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山山)이 11화
얘들아 잠시만. 선생님이 저 멀리 앞서가던 친구들도, 맨 뒤에 뒤처지던 친구들도 한 곳으로 불러 모았어요.
오백나한이라 불리는 들쭉날쭉한 바위들에 대한 설명이 시작되었어요.
아주 먼 옛날 한라산에 오백 명의 아들을 둔 어머니가 살았어. 흉년이 심한 어느 날, 오백 명의 아들은 먹을 것을 찾아 저 멀리 사냥을 떠났어.
어머니는 아들들이 돌아오기 전에 커다란 가마솥을 꺼내 자식들이 먹을 죽을 만들었지.
그런데 솥이 너무 커서, 죽을 젓다가 그만 가마솥에 빠져버린 거야. 펄펄 끓는 뜨거운 그곳에 말이야.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아들들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어머니가 만들어 놓은 죽을 먹었어.
첫째 아들이 죽을 덜어가고, 둘째 아들이 죽을 덜어갔어. 마침내 오백 번째 아들 차례가 왔어.
막내아들이 죽을 뜨다가 가마솥 바닥에 있는 뼈마디를 발견했어. 그제야 아들들은 자신들이 맛있게 먹은 죽에 어머니가 빠져 죽었다는 걸 알게 되었지.
충격과 슬픔에 빠진 아들들은 그 자리에서 계속 울었어. 울고 또 울어서 몸에 있는 모든 수분이 밖으로 흘러나가 없어질 때까지 울었어.
그렇게 온몸이 말라버린 아들들은 울다 지쳐 돌이 되었지. 그중에서도 막내아들은 섬을 떠돌아다니다가, 섬의 끝자락에서 섬을 지키는 바위가 되었어.
오백나한의 전설로 내려오는 이야기예요.
그런 전설이 있었군요. 산에는 전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풍화와 침식, 운반과 퇴적을 인내한 대상이잖아요. 고통이 따르는 것들엔 사연이 많습니다.
할머니도 그런 말을 하셨어요. 산에 있는 것들은 모두 고통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산에는 고통 없는 것이 없다.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오백 명이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는데, 어떻게 산의 존재를 외면할 수 있겠어요.
그 후로 학교에 갈 때에는 뒷산을 가로질렀어요. 사람들이 많이 다녀서 발자국을 따라 길이 만들어져 있었어요. 늘 움츠리고 다녔던 어깨를 펴고, 고개를 좌우로 돌려 주변을 인식하며 걸었어요.
산으로 둘러싸인 이 산동네가 아늑하게 느껴졌어요. 비 오는 날이면 능선을 따라 운무가 가득 차오르고, 맑은 날에는 청록색 산이 반짝거렸어요.
비행기 안에서 산줄기를 바라봤던 것과 비교도 안 되게 심장이 뛰었어요. 당장 심장이 달음박질로 갈비뼈를 뚫고 나올 것 같았어요.
죽을 것 같았지만 산을 피하지 않았어요. 그럴수록 산을 똑바로 쳐다보고, 온 감각을 다해 느끼려 했어요.
또다시 죽음을 경험을 경험했습니까?
아니요. 그 반대였어요. 살아있음을 느꼈어요. 사방에서는 바람에 흩날리는 풀 소리, 풀벌레가 찌르찌르 우는소리, 산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어요. 산에는 이렇게 생명력이 넘쳐흐르는데, 산을 피하라니.
할머니의 태도에 의문이 들었어요. 만약, 내가 산을 피하지 않고 마주했다면. 두 눈 똑바로 뜨고 직면하며 겪었을 모든 순간이 아쉬웠어요. 수동적으로 살아온 제 자신이 바보 같았어요.
어느새 할머니가 미워졌어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식으로 제 삶에 제약을 가하다니.
여러 계절이 흘렀고, 저는 계속 산을 올랐어요. 그날도 어김없이 뒷산을 가로질러 학교를 빨리 갈 생각이었어요. 현관을 나서는데 할머니가 말을 건넸어요.
사람들이 영주 니를 뒷산에서 봤디야. 이게 어찌된 일이야. 언제부터 산에 오른기야.
작년 가을부터요.
가을이믄 영주 니가 거, 수학여행에 다녀온 때 아니여. 기어코 이 망할 계집애가 산에 오른기야? 설마 한라산에도 다녀온 기야?
할머니가 절망 가득한 목소리로 울부짖었어요. 원망 가득한 눈동자를 쳐다볼 수 없었어요. 우물쭈물 대답도 못하고 문 앞에 서있는데, 할머니가 제 등을 퍽퍽 내리쳤어요.
니는 산에 있는 것들을 감당해 낼 깜냥이 못된디야. 니 애비처럼 제 명을 갉아먹는 기다. 우짤라고 그랬어. 우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