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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소이 Jun 02. 2023

오직 두 사람

산산(山山)이 09화





경하는 별 소득 없이 동아리 부스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날은 동아리 홍보 기간 중 셋째 날이자 마지막 날이었다.


저, 산산이에 가입하고 싶습니다.


경하는 테이블 정리를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진한 청바지에 하늘색 셔츠를 입고 등 뒤로 커다란 회색 가방을 멘 영주가 서 있었다.


여기는 등산 동아리가 아닙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산에 홀린 사람이...


저, 산에 홀렸어요. 저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해요. 산산이에 가입하고 싶어요. 여기 있는 신청서 작성하면 되는 거죠?


잠시만요. 진짜 산에 홀리셨습니까?


네.


검증이 필요합니다. 알다시피 산에 홀리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라서요. 면접을 본 뒤, 제가 합격 여부를 결정할 예정입니다. 신청서에 성명, 학과와 학년, 연락처를 작성해 주시면 제가 연락드리겠습니다.


사회학과 이영주.


동아리 가입 의사를 밝힌 건 영주 단 한 명뿐이었지만, 경하는 무턱대고 그녀를 받아줄 수 없었다. 제대로 된 검증 없이는 앞선 회원들처럼 동아리를 가볍게 여기고 탈퇴할 게 뻔했다.


안녕하세요. 동아리 회장 박경하입니다. 산산이 면접 일정 안내드립니다.

금요일 오후 세 시, 학생회관(구관) 육 층.

맨 끝 방으로 오시면 됩니다.


산산이는 학생회관 구관의 가장 높은 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구관은 다른 건물과 달리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회원이 많은 동아리는 진작 학생회관 신관으로 옮겨갔지만, 회원 수가 적은 동아리는 이동할 수 없었다.


구관에서도 회원 수가 많은 편에 속하는 동아리들은 저층에 위치했다. 산산이과 같이 존재도 알려지지 않은 동아리는 가장 높은 층에 있어야만 했다. 산산이는 그중에서도 계단과 가장 먼 끝 방을 사용하고 있었다.


똑똑.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으며 영주가 산산이의 문을 두드렸다. 경하가 문 앞에 서 있었다. 다섯 평 남짓한 작은방에는 쿠션이 터진 낡은 소파와 철제 책상 두 개, 홍보 부스에서 보았던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들, 그리고 철제 선반이 한쪽 벽면에 놓여 있었다.


벽면에는 한라산, 백두산 등의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모서리에 붙어 있는 테이프는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듯 진득하게 녹아있었다.


경하와 영주는 플라스틱 테이블을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후. 영주는 테이블에 눌러앉은 먼지를 불었다. 예상하지 못한 뜨거운 온기에 경하가 움찔거렸다. 창문 틈새로 먼지가 일렁였다.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네. 좋아요.


면접 진행을 위해 영주 씨라고 부르겠습니다. 영주 씨도 저를 그냥 경하 씨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네. 알겠어요.


면접은 간단합니다. 산에 대해서 영주 씨가 느낀 것들을 제게 자유롭게 얘기하면 됩니다.


모든 걸요?


아니요. 제게 말하고 싶은 것만 얘기하면 됩니다. 제가 영주 씨의 이야기를 듣고 판단을 내릴 수 있을 정도만 말해주셔도 좋습니다. 말하기 싫은 부분을 억지로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네. 시작할게요.


영주의 이야기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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