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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의 장례식

가족을, 새로이 만나는 청년

by 봄아범


* 이 글은 봄아범의 어멈, 봄할멈의 암투병 중에 있었던 사실을 기반으로

봄아범의 아범, 봄할아범의 시각을 통해 쓴 Faction(Fact+Fiction)입니다.

함께 살아온 부모를 다시 만나는 아들의 마음으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꿈을 꿨다. 아내의 장례식이었다. 영정 사진이 눈에 꽂혔다. 황망하다. 자식들과 손주들이 모두 함께였다. 상복을 입고 있어도 현실감이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하지만, 이렇게는 아니다. 갑자기 떠난 아내를 보낼 수가 없다. 눈물이 나올라 칠 때, 눈이 떠졌다. 잠이 안 온다. 그래도 자야 한다. 억지로 눈을 감는다. 다시 꿈을 꾼다. 이번엔 아내가 하늘로 날아갈 준비를 한다. 아내에게서 빛이 난다. 손주가 태어날 때의 꿈과 닮았다. 얼굴에서 황금빛이 나는 손주를 아버지가 안겨 준 태몽. 빛으로 온 손주와 빛으로 떠나는 아내의 모습이 묘하게 겹친다. 광채를 뿜으며 하늘로 오르는 아내를 어쩌질 못한다. 눈을 뜬다. 잠은 다 잤다.




아내는 두 번째 암을 견디는 중이다. 첫 번째 암은 마흔과 함께 찾아왔다. 1999년. 나이를 떠올리기도 어려운 힘든 시기였다. 국가와 함께 나도, 가정도 함께 부도가 났다. 잘해보려고 한 마음이 지나쳤다. 나와 다른 사람을 너무 믿었다. 빚보증에 잠식된 가족은 반지하로 침잠했다. 고통은 오로지 아내와 아이들의 몫이었다. 미안한 마음을 표현할 여유도 없었다. 새로운 사업으로 집안을 일으켜야 했다. 자궁을 들어낸 아내가 몸을 차리는 것보다, 사업체를 재건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때의 나를 후회한다. 이번만큼은 달라야 한다. 죽음에 호상이 없듯이, 암 중에 착한 것은 없다. 치료할 수 있는 종양이라 해도 치사율은 있다. 간밤의 꿈으로 불안감이 더해진다. 요즘 손주가 “할머니는 아니야!”라고 외치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세상을 떠날 사람과 정을 떼려는 아기의 영험함이 확실하다. 아들, 딸 모두 결혼해서 출가한 지금. 가장 가까운 보호자인 나의 역할이 크다. 아내가 좋아할 만한 음식과 장소를 고민해야겠다.




아내와는 대학 시절, 등산 동호회에서 만났다. 산을 좋아하는 아내는 등산 후에 먹는 음식도 맛있게 먹었다. 감자전을 야무지게 찢어 물었던 그녀의 모습이 예뻤다. 20대의 모습이 눈에 선한 지금. 병치레로 처녀 때의 몸무게를 닮아가는 아내의 모습이 짠했다. 입원과 수술, 회복까지 머무른 병원이 답답했다. 나도 이렇게 힘든데 아내는 얼마나 더 힘들까. 즐거운 상상을 한다. 유유히 흐르는 북한강. 멀리 보이는 청계산. 깊이 들이쉬고 싶은 공기. 상쾌해진다. 분명히 아내도 그럴 것이다. 퇴원하는 날, 경치 좋은 교외로 나가야겠다. 감자전을 사줘야겠다. 병치레와 병간호로 고생한 아내와 나. 두 사람 모두에게 분명 선물이 될 거다.


KakaoTalk_20250807_091334152.jpg 대학 때의 소녀 같던 어머니. 중년이 되어서도 공부를 했다. 2012년, 신학원 졸업식날 아버지가 꽃다발을 안긴 날.


“사람 말을 좀 들어!”


나를 향한 아들의 일갈에 울컥한다. 원래 버르장머리가 없는 건 알지만, 이건 너무 한다. 욱하는 마음이 잦아든다. 퇴원을 앞둔 아내가 나에게 해 온 말을 곱씹는다. 기운이 없어서 집으로 가서 쉬어야겠다는 아내의 말. 그럼에도, 자연을 보면 분명 좋을 거라며 외면했다. 튀김이나 부침은 니글거린다는 아내의 말. 그럼에도, 입맛이 돌아올 거라면서 재차 권유했다. 여러 번 감자전을 말한 끝에, 아내의 체념한 듯한 말투가 돌아왔다. “그래. 감자전 사 와.” 역시 아내는 감자전이 먹고 싶었어. 자신만의 확신을 가지는 머리가 희끗한 남성을 만난다.




모든 것은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첫 번째 암투병 때 챙겨주지 못한 부채감. 이번에는 달라야 한다는 불안감이 아내의 장례식을 열었다. 내가 좋은 장소와 음식은 아내도 좋아할 거라는 지레짐작. 나만의 생각이 아내가 하는 말과 행동을 닫아버렸다. 30년 사회생활은 권유와 설득의 연속이었다. 영업을 하듯 부부관계를 유지했다. 내 뜻을 관철시켜서 계약을 성사하면 돈이 벌린다. 아내를 내 뜻대로 이끌면 한숨과 침묵이 늘어난다. 아내는 고객이 아니다. 내 뜻을 밀어붙이는 것은 부담일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안다. 그리하여, 아내에게 한 번 더 묻는다.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도 없다.'는 대답을 들어도 괜찮다.


“당신. 뭐 좀 필요한 거 없어?”


KakaoTalk_20250807_092724883.jpg 어머니의 회복에 필요한 것은 생명의 기운. 두 손주 덕분에 건강을 차리는 어머니를 응원하며. 조금씩 귀와 마음을 여는 노력을 하는 아버지를 존경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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