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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노아 Apr 23. 2024

이는 배려일까?
권리일까?

K 부서장의 얘기를 통해 

어디까지가 배려일까? 상대의 말을 듣고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까지일까? 상대의 말에 거절하는 것도 포함될까? 배려는 이타적이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기적이어도 되는가? 


아래 내용은 지난 얘기이지만 최근에도 유사한 일이 생겼다. 사회적 차원으로 거창하게 얘기할 필요는 없지만 최근 우리의 사회적 상황이 무척 건조해진 것을 느끼는 지금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해봐야 할 듯하다.


팬더믹으로 인해 재택근무가 보편화되서인지 자연스럽게 부서의 저녁 회식 기회는 이견도 많고 하지 말자는 의견도 많아서인지 줄어들었다. 이로 인해 저녁식사 대신에 중식으로 대체하고 술 대신에 음료, 가끔씩 와인 테스트 등을 하여 부서 내 관계는 건강하게 유지되도록 노력을 하고 있다.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사람은 조직이고, 조직은 회사이니, 사람들이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회사는 각 부서에 예산을 주어서 편리한 방법으로 부서원들 간의 관계가 좋게 유지되도록 독려한다. 


판데믹 이후에는 저녁 식사 문화는 거의 사라진 듯하다. 회사 인근의 식당들이 힘들다고 호소할 정도이니 저녁 장사를 위해 열었던 식당들도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회사 생활 애환의 큰 축을 담당했던 저녁 식사 문화는 이제는 기억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저녁시간의 소통은 조직의 힘, 에너지, 단결을 받쳐주었던 순기능도 있었는데..


저녁 시간을 갖지 않는다고 해서 점심시간을 잘 활용하는 것도 아닌 듯하다. 부서마다 특성이 있어서 나름대로의 아이디어 즉, 부서원들이 동의하는 방법으로 점심시간을 활용하는 부서도 있지만 다수의 부서는 점심 모임도 갖지 못한 채 회사의 예산을 나중으로 넘겨 사용할 날을 도모한다.


점심도, 저녁도 하지 않는 부서 문화, 조직문화, 회사 문화에 익숙해져 부서 간 점심도, 저녁도 함께 하지 않고 삼삼오오 나뉘어 먹거리를 해결하거나 혼밥을 하고는 남는 시간을 운동, 산책, 개인공부 등으로 활용하는 듯하다. 부서 내의 소통도 필요한 얘기 중심으로, 효율적인 방법으로 한다. 같이 해야 할 일이 아니라면, 옆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에 관심이 없는 듯하고, 서로 터치 안 하는 프라이버시 존중 문화로 정착이 되고 있다.     



            

A회사의 혁신 부서는 오랜 기간 동안 점심 혹은 저녁 식사를 갖지 못했다. 일도 많아 늦게 퇴근하는 날도 잦았고 이런저런 사유로 부서의 소통을 위한 식사를 못했다. 부서장 K 부장은 부서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때마침 명절이 다가왔다. 그동안 하지 못한 회식으로 부서예산은 남아 있었고 이 예산을 분기 내에 사용 못하면 사라지기에 부서원들 집에 농산지 과수원 직 구매로 과일 선물을 배달시켰다. 


K 부장은 스스로 잘 한 결정이라고 생각하고 부서원들이 좋아하는, 감사하는 모습을 생각했다. 부서원들에 알리지 않고 가장 보편적인 선물을 골라 차등 없이 동일 상품을 전달하고 부서원과 가족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생각하면서 그동안 전체가 식사를 같이 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조금 덜어 내려했다.


상품이 배달이 된 다음날, 대다수 부서원들은 고마워했고 감사의 뜻을 전해왔다. 그런데 그날 오후, 인사부서에서 K 부장을 불렀다. 


“K 부장, 부서원 중 한 명이 투서를 했습니다. 회사 돈을 마음대로 사용했고 K 부장이 본인 집으로 보낸 선물이 뭔지 확인해 달라는 투서입니다.” 


K 부장은 인사부장의 얘기를 듣고 황당함을 넘어, 전혀 생각해보지도 못한 반응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음식도 개인별 취향이 있는데 물어보지도 않고 과일 세트를 주문한 것과 부서의 예산인데 부서장이라고 마음대로 생색내듯이 사용했다는 투서자의 설명은 한번 더 충격을 주었다. 반대로 해석을 하면 부서 예산이기에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 일일이 부서원들에게 물어봐야 하고 부서원을 위해서일지라도 부서장이 맘대로 사용하면 안 된다는 의견이었다.      


고마워할 것으로 기대한 일이, 부서원들이 같이 식사도 못한 미안한 마음에 한 선의의 일이, 이렇게 해석이 되어 투서가 되었다는 것에 당황, 허탈, 낙심, 상심을 크게 하였다. 더군다나 부서원이 이런 시각으로 부서장에 대해 투서를 했다는 사실에 허무, 절망까지 하게 되었다. 


“나는 내 집에 선물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부서원들이 고마워서, 부서원들에게 미안해서, 예산이 사라지기 전에 좋은 일이라 생각하고 한 일입니다.”


K부장 자신에게는 선물을 보내지 않았다. 순수한 뜻으로, 감사의 뜻으로 부서원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었다. 그간 못했던 점심, 저녁 식사 대신에 부서에 확보된 예산을 부서원들을 위해 사용한 것이었다.


HR 부서는 투서가 들어왔기 때문에 상응하는 절차를 밟아야 했다. 투서자에게 K부장 집에는 선물을 주문하지 않았음을 확인해 주었고 부서 예산은 부서장이 집행할 수 있음도 설명을 해 주었다. 그리고 투서자에게는 부서장을 신뢰하지 못한 채 계속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질문을 하였고 투서자의 요청대로 타 부서로 전배를 해 주었다. K 부서장도 그때의 큰 충격, 실망에서 전의를 상실하고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퇴사했다.  




투서한 부서원의 시각이 맞는 것인지, 아니면 부서원을 위한 부서장의 행위가 수용될 수 있는지 각자가 판단을 해보자. 리더가 신뢰를 못 주었으니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가능하다. 허나 다른 부서원의 반응을 보면 리더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그러면 K 부서장 행위가 배려에 가까운 것은 아닌지? 투서자, 즉 부서원의 주장은 일리가 있는가? 본인의 취향에 맞는 음식이 아닌데 물어보지도 않고 선물을 하느냐라는 의견은 공감할 수 있는가? 부서 예산을 부서원 의견을 물어보지 않고 사용하면 안 된다는 주장은 공감할 수 있는가?      


배려하려면 모든 것을 상대방에게 물어보고 하는 것이 맞는가? 서프라이즈 같은 배려는 할 수 없는가? 


혼밥이 보편화되고 있는 시대, 옆 사람과 대화가 없는 시대에, 같이 하는 식사를 못함에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 문제인가? 부서에게 주어진 예산을 부서원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문제 인가? 


같이 점심식사를 하더라도 참석하지 않는 직원에게는 어떤 배려를 해야 하는가? 


점심을 다수가 태국식으로 하자는데 태국식을 싫어하는 직원에게는 어떤 배려를 해야 하는가?   

 

세상이 바뀌었더라도, 같은 부서에서 기본적인 신뢰 없이, 효율만 앞세워 회사생활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말도 안 섞고, 대화 대신에 메일로 주고받는 것이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간주되는 조직 생활은 무미건조한 것이 아닐까? 


시대는 달라졌지만 사람이 중요하고, 사람 간 소통이 중요하고, 사람 간 신뢰가 중요하다. 이 기본은 어떤 명분, 유행이 등장하더라도 바뀌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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