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이었다.
그녀가 있는 한국에, 그녀와 드디어 같은 하늘 아래 있는 것이.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순간이었는데, 생각보다 덤덤했다.
2년간의 호주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인천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담배를 입에 물었지만, 한국은 그새 많은 것이 변해있었다. 호주와 뉴질랜드 공항과 다르게 아무 곳에서나 담배를 피울 수 없는 것 같았다. 아무도 입구 앞에서 담배를 물지 않았다. 한쪽 구석에 담배를 피울 수 있는 흡연 지정 장소가 눈에 들어왔다. 1월의 차가운 공기를 느끼며 흡연 장소로 가면서 중얼거렸다.
"예전 같지 않네."
그날 저녁, 집 앞 공원, 예전에 그녀와 오랫동안 전화통화를 하곤 했던 벤치에 앉아있었다. 담배를 한 대, 두 대 피우며 아직까지도 마음의 결정을 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그녀에게 전화를 해야 할까? 해도 될까? 그녀가 전화를 받으면 뭐라고 하지? 왜 호주에 안 왔냐고 따질까? 아니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안부를 물어야 할까? 진짜 남자친구가 생긴 거면 어떡하지? 나를 스토커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이런 온갖 생각에 담배꽁초만 쌓여갔다.
호주에서 날아오는 시간 동안에도 확실하게 매듭짓지 못하고 망설이던 마음의 갈등은, 퍼져나가는 담배 연기처럼 흐려지지 않았다.
'한 대만 더, 이것만 피우고 해 보자.'라고 마음을 다잡았지만, 담배를 몇 대는 연달아 핀 후에야 결정했다.
오래되었지만 익숙한 번호를 누르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심장이 얼마나 크게 뛰는지, 전해지는 울림이 더 긴장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떨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지금 거신 번호는 고객의 요청으로 일시 정지 된 번호입니다.'
잘못 누른 건 아닌지 번호를 확인했다. 다시 걸었다. 같은 멘트가 나오는 걸 듣고 나서야 실감할 수 있었다.
'정말 호주에 갔구나.'
오히려 홀가분했다. 그녀와 나는 정말 인연이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에 실망감보다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굳이 오래 묵혀둔 이별이라는 변하지 않을 결과를 그녀의 입과 나의 귀로 다시 확인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던 것은 어쩌면 명확하게 끝내지 못한 그녀와 나 사이, 아니, 내가 놓지 못한 일말의 희망이라는 끈을 정리하고 싶었던 거였다. 그리고 아직 존재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녀와 나 사이의 끈은 이미 끊어진 지 오래였고, 이제야 받아들이게 되었다.
슬프지 않았다. 담담했다. 담배에 연달아 손이 갔다. 전화를 걸기 전에는 덜덜거리던 손도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이별한 적 없지만, 드디어 이별을 맞이했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는.
그녀는 이제 추억 속에만 존재했다.
'2년 전의 그녀는 죽고 없다.'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이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에 그녀를 만나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문득문득 예전 그녀의 수줍은 미소와 눈빛이 그립기도 했지만, 이제 그녀는 나의 현실 속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호주 어딘가 살아 있을 사람을, 내 멋대로 죽은 사람으로 생각하겠다는 건 분명 극단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이고, 비인간적인 발상이었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겠어? 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하겠다는 건데, 누가 그 마음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뭐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철저히 그녀의 존재를 부정했고, 부정했고, 부정했다.
그녀가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던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에 연락을 할 수 없었던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호주에 오지 않았던 것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나를 위로하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비로소 오래전 그녀와의 기억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녀를 애타게 기다리는 마음을 품고 있었을 때는 과거로 다시 돌아갈 수 없을까 봐 애틋하고 아픈 기억이었는데, 마음을 내려놓으니 눈부셨던 사랑이었음을 다시금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이제 곁에 없지만, 영영 만날 수 없겠지만.. 그때의 기억을 돌아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왜 호주에 오지 않았는지에 대한 원망은 희미해졌고, 이제 앞만 보며 나아가는 일만 남았다.
복학을 하고, 취업 준비를 하면서 정신없는 나날이 이어졌다. 바쁜 일상 덕분에 빠르게 현실에 적응할 수 있었고, 호주에서의 생활도 빠르게 추억이 되었다.
"저 오빠 좋아해요."
한참 어린 여자 후배가 고백을 해왔다. 호주에서 알게 되었던 여자들에 대한 경험 때문이었을까? 나이도 한참 어린 그녀가 나를 좋아한다는 건 진작에 눈치챌 수 있었다. 수업을 같이 들은 적도 없었지만 다른 후배들 때문에 알게 된 그녀였다. 어리고, 귀엽고, 예쁘고, 착해서 인기도 많은 그녀였지만, 나는 그녀의 마음을 받아줄 수 없었다.
예전 그녀를 잊지 못해서는 아니었다. 다만 3년 전에 느꼈던 진정한 의미의 '설렘'을 더 이상 느낄 수 없었다. 심장의 두근거림 없이 시작하는 만남은 호주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그다지 좋지 않은 결과만 남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현실 세계 속, 나의 엉뚱한 생각은 '그녀는 죽어서 이 세상에 없는 존재'라고 말하며, 나의 '연애 감정'도 죽였다. 누구를 만나도 설렘이 없었다. 설렘이라는 감정은 과거에만 존재했고, 현재의 나에게 닿지 못했다.
나는 깨달았다. 그녀가 유일한 나의 사랑이었음을. 첫사랑이자 끝사랑이었음을. 다시는 어떤 누구를 만나도 설렘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을. 이제 내 인생에 진정한 사랑을 만나기는 힘들 것이다. 이렇게 되었음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인정하기로 했다.
그렇게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호주에서 일한 거 세금 환급받으려면 어떻게 받아야 해요?'
죽었다고 생각하던 그녀에게서 문자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