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새롭게 만나는 청년
“김지현 씨 맞으시죠?”
배송 기사의 질문에 얼굴이 굳었다. 누구는 세상에서 제일 반가운 게 택배라던데. 잊을만하면 오는 우편물이 부담스러웠다. 출근길 생방송 라디오 진행자로 살아가기를 5년 차. 전국에서 내 목소리를 듣는 사람들의 감사한 마음이 서울특별시 중구로 배달되었다. 첫 수확한 햇밤과 햇감자. 대추와 배. 수박과 딸기. 캘리그래피 작품과 그림. 물론, 감동이었다. 다만, 곤란함과 불편함이 앞섰다. 프로그램 1주년 때 이벤트를 준비하는 나에게 뭐 특별한 날이라고 힐난을 한 S 때문이 아니었다. 선물이 오면 하나, 하나 먼저 확인하는 B 때문도 아니었다. 연예인이라며 너스레를 떠는 D 때문도 아니었다. 받으면 돌려줘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었다. 받은 것을 둘 공간이 없는 좁은 반지하 방에서 비롯된 열등감 때문이었다. 나는 그저 출근을 해서 일을 했을 뿐이었다. 마이크가 켜지고, 꺼질 때의 간극이 너무 컸다. 나에게 과분한 음식과 물건들이었다. 지각하지 않는 것 외에 더 해 줄 것이 없었다. 때문에, 수신 확인을 하자마자 회사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받은 것을 나누었다. 마음까지 착하다는 칭찬이 겸언쩍었다. 전파를 통해 말을 하는 기간이 늘수록, 나는 미니멀리스트가 되었다.
그녀와의 결혼 준비도 간소하길 바랐다. 팬데믹 중의 준비인 것이 오히려 좋았다. 할 건 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강권을 막을 좋은 명분이었다. 그럼에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예복과 예물. 평생에 한 번인 결혼의 정표라고 하기에는 너무 비싼 물건들이었다. 직업 특성상 내 몸에 딱 맞는 정장 한 벌은 필요했다. 큰마음을 먹고 턱시도는 구매하기로 했다. (결혼식 후 5년이 지난 지금도 애용하는 옷이다. 몸매 관리에 아주 좋은 명분이 된다!) 몇 백만 원에서 천만 원은 우습게 넘겨버리는 시계의 가격에 놀랐다. 건강을 확인해 주는 스마트워치면 충분했다. 출근할 때마다 건강 시계로 심호흡을 하다가도, 예물 시계만 떠올리면 숨이 불안정해졌다. 결국, 장인어른과 장모님에게 마음만 받겠다는 말씀을 드렸다. 거절은 또 다른 제안을 낳는다. 다가올 봄에 필요한 겉옷. 시계 대신 좋은 코트 한 벌을 장만하는 건 어떻겠냐고 물으셨다. 가격을 확인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0이 더 찍혀 있었다. 일상에 이 코트를 몇 번이나 입을까. 내가 옷을 입는 게 아니라, 옷이 나를 입고 다니는 느낌이지 않을까. 이런 제품은 할인이 없을까. 지금 입고 다니는 할인 행사 때 구매한 감색 코트도 바람을 막기 충분한데. 역시 불필요했다. 무언가를 받는 것도, 지니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어도 괜찮았다. 아니, 습관이어서 다행이었다. 아내에게 거절 의사를 밝혔다. 뭐라도 주려는 부모님. 어떤 물건이든 괜찮다는 예비 남편. 둘 사이에서 얼마나 어려움이 컸을까. 아내가 눈물을 섞어 외치는 말이 수화기를 통해 들렸다.
“그냥 좀 받아주면 안 돼?”
오롯이 받는다는 걸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 돌이켜보면,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나를 있는 그대로 품어주셨다. 처부모님과의 첫 만남 전에 아내가 조언했다. 아버님이 결혼 계획을 물어볼 수도 있다고. 빈손으로 갈 수 없었다. 현재 가지고 있는 예산과 신혼집으로 적당한 지역. 매물과 청약 일정을 보고서로 만들었다. 초라했다. 아나운서로 8년을 살아가면서 모은 돈은 서울의 빌라 한 호수도 전세로 들어가기 어려운 금액이었다. 무슨 배짱인지 모를 마지막 문구로 문서를 마무리했다.
7년 아침 방송을
한 번도 지각하지 않을 정도로
책임감이 있습니다.
스무 살 때부터
생활비의 대부분을 책임질 정도로
경제관념이 있습니다.
집을 구하는 것은 물론,
앞으로 함께 가는 길의
모든 준비와 과정에
성실하게 임하겠습니다.
A4 용지 두 장을 검토하고 나를 바라보는 두 분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괜찮다는 토닥임. 잘 왔다는 환대. 잘 부탁한다는 당부. 눈물이 쏟아졌다. 나에게 딱 맞는 배우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신이 이끄는 만큼 열심히 살지 않았다. 부족한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사람이 찾아왔다. 기도의 응답을 받은 기분이었다. 나를 받아주는 아내의 부모님을 닮아가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듬해 3월. 새순이 돋아도 여전히 쌀쌀했다. 주말에 다린 셔츠를 입었다. 추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손은 옷장에 있는 트렌치코트로 향한다. 좋은 것이라면 뭐라도 하나 더 주고 싶은 장모님의 마음. 어머님처럼 어떤 것이든 수용하겠다는 마음을 입는다. 새벽공기가 상쾌하다. 구군복을 입고 전장에 나가는 장수의 마음으로 코트를 여민다. 지하철의 문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