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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가 깊어지려면, 흔들려야 한다.

by 라텔씨

나에게 집중해야 한다는 말을

나만큼 잘하는 사람도 없다.



언제부터였을까?

나만 알아서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한 건.

그런 듯, 아닌 듯 아리송하게

개인주의인 듯, 이타주의인 듯

그 경계를 왔다갔다 하지만,


결국 나는 내가 잘 돼야,

남을 챙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집중하는 것을 잘한다.




삼국지나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서

수없이 나오는 등장인물의 이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이 주는 교훈은 중요하지만,

그들의 이름이 뭐였는지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아직까지도 사람들을 인식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한 번 본 사람의 얼굴은 잘 기억하지만,

몇 번 봐도 그 사람의 이름과 얼굴을 매칭하는 건

어려워한다.


이 사람이 나에게 도움이 되면 기억하고,

도움이 되지 않으면 기억하지 않고가 아니었다.


그냥 타인에 관심이 없었다.


여전히 그렇다.

심지어 가족, 친척들에게도 관심이 그리 많지 않다.

(아내와 딸들은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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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을 정리하고, 반백수의 길을 걷는

나의 모습을 보고 걱정하시는 게 당연한 부모님께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제 인생 살아주실 수 있는 거 아니잖아요."

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T발놈스러운 면도 있다.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갖기도 하지만,

나는 내가 알아서 잘할 거다,

결국 나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나밖에 할 수 없다는

마음이 너무 크기에,

나를 몰아세우기도 한다.




요 며칠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고,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뭘 해야 하는지 판단조차 하지 못했다.


기분은 계속 가라앉아 있었고,

무의미한 핸드폰만 보고,

인터넷만 뒤적거렸다.


일종의 '번아웃'이다.

가끔 이런 날이 온다.

방황의 일종이다.

며칠 이러다 원래 상태로 돌아오기도 하고,

몇 주 동안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위기가 처음은 아니다.

그럴 때마다 독서, 글쓰기, 운동으로 극복했고

어느새 루틴 삼총사가 나의 지지대가 되었다.


하지만 가끔은 이 지지대로도 견디기 어려운

흔들림이 찾아올 때가 있다.

책을 짚기도 싫고, 글을 쓰기도 싫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때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럼에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당최 어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다.

꼭 분석하고 정리할 정도로

알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다.


오늘 글은 그런 글이고,

오늘 기분은 그런 기분인 거다.


그럼에도,

이런 날조차도,

내 인생의 소중한 하루임은 분명하다.

그 하루가 평소보다 망쳐졌거나,

기대했던 것보다 많이 못 미치더라도,

이런 시간도 내 인생을 꽉꽉 채우는

에피소드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괜찮다.

난 곧 더 괜찮아질 테니.






>> 한 줄 코멘트. 흔들리는 나무의 뿌리가 더 깊어진다는 말이 있다. 루틴이 많이 흔들리고 나의 일상도 흔들리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런 흔들리는 시간이 누적되고, 흔들림의 폭이 점점 줄어들 때, 비로소 나는 더욱 안정적이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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