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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1] 결혼준비, 준비되었는가?

나는 결혼준비라는 조별과제의 무임승차자였다

by 펭귄 박

결혼식 당일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현재 기억에 남는 것은 여러 조각들로 흩어진 그날의 장면들 뿐. 그 짧고도 긴 하루를 준비하기 위해 나와 지금의 와이프는 얼마나 고생하고 싸우고 힘들었던가. 이제 결혼준비를 한다는 친구를 보면 마치 군대 전역하고 군 입대를 앞둔 친구를 보는 듯하다. “고생해라.”


사실 나는 결혼식 자체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결혼식은 허례허식이며, 특히 대한민국에서 진행되는 공장식 결혼 행사는 그 진정한 의미가 퇴색되었고, ‘인생에 한 번뿐’이라며 결혼을 앞둔 커플들을 등쳐먹는 결혼 업계의 호구가 되고 싶지 않다는 게 내 입장이었다.


예비 신부는 착하게도 내 입장에 십분 공감해 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식을 올려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하며 (우리만의 선택이 아니아 집안의 일이다, 부모님이 내고 다니신 축의금도 생각해야 한다, 하루만이라도 공주 놀이 좀 해보자) 나를 차분히 설득했다. 사실 설득도 필요 없었다. 사회에 대한 불만은 많지만 대부분 일에 소시민적 태도로 일관해 온 내 성격상 결국 가만히 두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생각을 바꿔먹었을 거다.


그래서 결혼식은 나보다 예비 신부에게 더 중요한 행사였고, 결혼준비에 대한 전반적인 주도권은 그녀가 쥐었다. 한편 나는 예비 신부가 무엇을 결정하든, 웬만하면 다 따를 준비가 되어있었다. 정말이지 결혼식에서 이상한 것만 시키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리고 결혼준비와 관련된 우리의 모든 싸움은 이러한 설정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혼준비가 한창이던 어느 날, 나는 그 당시 내 최고의 관심사였던 친구와의 사업 구상에 대해 나의 예비 신부에게 열렬히 떠들어댔다.


"그래서 우리가 좀 더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도록 새로운 방식을 고민 중인데… 내 말 듣고 있어?"


예비 신부는 말이 없었다. 분위기가 싸했다. 한참 전에 눈치챘어야 하는데, 나는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열심히 떠들어대고만 있었던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예비 신부는 관심도 없는 일에 대해 너무 오랫동안 이야기한 걸까? 아니면 내 말 듣고 있냐고 물어본 게 잘못이었을까?


한참 뒤 입을 연 예비 신부의 말은 나의 예상을 한참 빗나가 있었다.


“난 네가 취미 생활에 열중하고 친구랑 사업 구상 하는 거 너무 좋아. 그런데 요즘 너는 거기에 온통 정신 팔려있고 결혼준비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아. 결혼준비가 나 혼자 하는 게 아니잖아."


예상치 못하게 혼나고 나니 당황스럽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속 좁은 나는 내가 결혼식 준비에 기여한 사항들을 열거하며 열을 내기 시작했다. 실제로 예비 신부가 나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은 부당했다. (부당하다고 느꼈다.) 결혼식 준비와 관련하여 예비 신부가 잡은 일정에 모두 따랐고 예비 신부가 결정을 내리면 토 달지 않고 적극 동의했다. 그래서 내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예비 신부의 입장은 달랐다. 결혼식 준비에 대한 일정을 모두 본인이 조율하는 게 벅차서 내가 도와주기를 바랐고, 모든 결정에 동의하기보다는 나의 솔직한 의견을 듣고 싶어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혼식을 앞두고 결혼식에 대해서, 그리고 결혼 후의 삶에 대해서 나와 얘기를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그 뒤 며칠을 서로 토라져 있다가 언제나 그렇듯 화해했다. 결국 내가 결혼식 준비에 전보다 더 신경 쓰기로 했다. 다행히 그 이후 결혼식 준비는 큰 차질 없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현재 결혼 10개월 차에 접어들어 즐거운 신혼을 보내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의 '결혼식에 대한 반감'이 곧 '결혼식 준비에 대한 무관심'으로 이어졌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결혼식 준비에 대한 무관심을 '예비 신부 의견 존중' 내지는 '예비 신부 의견 적극 수용'이라고 예쁘게 포장하여 합리화했다. 평소에 백치미 넘치는 내 와이프는 이럴 때만 꼭 눈치가 빠르게 나를 꿰뚫어 본다.


결혼준비를 하며 싸우는 이유는 싸움의 수만큼이나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다는 말이 있듯이 결혼준비 과정에서 발생하는 커플들의 싸움도 유형화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경우 결혼식 준비에 대한 서로의 온도차에서 비롯된 다툼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결혼식 준비에 있어 일종의 조별과제 무임승차자였다. 와이프는 기꺼이 조장을 자처했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이야기를 나눌 조원이 필요했다.


결혼준비는 단순히 하루짜리 행사를 위한 과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앞으로 부부로서 함께 수많은 문제를 헤쳐나가야 할 우리에게 주어진 첫 번째 시험이었다. 그리고 나는 겨우 낙제를 면하고 이 시험을 통과했다. 혹시 결혼준비를 앞둔 사람이 있다면, '고생해라'라는 짧은 말로 대신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한 마디 더 덧붙이고 싶다.


"혼자 하지 말고, 꼭 함께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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