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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소이 Jun 05. 2023

다시 돌아와서, 한라산으로

산산(山山)이 10화





경하는 산을 믿지 않냐는 영주의 질문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처음엔 영주의 이야기만 들을 생각이었지만, 대화의 방향이 경하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생각을 말하고, 더 많이 자신을 드러냈다.


영주는 산에 홀린 게 분명했다. 산에 홀린 힘으로 경하를 홀리고 있었다. 영주의 이야기는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실의 힘이 있었고, 이는 경하를 속절없이 흔들었다.


믿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더 이상 믿지 않습니다. 본래 그 대상으로부터 기대하거나 바라는 게 있을 때 믿는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저는 더 이상 산에게 어떤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산은 의존하고 기대하고 바라는 존재가 아니라 그저 규정할 수 없는 독립적인 존재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저는 산이 실존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렇군요. 어느 정도 공감이 되네요. 저 역시 산의 실존에 대해 인지하는 기이한 경험을 했거든요. 잠시 보류해 두었던 한라산에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잘 아시겠지만, 한라산을 오르는 경로는 여러 개가 존재해요. 저는 그중 영실탐방로라고 불리는 가장 쉬운 코스로 한라산을 올랐어요.


영실탐방로면 백록담 정상을 볼 순 없었겠네요.


네. 아무래도 단체로 움직이다 보니 위험부담이 적은 코스를 고른 것 같아요. 사전에 미리 안내해 준 준비물이 기껏해야 등산화였어요.


등산화가 없는 학생들은 운동화를 가져와도 된다고 했어요. 그 정도로 초보자들도 쉽게 갈 수 있는 코스였어요.


영실탐방로는 영실휴게소에서부터 출발해서 해발 천육백 미터 인 남벽분기점을 최종 목적지로 도달하는 코스예요.


탐방로 대부분은 나무 계단이 있었고, 평탄한 지형이라 오르기도 쉬웠어요.


두 시간가량 능선을 따라 걸으니 해발 천사백 미터 정도에 도달했어요. 귓가가 물에 잠긴 것처럼 먹먹해졌는데, 희미하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어요.


흐으으. 흐으으.


주위를 둘러보니 신나게 웃고 있는 친구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우는 사람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었어요.


그 소리는 울음소리가 아니라 바람 소리였거든요.


들쭉날쭉한 기암괴석 사이에서 갇혀버린 바람 소리가 반사되고, 또 반사되어서 만들어낸 소리였어요.


흐으으.


생각만 해도 오싹하지 않아요? 그 소리를 듣고 있으니 양팔에 소름이 돋았어요.


이곳은 섬이라 그런지 흐느끼는 것들이 많구나.


할머니 말대로 물이 많아서 그런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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