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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별자리

가족을, 새로이 만나는 청년

by 봄아범

밤하늘의 별을 본 적이 있는가.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그런 경험이 거의 없다. 아름다운 밤 풍경은 늦은 시간에도 불이 켜져 있는 건물의 야경뿐이었다. 가끔 한강을 달릴 때 화려한 올림픽대교가 눈에 들어왔다. 별보다 더 빛나는 조명을 한참 바라보았다. 집 앞 공원의 언덕 위에 오르면 달이 눈에 들어왔다. 상현부터 보름까지. 달의 변화가 아름다웠다. 달빛에 가려서였을까. 매번 구름이 가렸을까. 아니면 도시의 불빛이 가로막았을까. 제일 밝은 별이라는 북극성도 나에게는 희미하게 보였다. 크게 감흥도 없었다. 오늘 밤하늘 예쁘네. 가볍게 말하고 조깅을 마무리했다.


결혼 전, 매번 조깅할 때마다 만났던 나홀로 나무. 별도 없이 홀로 서 있었다.


별을 볼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뮤지컬을 보러 과천에 방문했다. 꼬마버스 타요 : 소원을 들어주는 요술 지팡이 대소동. 공연이 열리는 장소는 과학관의 어울림홀. 아내는 출장 중이었다. 아내가 예매한, 아내 없는 뮤지컬이었다. 감사하게도 장모님, 장인어른이 동행해 주셨다. 장인어른은 나비를 좋아하셨다. 뮤지컬 장소가 과학관인 것이 절묘했다. 곤충생태관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돔형태의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천체투영관. 별자리 전시장일까. 상영시간이 있었다. 10분 후 시작. 관람시간은 30분. 먼저 들렀다가 나비를 보러 가기로 했다. 4DX로 별을 보여주는 걸까. 큰 기대 없이 자리를 잡았다. 불이 꺼졌다. 눈 위로 보이는 돔에 별이 쏟아졌다. 별자리 해설가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렸다.


"놀라셨죠. 눈이 어둠에 적응하려면 깊이 감았다가 뜨시면 됩니다. 어떠신가요. 더 잘 보이죠? 별자리 해설을 들으러 오신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 간단한 상식과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드릴게요. 우선 북극성부터 찾아볼까요. 보통 가장 밝은 별로 생각하고 계신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국자 모양의 별자리 아시죠. 북두칠성. 그것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국자 끝의 두 별을 이어볼까요. 그 선을 다섯 번 늘려볼게요. 맞아요. 그 위치가 북극성. 폴라리스입니다. 북쪽을 찾고 싶으신가요. 하늘에서 국자 모양을 만나시면 되겠습니다. 대부분 학생들이 함께하고 계시죠. 사자자리. 큰 곰자리. 전갈자리. 알고 계신가요. 네. 별을 이렇게 연결하면 모양이 보이죠? 별자리에 맞게 그림이 보일 겁니다. 반갑게 인사해 볼까요? (중략) 이제 마지막으로 향하고 있는데요."

당신의 별자리를 만들어보세요.


결혼 전에 아내와 함께 본 별자리는 무엇이었을까. 강릉으로 여행을 갔다. 이유는 단 하나. 별을 보기 위해서. 아내는 별을 좋아했다. 나는 아내를 좋아했다. 손이라도 한 번 잡을 수 있으면 고마운 밤이었다. 밤하늘의 별은 안중에도 없었다. 해발 1,100m의 안반데기. 주차를 하고 전조등을 껐다. 빨려 들어가듯이 별을 바라보았다. 꼭 잡은 손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하늘에 감사했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자연. 단순한 진리를 목도하니까 전율이 일었다. 궁금해졌다. 아내는 어떻게 일찌감치 별을 사랑하게 된 걸까. 그녀가 나고 자란 곳은 은하수를 쉽게 볼 수 있는 곳이었다. 해가 지면 빛이 거의 없는 밤하늘을 마주했다. 매일 만나는 별이지만, 매번 감동받았을 그녀. 대학생 때도 별을 보는 동아리에 가입을 했다. 동아리의 이름 그대로 그들은 ‘별빛’을 따라갔다. 가깝게는 경기도부터 멀리는 강원도 깊은 곳까지. 청첩장 모임으로 만난 별빛 친구들은 모두 선한 미소를 가지고 있었다. 그중의 가장 아름다운 미소. 아내의 웃음이 보고 싶었다.




“봄이는 무슨 별자리 만들고 싶어?”

“나는……. 레이싱카 별자리!”

“아빠는……. 엄마 별자리. 엄마가 별을 좋아하거든. 엄마가 참 보고 싶네.


생각지도 못한 말이 나왔다. 생각보다 더 많이 울었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상영이 끝나고 나서도 한참을 울컥했다. 은하수처럼 쏟아지는 감정이 알려줬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녀를 더 사랑하고 있다는 걸. 놀란 장모님이 울음의 이유를 물었다. 닷새를 못 본 아내가 그리워서 그렇다고 했다. 누가 보면 5년 못 본 줄 알겠다고 멋쩍게 웃으며. 울음도 전염이 되는 걸까. 장모님이 눈물을 훔친다. 그녀는 20대에 셰프의 꿈을 안고 타지생활을 하는 처남을 떠올렸다. 가끔 환한 달이나,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을 보면 당신의 아들을 생각했다. 그리움에 짓는 눈물 끝에는 위로가 남았다. 그럼에도,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다는 사실. 이 하늘을 만든 신이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 그제야, 아내가 별을 사랑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가끔 전화로 만나는 동생과 닿아있음을 느낄 수 있으니까. 그 옛날, 견우와 직녀를 연결해 준 은하수가 우리 가족을 이어 줄 것이라 믿으니까.




“자기야. 오늘 달이 참 예뻐. 반달이야.”


깊은 밤, 출장에서 돌아온 아내가 말한다. 그림 같은 달 주변을 아파트의 불빛이 수놓는다. 하지만, 눈은 보이지 않는 별들에 향한다. 가족을 사랑하여 하늘을 사랑하게 된 엄마와 딸. 장모님과 아내를 떠올리며. 하늘이 참 높다. 가을이다.


아내가 찍은 2018년의 밤하늘. 그 때의 아름다움을 함께 누릴 수 있는 날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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