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山山)이 08화
영주는 의아한 표정으로 경하를 바라봤다. 산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곳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을 테다.
경하는 ‘산산(山山)이’라는 동아리 회장이었다.
처음 동아리에는 경하를 포함해 다섯 명 정도의 회원이 있었다. 모두 경하를 통해 산산이에 가입한 자들이었다. 경하는 같은 전공 학생이거나, 교양 수업 옆자리에 앉았거나, 팀 프로젝트를 함께 했던 학생들을 섭외했다.
그들의 공통점은 학교 내에 어떤 동아리가 존재하는지 모르며, 동아리 활동에는 관심이 전혀 없다는 점이었다.
경하가 말했다.
여기는 원래 산에 홀린 사람들만 들어올 수 있거든. 근데 도저히 회원을 모집할 수가 없더라. 부탁 좀 할게. 명단에 이름 좀 적어줘.
경하의 얘기가 끝나자 그들이 되물었다.
산에 홀린다는 게 뭐야. 귀신한테 홀려서 미친 것도 아니고.
그런 거 아니야. 산에 홀린 사람들은 자기가 산에 홀렸다는 걸 이미 알고 있어. 그냥 이름만 빌려줘. 학교에서 지원해 주는 동아리 운영비는 일 인당 몫을 계산해서 나눠줄게. 졸업할 수 있을 때까지만 버틸 수 있게 도와주라.
알겠어.
네 명의 아무개는 경하가 산산이를 운영할 수 있도록 이름을 빌려주었다. 그러나 학년이 올라가자 그들은 돌변했다. 취업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학술 동아리로 갈아타겠다는 것이었다.
경하야. 미안하게 됐다. 동아리 중복 가입은 인정되는데, 지원금은 한 곳에서만 받을 수 있다네. 앞으로 지원금도 안 나올 텐데 경하 네 동아리에 이름만 올려놓는 것도 눈치 보이고, 친구끼리 좀 그렇지 않냐.
그래, 경하야. 사실 난 이렇게 허위로 동아리에 이름 올려놓는 거, 예전부터 도덕적으로 문제 있다고 생각했어. 이참에 동아리 회원을 다시 뽑는 건 어때?
아무개들이 떠났다. 남은 건 회장인 경하뿐이었다. 경하는 다짐했다. 이번엔 꼭 동아리에 적합한 사람을 뽑겠다고.
바람이 꽃과 나무를 시샘해 꽃잎을 떨어뜨린다는 계절이 돌아왔다. 봄은 신입생 수천 명이 입학하는 계절이었다. 회원 한 명 없는 산산이는 존폐의 위기에 놓여 있었다.
경하는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동아리 홍보 기간에 홀로 부스를 만들어 테이블 한 개와 의자 한 쌍을 갖다 두었다.
산산이.
산은 사람들을 홀립니다.
산은 마음 깊숙이 자리 잡아 사람을 산산조각 냅니다.
몇몇 신입생들이 호기심에 경하의 부스를 기웃거렸다.
에이포 용지에 한 글자 한 글자 크게 적힌 ‘산산이’라는 플래카드를 보고 등산 동아리로 오해한 모양이었다.
등산 동아리 아닙니다. 등산 동아리 부스는 저기 보이는 분수 옆 벚꽃나무 밑에 있습니다.
경하는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 이후에도 간혹 산산이를 등산 동아리로 오해한 사람들이 찾아왔으나, 그것도 잠시뿐 사람들의 발걸음이 점차 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