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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건우 Aug 20. 2023

12 설악산에서 길을 묻다

12. 길고 긴 터널의 끝은 어디일까요?

나는 산을 좋아한다. 특히 혼자 다니는 산행을 좋아한다. 내가 가고 싶은 곳에, 출발하고 싶은 시간에, 나만의 페이스로 산을 탈 수 있기 때문이다. 힘들 때면 항상 산을 찾는다. 산은 한 번도 날 싫다고 등 떠밀지 않았다. 엄마의 포근한 가슴이 되어 주었고, 아빠의 든든한 어깨가 되어주었다.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 때면, 지리산이나 설악산을 찾게 된다. 안아주는 품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힘들고 바쁜 일상을 뒤로하고, 멀고 높은 곳에서 발가벗겨져 있는 나를 바라보기 위해 산으로 향했다. 이른 아침부터 더위가 들숨을 힘들게 한다. 아직은 습도가 높지 않아서 인지 날숨은 그나마 쉴만하다. 지난봄 벚꽃을 본 이후로 봄에서 여름으로 어떻게 지나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음 편히 하늘을 보지도 못했고, 내 피부에 와 닫는 바람도 느끼지 못했다. 머릿속은 실타래 마냥 꼬일 대로 꼬여있었고, 내 심장은 절구인양 꽁이가 쉼 없이 찍어 누르고 있었다. 힐링이 필요했고, 생각을 정리할 필요도 있었다. 60일간 두서없이 써 내려간 글에 쉼표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무엇보다 현 상황을 잘 해결해야 할 답이 내게는 필요했다.




설악산에 가기 위해 서울양양고속도로에 올라탔다. 오랜만에 하늘을 보고, 산을 바라본다. 산 중턱에는 안개인지 구름인지 땅과 하늘이 힘든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하늘이 이겨서 구름이 되기를 기대하며, 가속페달에 약간의 힘을 더 보태어본다. 지나가면서 만나는 터널이 내가 지금껏 지나온 상황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터널이 끝났다 싶으면 또 다른 터널이 끊임없이 나타난다. 터널 속에서 쉴 새 없이 울려 퍼지는 굉음과 아무런 상호관계도 없이 발산하는 불빛은 결코 유쾌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수많은 터널을 지나 인제 양양터널이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터널이기도 하지만, 내가 제일 싫어하는 터널이기도 하다. 몇 번 지나가 봤지만, 여전히 10킬로미터가 넘는 터널을 지나가는 것은 유쾌하지 않을뿐더러 공포감마저 느껴진다. 점장이 되고 나서 지금까지의 상황을 복기해 본다. 지금 나는 어둡고 끝도 알 수 없는 터널의 어디쯤 지나가고 있는 것일까?




한계령삼거리에 도착하니, 힘든 줄다리기 끝에 구름이 승리를 했는지, 용아장성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등산객 중 한 명이 ‘앞에 온 사람들이 안개를 조금씩 치우고 있더라’는 우스개 소리를 건넨다.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표정이 밝다. 내 마음도 덩달아 밝아졌다. 산행을 하며 사장아버지와 단 둘이 진솔하게 대화하자고 다짐했다. 오해를 풀어주길 간절히 바라며 산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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