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공자 개발자로 살아남기
팀별 회의에서 (사실 팀원이라고 해봤자 나밖에 없었지만) 이사님이 중대한 전달 사항이 있다고 하셨다. 중대한 전달 사항이라고 한 것은, 이번에 회사에서 진행하고자 하는 큰 프로젝트가 하나 있는데, 그 프로젝트가 우리팀을 중심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이야기 였다. 그 말을 다시 해석해보면, 우리팀의 팀원은 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 프로젝트의 실무 리더는 내가 되야 한다는 뜻이었다.
제가요?.. 저 이제 회사에 겨우 적응했는데요? 이제 겨우 프로그래밍 언어에 대해서 이해를 하기 시작했는데요 ?
이사님에게 되돌아오는 대답은 “네 ! 영하님이요!” 뿐이었다. 거기서 내가 대답할 수 있는 말 역시, 알겠습니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뿐이었다. 그 대답을 하고 미팅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한숨밖에 나오는게 없었다.
뭐든지 일을 하는데 있어서 큰 그림이 눈앞에 그려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이사님이 나에게 전달한 프로젝트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사님 자리에 찾아가서 한번 더 되물었다.
“이사님, 그래서 제가 해야 하는 프로젝트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의 범위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영하님이 담당해야 하는 일은, 우리 회사가 지금까지 만들었던 알고리즘을 잘 정리해서, 그리고 영하님이 만든 알고리즘 역시 잘 정리해서, SDK 형태로 판매하는 것이 목적이에요 ! ”
SDK라... 단어는 뭔지 안다. 하지만 그 단어 이상의 의미를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일단 프로젝트 담당을 하기로 했으니, 같이 이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하는 다른 팀원들에게 정확한 업무 전달을 해야하고, 그리고 여러 사람들이 공통된 청사진을 그리기 위해서는 정확한 구성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의 시간을 별도로 할애해서, 구글링을 먼저 하기 시작했다. 구글링으로 프로젝트 구성도, 순서도, 알고리즘 순서도, SDK 순서도 등등 머리속에 떠오르는 연관 키워드는 모두 검색해서, 다른 전문가들, 그리고 나보다도 먼저 이 일을 해본 사람들은 어떻게 이 일을 해나가는지 , 어떤 프로세스로 접근하는지 부터 확인하기 시작했다. 소프트웨어 기획, 구성 등등 훨씬 더 복잡한 단계로 세분화 되어서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우리 회사의 규모상 그 일을 나를 대신해서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내가 기획자이자 pm 이자,실무자로서 하나의 구성도를 그려갔다. 그리고 데이터의 입출력 구조도 맞출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갔다. 그러고는 이 프로젝트를 같이 진행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회의를 진행했다.
하지만 나의 노력에 고맙고 감탄하기는 커녕, 모두 이 프로젝트가 이해되지 않는 반응들 뿐이었다. 일단 이 프로젝트를 왜 해야하느냐, 공수가 너무 많이든다. 그래서 이 소프트웨어를 구매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느냐 등등. 온갖 피드백 아닌 피드백들이 들려왔다. 하지만 번지수 잘못 찾으셨습니다. 저에게 말씀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는데 말이죠 여러분...
일단 각자의 불만사항들은 접어두고, 각자 자신들이 담당하는 모듈에 대해서, 입출력을 어떻게 맞출 것인지, 구조를 어떻게 할 것인지 토론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 엄청 추상적이고, 정해야 할 것들 천지였지만, 하나씩 정리해나가기 시작했다.
데이터의 입출력을 맞추기 위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구조를 작성해 나가는 과정 중이었다. 이사님이 요청하신 전체적인 그림과 실무자들 사이에서 혼동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중간에서 정리정돈을 담당하는 입장으로서, 실무자에게 다가가, 실무자님이 해주신 방향은 이사님이 원하시는 방향과 다르다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그러자 분에 차서 스툴같은 의자를 회사 바닥에 던져버렸다. 솔직히 지금도 그 감정은 나도 잘 모르겠다. 어느 포인트에서 화가 나셨는지도, 그리고 왜 그 분을 나에게 푸는지도 이해가 가지 않았으며, 남의 돈을 받는 프로로서, 모든 사람들이 있는 공간에서 의자를 던지는 행위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평소성격의 나라면, 나 역시 참지 않았을 것이다. “왜 의자를 던지시죠? 너무 무례하신거 아닌가요? ” 등등. 나도 꽤나 험난한 험지 생활을 버터왔다고 자부하기때문에 그런 행동으로 무섭거나, 쫄지 않는 사람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순간 딱 내가 내린 결정은 생각보다 냉정했다. 저 사람에게 맞붙어 싸운다고 해서 내가 얻는 이득은 무엇인가. 저 사람은 더욱 화를 낼 것이고, 객관적인 내 피드백은 듣지도 않을 것이고, 더욱 더 감정적으로 나에게 말을 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한번 더 내 요청을 전달했다. 그러고 그날 저녁에 있었던 회식에서도 그 분 옆자리에 앉아 그 날의 감정이 내일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그 때 한번 더 느꼈다. 정말 개발자, 쉽지 않다.
내가 이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게 해준 정신적인 지주가 한 분 계셨다. 우리 회사의 아키텍쳐 부분을 담당해주시던 분이었다. 내가 개발에 대해서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너무나도 친철하게 답해주셨고, 그리고 이 프로젝트에 있어서 나보다 훨씬 많은 경험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사실상 연차로 보면 이분이 리딩을 해주시는게 맞지만, 다른 업무를 진행하시는게 너무 많았어서, 그리고 업무 유관도 상 내가 하게 되었던 배경이다) 내가 엄청 기대면서 지냈던 분이었다.
그런데 그분이 본인의 꿈을 위해서, 그리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퇴사를 결정하게 되었다. 솔직히 그분이 좋은 곳에 가는 것은 너무나도 축하할 일이고, 감사할 일이지만 이기적으로 생각해서, 나는 이 프로젝트를 어떻게 이겨내가야 할지 걱정이 앞서게 되었다.
정말 그분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싶었지만, 그런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내가 아는 지인이 자주 하는 말중에 내가 정말 좋아하는 말이 있는데, 그게 뭐냐면,
걍 하면 돼 !
이거다. 그냥도 아니고 “걍”이다. 뭐든지 크게 느껴지고, 엄청 어려운 일이라고 느껴지는 순간에도 주문처럼 이 말을 되뇌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 처럼 잠시 최면을 걸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 프로젝트를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걍 하면 됨.”
발표를 할 때 너무나도 떨리면 이렇게 하라는 조언을 다들 봐본적이 있을 것이다. 아무도 내 발표에 관심이 없고, 사실은 다들 딴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나도 이 프로젝트를 그렇게 접근하기로 했다. 이 프로젝트 세상 사람들이 아무도 관심 없음. 아무도 돈주고 안삼. 나만 내가 하는 거 열심히 하면 되고, 나만 이 프로젝트에 후회 없으면 됨. 이렇게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대충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