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건우 Aug 22. 2023

14 막장의 끝은, 막장이었다

14. 사장님은 끝내 답을 주지 않았다

모든 상황은 막장으로 치닫고 있었다. 광부는 막장에서 생[生]과 사[死]를 를 넘나들며 일을 하듯, 우리는 마트에서 생사의 싸움을 하고 있었다. 광부의 막장은 생산과 생계를 위한 막장이었지만, 우리는 서로를 파괴시키고 스스로를 허물어버리는 막장이었다. 누군가가 곡괭이로 한 번 찍어 내리는 순간, 막장은  와르르 무너져 버릴 것 같은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었다.




여기서 생긴 골은 사장과 사장아버지 사이에서 더 큰 골로 변했다. 사장은 아버지가 마트에 나오지 않을 것을 이야기했다. 사장아버지도 그러는 듯 보였지만, 불현듯 마트에 나오곤 했다. 일체 일은 하지 않으며, 직원들을 감시하고, 창고와 쓰레기통을 뒤지고, CCTV를 보곤 했다. 나와 직원들은 이 모든 상황들을 감내하며, 힘들어하는 사장님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거래처에게 줘야 할 미수는 계속 쌓여만 갔고, 결제가 늦춰진 거래처는 상품공급을 중단했다. 매장에 상품들은 점점 줄어들었고, 비워지는 공간이 늘어났다. 매일 걸려오는 거래처의 전화는 짜증이 났고, 결제를 해달라고 사장에게 전화하는 것은 차마 못할 짓이 되어버렸다. 하루하루 매장을 운영하는 것이 벅차고 힘들었다.




 사장님은 얼굴보기가 더 힘들어졌다. 가락시장 다녀오면 같이 물건 하역하며 매일 보던 사장님이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았다. 장을 본 상품은 2호점 직원이 대신 가지고 왔다. 간혹 일과 관련된 전화통화를 하고, 문자를 보내곤 했다. 얼굴은 보지 못할 뿐 일과 관련된 의사소통은 하고 있었다.




한 날은 매장으로 전화가 걸려오더니 직원이 날 찾는다며 바꿔줬다. 사장어머니라고 했다. 평생 들어보지도 못한 욕설까지 섞어가면 끊임없이 욕을 해댔다. 한참을 듣고 있다 수화기를 놓아버렸다. 사장님 집안에서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는 말을 오래 일한 직원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또 한 번 모진 수모를 당했다. 하루빨리 마트가 정리되기만을 기다리며 사장님에게 문자를 보냈다.




사장님~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요,

마트 운영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루하루 버텨내는 게 갈수록 힘들어집니다.

사장님도 힘드실 텐데 미안합니다.”


다음날 아침 출근길, 전화를 달라는 문자가 와 있었다.

출근하면서 전화를 했다. 수 일 안에 정리가 될 테니 며칠만 참아달라고 했다.


이 통화가 있은 후 정확히 24시간 뒤 사장님의 비보를 접했다.

이전 14화 13 모함[謀陷]과 수모[受侮]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