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한 나의 결혼식 소감
#1. 우리 결혼식은 흔히들 말하는 ‘공장형 결혼식’이었다. 물론 우리도 다른 형태의 결혼식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의 결혼식이 결국 표준화된 결혼식의 모습으로 수렴하는 것은 그게 가장 저렴하고 손이 덜 가기 때문일 것이다.
평범을 거부하고 나만의 결혼식을 하겠다고 팔을 걷어 올리는 순간 모든 것 하나하나 스스로 알아봐야 하는 어려움을 직면하게 된다. 어디서 결혼식을 할 건지, 식사는 어떻게 대접할 건지, 장소는 어떻게 꾸밀 것인지 등등.. 스몰 웨딩을 해본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힘든 건 차치하고서라도 비용도 더 많이 든다고 한다. 그래도 뭐, 그걸 다 이겨낸 사람들은 나름대로 보람은 있겠지만.
나와 와이프는 일찍이 욕심을 내려놓았다. 그렇다고 업계의 ‘컨베이어 벨트'에 우리를 완전히 맡긴 것도 아니었다. 중간중간 우리의 수작업이 들어갔다고나 할까. 틀에 박힌 결혼식에 우리는 나름의 특별함을 더했다.
우리가 단독홀 마지막 시간대에 결혼식을 진행한 것도 조금이나마 공장형 결혼식의 느낌을 지우기 위한 결정이었다. 마지막 시간대는 다음 예식을 위해 급하게 자리를 비켜줘야 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게 해 주었고, 단독홀에서 결혼식을 하니 피로연장에 우리 하객들만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우리 결혼식을 정말 특별하게 만들어 준 건 친구들의 축사, 축가, 그리고 조카들의 예동이었다. 진심을 담은 축사, 몇 날 며칠을 연습해서 완성한 축가, 그리고 긴장되는 순간에도 최선을 다한 귀여운 조카들의 모습은 지금도 결혼식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장면들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 결혼식은 세상에 하나뿐인 특별한 결혼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2.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그리고 완벽한 결혼식이란 더더욱 없다. 우리의 결혼식은 4월의 어느 토요일, 비 오는 축축한 날에 진행되었다. 그날은 아침부터 하늘이 흐리더니 결국 오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가든 웨딩 분위기를 원했던 와이프는 1년 전 예식장 한쪽 통창으로 쏟아지는 햇빛에 매료되어 본 예식장을 선택했다. 그러나 비 오는 날 이런 분위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웠고 이에 대한 아쉬움은 컸다. 날씨로 인해 하객들도 오가는데 불편을 겪었다. 그럼에도 결혼식에 참석해 준 지인들은 '비 오는 날 결혼식을 올리면 잘 산다고 하더라' 라며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날씨도 날씨지만 사실 결혼식 당일에는 그 외에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다. 예식은 늦은 오후였지만 그날 일정은 12시도 되기 전에 시작되었다. 메이크업, 이동, 식전 촬영, 하객 맞이 등으로 결혼하는 사람들은 하루 종일 바쁘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당사자들은 신경이 날카로워져 작은 것 하나하나에 마음 상하기 쉬워진다. 머리나 메이크업이 마음에 안 든다거나 옷이 불편하다거나 신부의 경우에는 드레스를 고정하는 핀이 삐져나와서 자꾸 어딘가를 찌른다거나... 완벽을 추구하는 날일 수록, 그리고 더욱 행복해야 하는 날일 수록 이런 사소한 일들이 사람을 속상하게 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몇 주 전 우연히 들은 교회 목사님의 조언이 결혼식 당일에 마음을 다잡는데 큰 도움이 됐다. 목사님은 설교 중에 결혼식 시작을 앞두고 부케를 잃어버린 커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완벽해야 했을 그날 하루가 신부에게 속상한 하루가 될 뻔한 순간이었다. 결국 급하게 마련한 조화를 들고 입장한 신부에게, 목사님은 주례를 하며 '기쁨을 빼앗기지 말라'는 말을 해주었다고 한다.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말은 지키는 사람의 적극적인 방어 의지가 있어야 함을 암시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나와 와이프도 이 말을 기억하며 결혼식날 우리의 기쁨을 빼앗기지 않기 위한 전투에 임했다. 그날 마음속에 수많은 공방전이 있었지만 우리는 땀나는(?) 노력으로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다.
#3. 결혼식은 나에게 수능을 치르는 것과 비슷한 경험이었다. 두 과정 모두 근 1년의 고생이 하루의 행사/시험을 위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닮았다. 디데이를 앞둔 몇 달 동안 심리적으로 큰 부담이 느껴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코앞으로 다가왔을 때 '이제는 그냥 다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점에서도 둘은 다르지 않았다.
결혼식 당일은 정말 정신없었다. 나는 결혼식 시작도 전에 지쳐버렸다. 결혼식이 끝난 후 정장을 벗어던지고 누워있는 나 자신을 상상하며 그 순간이 오기를 간절히 바랐다.
어찌어찌 결혼식이 끝나고 식사 중인 지인들에게 인사를 마치니 우리도 밥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 왔다. 따로 마련된 혼주자리에는 스테이크와 함께 우리를 위한 특별한 음식이 마련되어 있었다. 억지로 스테이크를 한입 물었을 때 고기의 부드러움과 고급스러운 질감은 단번에 느낄 수 있었으나 어째서인지 무슨 맛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식장에서의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고 부모님까지 배웅해 드리니 드디어 나와 와이프만 남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 둘만 있을 때의 그 고요를 즐기며 침묵 속에서 신혼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해서 하루 종일 너무나 어색했던 화장을 지우고,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으니 그제야 결혼식이 끝났다는 게 실감이 났다. 마치 수능이 끝난 기분, 해방감이었다.
#4. 결혼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결혼식을 굳이 해야 되냐며 와이프에게 소심하게 따졌던 기억이 있다. 당시 사람들은 10년 넘게 사귄 우리를 부부처럼 대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이러한데 허례허식은 집어치우고 그냥 혼인신고만 하고 살면 안 되냐고 물었다. 당연히 와이프는 결혼식은 해야 된다고 했고, 나는 그냥 한번 해본 말이라며 함께 결혼 준비에 착수했다.
돌아보면, 결혼식을 하길 잘한 것 같다. 결혼식은 우리의 관계에 있어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모든 의식이 곧 허례허식은 아니다. 사람은 의식 속에서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고 달라질 수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살면서 가깝게 지낸 지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우리를 축하해 주는 것 또한 너무 기분 좋고 감사한 일이었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결혼식을 와준 하객들과는 더욱 친밀해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앞으로 우리는 이 날을 평생 기념하며 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