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의 두 딸: 모압족과 암몬족의 기원
재난을 피해 도방한 롯과 두 딸들은 초아르를 떠나 산으로 올라가 살았다. 초아르에서 사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상은 파괴되어 살아남은 자들은 아버지와 두 딸뿐이었다. 두 딸들은 종족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아버지가 술을 들게 하고 함께 누웠다고 성경에는 쓰여 있다. 그리고 롯은 두 딸이 자신과 함께 누웠다는 것을 몰랐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뒤에 맏딸은 아들을 낳았는데 그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다. 그가 모압족의 조상이다. 작은딸도 아들을 낳았는데 그 이름을 벤 야미라 하였다. 그가 암몬족의 조상이다.
이 이야기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이해하고 싶다.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이 땅에는 세상의 풍속대로 우리에게 올 남자가 없구나. 자, 아버지에게 술을 드시게하고 나서, 우리가 아버지와 함게 누워 그분에게서 자손을 얻자." (창세기 19장 31절)
그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종족을 지키는 것이 가장 우선순위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지금의 윤리로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나 그 당시에는 용인이 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보았다.
롯의 두 딸들은 주어진 상황을 가만히 넋놓고 보고만 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종족을 지키는 길을 선택했다. 난 그들을 지금의 잣대로 평가하고 싶지 않다.
롯의 두 딸들은 비록 그들의 방식은 처절했지만 재난후 모든 것이 파괴된 현실을 극복하고자 애썼다고 나는 이해하고 싶다.
암몬인은 오늘날 요르단의 수도 암만을 중심으로 해서 사해 북동쪽에 살던 종족이다. 이 암몬족은 히브리 말로 베네 암몬으로 벤 아미와 철자와 발음이 유사하다.
성경은 모압족과 암몬족도 아브라함의 조카이자 이스라엘과는 친척 관계인 것을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해 두었다. 성경은 왜 이러한 기록을 남긴 것일까?
지금 당장은 알기 어렵지만 차차 알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아브라함과 아비멜렉: 아브라함의 받아들임
아브라함은 네겝 땅으로 옮겨 가서 카데스와 수르 사이에 자리르 잡았고 그라르에서 나그네살이하게 되었다.
아브라함은 이집트에서도 목숨을 구하기 위해 아내 사라를 누이라 말하였던 것처럼 그라르에서도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말하였다.
이집트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라르 임금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다.
그날 밤 꿈에, 하느님께서 아비멜렉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다. "네가 데려온 여자 때문에 너는 죽을 것이다. 그 여자는 임자가 있는 몸이다." 아비멜렉은 아직 그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았으므로, 이렇게 아뢰었다. "주님, 당신께서는 죄 없는 백성도 죽이십니까? 아브라함 자신이 저에게 '이 여자는 제 누이입니다.' 하였고, 그 여자 또한 스스로 '그는 제 오라비입니다.'하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하느님께서 꿈에 다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네가 흠 없는 마음으로 이 일을 한 줄 안다. 네가 나에게 죄를 짓지 않도록 막아 준 이가 바로 나다. 네가 그 여자를 건드리는 것을 내가 허락하지 않았다.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 사람은 예언자이니,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면 너는 살 것이다. 그리나 네가 만일 돌려보내지 않으면, 너와 너에게 따린 자들이 모두 반드시 죽으리라는 것을 알아 두어라." (창세기 20장 3절~7절)
아비멜렉은 얼마나 놀랬는지 아브라함을 불러 양과 소, 남종과 여종을 데려다 아브라함에게 주고, 그의 아내 사라도 돌려주었다. 그리고 은전 천 닢도 함께 주었다. 또한 그라르 땅에서 마음에 드는 곳에 자리를 잡아 살게도 했다.
그리고 아비멜렉이 사라에게 말하였다.
"나는 그대의 오라버니에게 은전 천 닢을 주었소. 보시오. 그것은 그대와 함께 있는 모든 이들 앞에서 그대의 명예를 회복시켜 줄 것이오. 이로써 그대는 모든 면에서 결백하다는 것이 입증되었소." 이에 아브라함이 하느님께 기도하자, 하느님께서는 아비멜렉과 그의 아내와 그의 여종들의 병을 고쳐 주셨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되었다. (창세기 20장 16절, 17절)
아브라함은 나그네살이하는 중에 아름다운 아내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될 것을 염려하여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인다. 하느님은 그때 마나 나타나시어 아브라함과 사라를 지켜주셨다.
신은 왜 그토록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지켜주신 것일까?
아브라함은 신의 말씀에 순종하는 겸손자였다. 자신의 고향을 떠나고 친족과 아버지를 모두 떠나 신이 보여주고자 한 새로운 땅으로 떠난다. 아마도 그 길은 목숨 걱정을 해야 할 정도로 험난했던 것 같다. 겸손한 자세로 신께 순종하는 아브라함이었기 때문에 그 험란한 고난의 길 조차 받아들인다. 그 고난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그런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그러한 신께 감사를 드렸다. 아브라함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소돔과 고모라 시대를 살아가는 의로운 이였다.
보통은 고난을 피하기 위해 애쓴다. 최선을 다해 고난을 피해 가려고 한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달랐다. 그것은 순종일까? 그것이 고난의 길이라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겸손하게 오직 믿음으로 눈에 보이는 고난의 길을 묵묵히 가는 이가 아브라함이었다. 인간이기에 때론 거짓말로 난관을 극복하려 노력하는 모습도 보인다.
왜 신은 잘살고 있던 의로운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 고난의 길을 걷게하신 것일까?
하늘은 크게 될 사람에게 고통을 먼저 준다.
하늘이 장차 어떤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 마음과 뜻을 흔들어 힘들고 고통스럽게 만들고, 뼈마디가 꺾이는 고탄과 고초를 당하게 하며, 그를 빈궁에 빠뜨려하는 일마다 어지럽게 만든다. 이는 그의 마음을 단단하게 하고, 인내를 기르게 하여, 그가 지금까지 할 수 없었던 일을 앞으로 능히 해낼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 맹자 -
신은 하늘의 별 많큼 많은 자손들의 조상이 될 아브라함을 그 앞날을 감당할 수 있도록 단련시키고 계셨다.
다음은 아브라함의 두 아들 이사악과 이스마엘, 이사악의 어머니 사라와 이스마엘의 어머니 하가르에 대한 이아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