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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노아 May 16. 2024

55 단어로 만드는 이야기와 도전!

도전자들의 이야기

"조심해, 자기야. 그 권총 장전돼 있어" 그는 침실로 들어오면서 말했다. 그녀는 침대에 기댄 채 쉬고 있었다. "이걸로 자기 와이프 쏘려고?" "내가 직접 하는 건 너무 위험하지. 전문 킬러를 쓸 생각이야" "난 어때?" 그는 낄낄거렸다. "귀엽네. 세상에 어떤 바보가 여자 킬러를 쓰겠어?" 그녀는 총을 들고 조준을 한 채 대답했다. "당신 와이프"


이 글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발행하는 <뉴 타임스>라는 신문사에서 1987년부터 매년 주최하는 '55 단어 이내로 만든 이야기공모전'에서 수상한 유명한 제프 위트모어의 작품 '불륜이야기'이다. 글이 아주 매력적이다. 짧은 글에 불륜이라는 주재를 중심으로 재치, 배신, 반전, 복수의 심리가 절묘하게 스며들어 있고 침실, 살인, 킬러, 총 등 다양한 소재들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메타포를 구성하고 있다. 고도의 맥락(high context) 이 글 전체를 관통한다. 이것이 글이 주는 매력, 저력인 듯하고 글에 빠져들게 하는 유혹이기도 하다. 이러한 매력, 유혹에 나중에 나도 이 공모전에 도전을 해볼까 싶은 의지도 생긴다.




지금 이 글을 적으면서 ‘글쓰기’가 아니라 ‘글쓰기 도전’에 대해 생각해 본다. 35년. 오랜 기간 동안 뛰어왔던 현장의 수많은 경험들이 기억 속에 남아 있고 이러한 나의 삶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어 졌고 그 바람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 더구나 기억과 생각의 휘발성이 빨라져 금방 잊히는 요즈음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더더욱 정리에 대한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는데 어찌해야 할까?  


답은 간단하다. 적으면 된다. 기억이 없어지기 전에, 생각이 휘발되기 전에 적으면 된다. 기억을 믿고 언제든 끄집어내면 되겠다 자신했는데 기억도 총량이 있는지 새로운 경험이 쌓이면서 기존의 것은 없어진다. 그리고 사실에서 자꾸만 왜곡될지도 모른다. 서서히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처절한 아픔을 겪고 있으니 적어둬야겠다. 언제부터인가 순간순간 떠오르는 것들을 폰에 담고 있다. 단어, 문구, 문장으로 담아두고 집무실에서, 집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적으려 노력하고 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것도 이런 과정을 통해 가능해졌다. 불과 4개월 전만 해도 브런치에 글을 올린다는 것을 생각조차 못했지만, 지금은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다 보면 뭘 해야 할지가 정리되는 듯하다. 나무를 그려가다 보니 숲이 보이기도 하고 숲을 그리다 보니 나무가 선명해지기도 한다. 인생의 흔적이 파편이었는데 정리, 적다 보니 퍼즐 조각이 맞춰져 뚜렷이 보이는 연유인 듯하다.


정리한 내용들을 이렇게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올리는 것은 세상과 대화하는 과정이다. 내가 정리한 내용들을 내가 보고, 나와 대화하다가 많은 사람들이 소통하는 플랫폼을 통해 넓게 대화를 시도하는 장을 만든 것이다. 반응, 공감, 조언, 독려, 반문하고 이를 통해 책임감, 진중함의 정도가 높아져 나를 더 다질 수 있을 듯하다. 삶, 성장의 끊임없는 과정에서 더 나은, 더 속이 찬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듯하다. 정리하고 적는다는 행위의 또 다른 가치가 아닐까 한다


'적는다'는 것. 과거를 남기는 것이며, 과거의 시각에서 현재를 보는 것이고 현재의 시각에서 과거를 들춰보는 것이다. 적는 행위는 곧 과거,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무척 중요한 툴인 것이다. 인생은 목표를 완성해 가는 과정이 아닌가? 목표에 가까워지고 또 목표를 넘어서기 위해 과거부터 미래까지를 하나의 큰 그림으로 봐야 한다. 그러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뚜렷함이 있는 흔적을 봐야 한다. 흔적은 기록이다. 기억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으니 적으며 인생의 목표와 과정을 평가해야 한다. 인생을 냉정히 평가하려면 세밀한 흔적을 봐야 한다. 세밀한 흔적을 남기려면 구체적으로 적어둬야 할 듯하다. 이처럼 적는다는 것은 과거,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것일 듯하다.    


결국, 적는다는 것은 나를 잘 키우기 위함이고 나를 잘 쓰기 위함인 듯하다. ‘멋진 인생’에 대한 동경은 모두가 갖고 있지 않을까? ‘멋진 인생’을 위해서 나를 잘 키워서 잘 써야 하지 않을까? 각 영역에서 멋진 인생을 산 사람들의 공통점은 책을 가까이하는 것과 적기를 즐겨한다는 것 아닌가? 이들은 간단한 단어라도 적어두는 습관에 있다고, 자신이 지금 삶을 향유하는 동력에는 생각들을 정리해 둔 것에서, 생각을 정리하는 것에 있다고..




적는다는 것을 정제하여 표현하면 글쓰기이다. 글쓰기의 가치는 큰데 습관화시키기가 쉽지 않다. 웬만큼 독한 마음이 아니면 글쓰기는 시작부터가 어렵고 유지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도전하기엔 아주 좋은 종목이다. 특히 인생의 반 바퀴를 돌아가는 도전자들에게 좋은, 현실적인, 가치 있는 도전 항목이다. 쌓여온 경험, 경륜과 지적 농도, 삶의 지혜와 노하우 등을 글쓰기에 녹여내는 것이 진정 가치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더 나은 삶을 구가하기 위한 많은 선택지들이 있겠지만 그 하나하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근간에는 글쓰기가 있는 듯하다.


세대를 뛰어넘어 글에 대한 관심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지만 수천 년 전부터 지금까지를 관통하며 이어온 것은 '글자'이다. 지금 시대에 제 아무리 '영상언어'가 판을 친다고 해도, 반 세기 이상을 관통한 사람들은 책임감, 의무감을 가지고 글에 가까이 있어야 할 듯하다. 읽고 쓰고 하여 가치 있는 경험, 경륜, 노하우, 지혜들을 나누어야 하지 않을까? 나만의 것이라 생각하여 꽁꽁 숨겨 두는 옹졸함, 만사가 귀챦다는 나태함, 나눌 게 없다는 무지함, 이제는 쉴 자격이 있다는 거만함, 아무 생각이 없다는 단순함 등의 합리화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서서 좋은 모범이 되는 것이 더 가치가 있지 않을까?


120세 시대에 있기에 도전이 더욱 요구되는 상황이다. 어떠한 도전이든 의미가 있다. 많은 도전 중에 하나인 글쓰기는 여러 의미를 지니는 좋은 도전인 듯하다. 상술했듯이 생각을 정리하고 세상과 소통하고 과거, 현재, 미래를 연결해 주는 아주 좋은 도전인 듯하다. 지나온 과거가 무척 의미가 크고 만족스럽거나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다면 미래로 이어가는 것은 더 큰 의미가 있으며 이 수십 년의 경험을 남기는 것은 의미를 너머 의무가 아닐까 한다.


현재는 모든 과거의 필연적인 산물이며, 모든 미래의 필연적인 원인이라 했다. 다시 말하면, 0.1 전은 과거이면 0.1초는 뒤는 미래이다.  잘게 나누면 0.0001 뒤도 미래이다.  깜빡할 사이가 미래이란 얘기이다.  말은 지금이 미래라는 뜻이다. 지금 도전하는 것이 미래의 결과물이다. 도전함에 주저할 이유가 없다. 나이가 도전의 장애물이   없고 장애물로 생각해서도 안됨이다. 미래를 만드는데 아무것도 장애물이   없다.


글쓰기의 습작이 지속된다면 나도 언젠가 55자 글자로 이야기 만들기에 도전할 수 있겠지!  ‘인생 뭐 있어?’ 생각대로 느낌대로 해보는 거지!


"글은 그 사람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 반대 또한 부분적으로 진실이다.

사람이 곧 글이다.

우리는 특정한 방식으로 글을 쓰는 재능을 가졌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우리 자신의 글쓰기 방식으로 변하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 스스로를 특정 수사법과 유사하게 만들어간다.

...

상식으로 보는 세상은 연속적이면서도 추정컨대 인과적으로 연결된 무수한 사건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기에는 무한한 수의 분리된 개별사물들, 생명들, 생각들, 질서 잡힌 우주라고 할 수 있는 것을 구성하는 전체가 포함되어 있다.


인간의 언어가 발달되어 온 것은

이런 상식적 우주를 서술하고 논하며 관리하기 위해서다.


#올더스헉슬리, 영원의 철학, 2014,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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