분히 주는데 자신을 소중히 다뤄주지 않는 나에게 원망스러우려나?


낚싯대를 드리우고 하염없이 강물을 바라보거나 인적 드문 좁은 오솔길을 하염없이 걸어보거나 텅 빈 벤치에 누워 하늘과 오랜 시간 눈 맞춤을 하거나.... 이럴 때 시간은 날 어떻게 바라볼까? 하릴없이 그저 시간이 내 삶을 지나가게 내버려 두는 듯 하지만 이런 시간이야말로 이 나이에 내게 반드시 필요한 시간인 듯하다. 무조건 날 지나가는 시간에게 나를 맡기기 때문에 반드시 이런 시간은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반면, 모든 것이 귀찮고 아무 생각도 못하게 하는 영화 한 편이나 유튜브영상에 언제 시간이 내게서 지나간 지도 모르게 하루를 보내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시간은 또 날 어떻게 바라볼까? 무조건 앞으로밖에 가지 못하는 시간인지라 아쉬움만 가득 남기고 내 삶을 지나가지 않았을까?  




나는 시간과 싸우고 있다. 싸움에선 기선을 제압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낚시터에서 낚시가 목적이라면 시간은 무지 빠르게 갈 것이다. 낚은 물고기와 비례할 테니 말이다. 반면, 낚시터에서 정신의 환기가 목적이라면 시간과는 무관할 것이다. 묵언수행과 별반 다르지 않을까 싶다. 시간을 잊음으로써 오히려 영원이라는 시간을 얻은, 이에 대한 보상은 깨달음이리라. 나의 경우, 무의식적으로 폰에 정신을 빼앗기는 일은 없지만 만약 이런 경우에 속한 이라면 아마도 이렇게 낭비한 시간에 대한 계산서는 인생의 어떤 지점에서 청구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시간이지만 누군가는 시간을 부리고 누군가는  시간을 끌고, 또 누군가는 시간에 끌려간다. 시간의 앞에 서 있는지 옆인지 뒤인지에 따라 승패는 좌우된다. 나는 시간을 부리려 한다. 누군가의 말처럼 시간의 즙까지 쫙 뽑아서 온전히 내 인생에 스며들게 하고 힢다. 내가 목적한 바를 이루고 시간사용에 대한 계산서가 있다면 제대로 치르고 당당하게 영수증을 받고 싶다. 창조적인 일에, 도전적인 일에, 성취해 나가는 모든 것을 위해 주어진 시간을 사용하고 그 보상을 받고 싶다.   

희망은 이러 하지만, 실상은 어떠한가? 하루의 24시간을 잘 부리며 사용하고 있는지 나 자신의 하루를 들여다봤다. 참 부끄러운 내용이다. 부끄럽게도 하루의 시간을 부리지는 못하는 듯하다. 성취하는 사람들의 시간 사용 명세서, 나의 바람이 담긴 시간 사용 명세서와는 다르다. 여전히 시간의 흐름에 마음이 조급하고 시간에 끌려 다니고 있음을 알면서도 시간 사용을 잘 못하고 있다. 하루 24시간을 허둥지둥, 허겁지겁하고 있다. 


틀이 튼튼하게 잡혀야 무너지지 않는데 틀이 약하니 시간이 들 쑥 날 쑥 하고 안정이 안된다. 심지어 잠자는 시간조차 제대로 못 부려 먹고 있다. 깊게 자고 개운하게 깨는 것이 잠 시간을 잘 부린 것인데, 그렇지가 못하다. 잠시간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면 하루를 망칠 수 있다. 누군가는 잠을 죽음의 친구라 했지만 니체(주 2)는 잠을 결코 하잘것없는 기술이 아니라고, 그것을 위해 하루종일 두 눈 뜨고 있는 것이라고, 그렇게 잠의 제대로 된 부름을 받기 위해선 낮에 덕을 쌓아야 한다고 했다.


일상이 시간과의 싸움이고 성취도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했다. 싸움에서 지면 시간은 달아나고 패배자처럼 시간의 뒤를 쫓아가게 된다. 그런데 나는 지금 시간과의 싸움에서 밀리고 있다. 시간을 두고 불안해하고 있다. 차라리 시간을 강하게 부려, 더 큰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나을 터인데 그렇지도 못한 채,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고 투덜대고 있다. 마치 정말로 누군가가 내 시간을 도둑질해 간 것처럼 불평까지 해대고 있다.


시간은 악마의 속삭임에 곧잘 이용당한다. 악마가 내게 조금 쉬라고, 시간이 많다고 날 기만할 때 내 모습이 형편없으면 시간은 악마와 손잡고 나를 완벽하게 속여버린다. 제 아무리 정신을 바짝 차리고 시간관리를 굳건하게 지켜내고 있더라도 시간과 악마가 손잡으면 어김없이 당하기 일쑤인데 요즘처럼 시간을 쓰는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악당들의 꾐에 넘어가버린다.




성취, 명예, 보람을 얻어가고 싶다면, 지금 이 시간을 제대로 부려야 한다. 지금 이 시간,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이가 앞으로 나아간다. 나는 끌려 다니며 시간 계산서를 받고 싶지 않고, 시간을 부리고 싶기에 악마의 속삭임 같은 시간의 유혹에 안 빠지지 않으려 한다. 지금 이 순간도 시간은 나를 흔들어대면서 끌고 가려한다. 시간을 부리기 위해 정신을 차리고 의지를 더 강하게 해야 한다.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일의 끝자락, 목표가 성취된 지점에서 지금을 내려다본다. 일의 끝에 나의 성취가 있으니 내가 이겼나 보다. 시간의 빠름에 불평할 필요 없다. 시간의 유혹에 불안할 필요도 없다. 시간은 어떤 경우에도 빠르게 달리지 않고 날 유혹하지 않는다. 내가 느리거나 허툰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며 내가 달콤한 유혹에 빠져 시간에게 민망한 것임을 나는 안다. 정신의 문제라는 말이다. 이제 정신에 다시 주름을 제대로 새기고 시간의 손을 잡고 시간 앞에서 시간을 부려봐야겠다. 시간은. 무조건. 내 편에 서 있는 나의 아군이니까 말이다!


(주 1) 세네카, 인생철학이야기, 동서문화사

(주 2)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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