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를 의심하게 된 시대의 이야기
"노래 배우러 오세요.(무료 봉사)
가수 OOO"
큰길 사거리, 거대한 현수막이 한눈에 들어온다.
“노래 배우러 오세요. 공짜로 가르쳐 드립니다. 무료 봉사합니다.”
한 노년의 남성이 자신의 사진을 큼지막하게 인쇄해, 노래를 배우고 싶어 하거나 시간이 많은데도 할 일이 없는 사람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선명하게 쓰인 '무료 봉사'라는 단어에 시선이 머물렀다.
무료… 봉사… 무료라면 다 봉사일까? 봉사란 무엇일까?
사전을 찾아보니 [봉사: 국가나 사회 또는 남을 위하여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힘을 바쳐 애씀]이라 적혀 있다.
문득 ‘법륜 스님’의 '즉문즉답'에서 들었던 한 질문과 대답이 떠올랐다.
관객: 법륜 스님 강연이 공짜라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왜 소중한 강연을 무료로 하시나요? 법륜 스님: 제가 부처님 말씀을 공짜로 배웠는데, 돈을 받으면 되겠어요? 저도 공짜로 나눠드려야죠.
짧고도 명확한 철학이었다.
그렇다면, 본인이 좋아서 하는 일인데 '봉사'라고 하면 안 되는 것이 아닐까? 자신이 즐거워하며 하는 일이라면 결국 자신을 위한 일일 텐데. 조금만 들여다봐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덕업일치를 이룬 모든 사람들은 봉사라는 단어와 무관한 이기적인 사람들인가?
오늘날, 누구나 SNS와 책을 통해 ‘퍼스널 브랜딩’을 강조하고, 많은 사람들은 그 과정에서 ‘선한 영향력’을 내세운다. 사람들은 '나는 도움을 주고 싶다'는 이미지로 자신의 팬덤을 키워가고, 그 영향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져간다. 나 혼자 홍보하던 것이 100명의 팬덤이 생기면 그 효과는 100배가 넘어 결국 수익이 된다.
‘수익’이 된다면 문제인가? 그들은 '선한 영향력'을 위해서이지, '무료 봉사'하겠다고 한 것은 아니었다. ‘봉사’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에서 우러난 도움인지, 아니면 먼 훗날 돈을 벌기 위한 하나의 수단인지, 그건 알 길이 없다. 다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추측만 가능할 뿐.
몇 년 전 ‘풀소유’라는 불명예스러운 닉네임을 얻은 한 스님이 떠오른다. 그는 ‘무소유’를 통해 사람들의 신뢰와 인기를 쌓았고, ‘풀소유’가 드러나며 다시금 무소유로 돌아갔다. 물론 자산은 여전히 풀소유하고 있을지 모른다.
겉으로는 무소유와 무료 봉사를 외치지만, 실상 본인이 얻는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무료'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생긴다. 어릴 적 들어왔던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 떠오르며, 차갑고 냉정한 진리를 다시 깨달을 때마다 세상에 대한 경계가 더욱 단단해진다.
진심으로 봉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물론 그럴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되었다. SNS를 통해 진심으로 봉사하는 마음을 보여주며 그 세력을 키울 수 있는 세상이다. 어떤 인플루언서는 먹방을 통해 후원받은 돈을 모두 기부하기도 하고, 전 세계 구독자 1위 유튜버 '미스터비스트'는 아프리카에 집을 짓고, 식수를 공급하는 우물을 파는 프로젝트를 하기도 한다.
그래서 조금 어렵다. 세상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정답은 아니고, 무작정 긍정적으로만 보는 것도 정답이 아니다. 그 빈틈에서 약삭빠른 이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이용해 돈을 벌고, 어떤 이들은 같은 기술로 사람들을 돕는다. 배신감을 느끼면서도, 존경을 느낀다.
이런 질문을 법륜 스님께 드린다면 뭐라고 답하셨을까?
“걱정하지 마세요. 남을 속이는 사람은 언젠가 밝혀져서 무너집니다.
그냥 자신이 돕고 싶으면 돕고, 아니면 말고.
불법적이거나 비도덕적이지 않으면 괜찮습니다.”
라고 답하시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