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냄새는 닮는다.
농장에서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함께 지내게 되면서, 인종, 국적마다 체취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양애들이 한국 사람한테 마늘 냄새난다고 뭐라고 하는 경우가 있듯이, 나의 농장 룸메이트 '샤'에게서는 서양인 특유의 암내가 났다.
처음 농장에서 축구를 할 때 그와 몸싸움을 피했던 이유 중 하나는 특유의 체취 때문이었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다. 나의 경험을 얘기해 주는 것뿐이다. 분명히 그에게서, 그리고 그와 함께 지내던 비슷한 국적의 친구들에게서는 비슷한 체취가 느껴졌다. 중고등학생 때 겨드랑이 냄새라고 '암내'라고 명칭 했던 그런 냄새, 또는 양고기가 익숙하지 않을 때 맡을 수 있는 특유의 고기 누린내와 닮은 체취였다.
축구할 때만 참으면 됐었던 그의 체취는 카라반 파크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피할 수 없는 공기가 되었다. 땀을 흘리고 안 흘리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특유의 체취는 땀과는 상관없이 좁은 카라반의 공기를 점령해 나갔다. 그의 체취와 나의 그것이 서로 밀고 또 밀며 세력을 확장해 나가는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쟁은 결국 내 것의 패배로 끝났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 카라반 밖의 의자에서 보냈다.
그런데 그와 룸메이트가 된 지 2주일이 지났을 때, 문득 깨달았다.
더 이상 그에게서 체취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이상했다. 그는 처음에도, 지금도 여전히 잘 씻고, 땀도 적당히 흘리고, 일도 똑같이 하는 2주 전의 그와 똑같은 그였다. 그렇다면 나의 후각이 마비되었거나 나에게 이상이 생긴 것인가. 특별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는데, 갑자기 그의 체취를 맡을 수가 없다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2주가 지나서야 깨달았지만, 어쩌면 그 이전부터 그의 냄새가 안 나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체취가 조금 강하다는 것 말고는 그는 정말 좋은 남자였다. 상냥했고, 배려심도 많았다. 호주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을 잘 이해했다. 내가 호주에서 만났던 사람들 중에 가장 좋았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그의 체취가 더 이상 느껴지지 않다니.. 신기했고, 마음이 편안했다. 카라반의 공기가 평온했다.
나는 토마토 농장에서 항상 그의 옆 자리에서 일을 했다. 토마토를 딴 만큼만 수당을 챙겨가는 '컨트랙트'로 일하는 농장이었기에, 무조건 빠르고,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이 돈을 많이 버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일하는 농장에서 2번째로 일을 잘하는 친구였다. 가장 일을 잘하는 사람은 그 지역에서 토마토 따기 경력만 20년이 넘은 중년의 아저씨였다. 가장 토마토를 잘 따는 아저씨는 나의 3배를 땄고, 샤는 나의 2배를 땄다. 내가 하루 종일 죽어라 일해서 100달러를 벌면, 1등은 250~300달러, 샤는 200달러를 벌었다. 샤도 경력이 5년이 넘었기 때문에 그 정도 실력이 가능했던 것이지만, 나에게는 내년이 없기 때문에 그를 따라가야만 했다. 그의 손동작과 스텝, 템포를 계속 따라 하려고 했다. 눈과 손이 동시에 토마토라는 타겟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눈은 넓은 시야로 토마토를 찾아내고 양손은 쉴 새 없이 번갈아가며 토마토를 땄다. 샤가 쉬지 않으면 나도 쉬지 않았다. 그의 스텝을 따라가고, 그와 같은 시간에 끝내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언제부터인가 샤가 300달러를 벌면, 나는 250달러를 벌었고, 1등이 500달러를 벌면, 나는 400달러를 벌었다. 우리는 토마토를 빠르게 잘 따는 사람을 '토마토의 신 : 토신'이라고 불렀다. 샤는 '토신'이었고, 나는 그의 추종자였다.
"샤, 이렇게 돈 많이 벌어서 다 어디에 써?"
"고향에 아내가 있어서, 돈도 보내줘야 하고, 나중에 아내가 호주에 올 때 필요하니까 잘 모아야 해."
그는 아프가니스탄 출신이었다. 그리고 고향에 아내를 두고 왔다. 아내를 호주에 데려오기 위해서 시민권을 얻고, 열심히 돈을 벌어서 고향에게 보내주기도 하고, 여기서 돈을 모으기도 하고 일절 낭비를 하지 않았다.
그는 난민 자격으로 시민권을 얻어 호주에서 생활한 지 벌써 5년 째였다.
"아내는 언제 올 수 있는데?"
"....."
그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자세한 상황을 잘 모르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가족을 데리고 오는 것이 쉽지 않은 것만은 분명했다.
그럼에도 그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파티를 해도 맥주 한 병을 넘기지 않았고, 과식, 과소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매일 일을 하고, 간단하게 음식을 해 먹고, 축구를 하고, 일찍 잤다. 쉬는 날이면 낚시를 하고, 수영을 하고, 검소하게 자연 속에 어우러진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낯선 여자들에게도 관심도 없었고, 여자들과 말을 잘 섞지도 않았다. 그들의 문화를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쩌면 그의 고향의 문화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유일하게 그가 즐기던 것은 담배였다.
담배를 입에 물고 토마토를 따던 그의 모습은 나의 어린 시절, 공장에서 담배를 물고 기계를 돌리던 아버지의 모습보다 훨씬 역동적이면서, 극도로 이국적이었다. '이국'에서 '이국'의 '이국' 사람이 담배 피우는 모습은 나의 언어 표현력을 뛰어넘은 모습이기에 딱히 묘사할 방법이 없다. 분명한 것은 토마토 농장 배경으로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일을 마치고 나른한 몸을 의자에 기댄 채 담배를 나눠 필 때면, 세상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그 시간은 그대로 멈춰도 충분히 괜찮을 것 같았고, 급하게 무엇을 해야 할 필요가 없음에 고요하게 번져가는 담배 연기와 함께 우리의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았다.
"알렉스, 근데 그거 알아?"
"뭐?"
"예전에 이전 농장에서 축구했을 때 기억나?"
"응, 기억나지. 그때 진짜 재밌었는데.."
"처음에 너네 만났을 때, 너네 냄새 지독했어."
"진짜? 나도 그랬는데!"
샤가 그렇게 말하는 것에 무척 당황스러웠다. 냄새가 났었다는 사실에 당황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배려해서 말을 아끼던 그가 그렇게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나를 놀라게 했다.
"근데 왜 더 이상 냄새가 안 나는지 알아?"
"왜 그런데?"
"우리가 하루 종일 똑같은 걸 먹잖아."
"아..."
"너는 마늘 들어간 음식 안 먹고, 나는 향신료 들어간 거 많이 안 먹고."
그때 깨달았다. 우리가 함께 먹는 것들이 똑같다는 것을. 하루 종일 붙어 있으니 당연한 거였지만..
같이 장을 보고, 같이 요리를 하고, 같은 향신료, 같은 양념으로 한 음식을 먹으며, 우리는 조금씩 비슷한 체취를 가진 사람이 되어갔던 거다.
체취가 같아졌다는 건, 어쩌면 삶의 냄새가 같아졌다는 뜻이었는지도 모른다. 단순히 음식 때문만이 아니라, 같은 시간, 같은 공간, 함께 땀을 흘리고, 모든 것을 공유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날씨를 견디며 같은 공간을 살아냈다는 증거였다.
서로의 냄새가 불편했던 우리가, 같은 담배를 물고 같은 냄새를 품던 그날.
이국에서의 이국인들끼리의 우정, 그 냄새는 충분히 달큰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