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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해피 엔딩이 아닙니다

에필로그

by 봄아범


기쁨에 기쁨이 더해진 날이었다. 봄(태명)이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푸름 카페를 운영하는 날.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반 이름인 ‘늘푸름’을 딴 매장이었다. 이제는 자신들이 형님, 누님이라며 주문을 받고 음료를 내오는 풍경. 생각만 해도 흐뭇한 미소가 나왔다. 뿌듯한 미소를 얹을만한 일이 또 있었다. 생애 처음으로 찍는 단독 프로필 사진. 직장에서 뉴스 앵커로 복귀하는 기념이었다. 아나운서로 살고 싶은 마음이 통한 기분이었다. 웃음 나는 일이 넉넉한 시간차로 있으면 좋으련만. 강남의 직장 어린이집 카페 운영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10시 40분까지. 청담에서 촬영 전 헤어, 메이크업 시간은 오전 11시 30분. 부지런하게 행동하면 둘 다 해낼 수 있었다. 해내야만 했다. 이 세상 모든 부모가 같은 마음 아닐까. 아버지라면. 어머니라면. 무리한 일정도 당연하다고 여기고 온몸으로 마주한다. 일과 가족. 그 어느 것 하나 포기하지 못한 채.




포기하지 않길 잘했다. 이대로라면 아이도 보고,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이른 10시에 회사에서 나왔다. 항상 막히던 남산 터널의 흐름이 원활했다. 이대로라면 강남에 10시 40분 전으로 도착할 수 있었다. 다만, 절차를 하나 밟아야만 했다. 아내의 직장 어린이집인터라, 배우자는 사전 등록을 하거나 동행인이 있어야 했다. 회사의 일로 바쁠 아내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고맙게도, 외부인 출입 확인 사이트에 접속한 기록이 남아있었다. 개인정보를 채우는 과정 중에 멈췄다. 아내의 직장 내 팀명을 기입하는 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내에 대해 다 알고 있다고 자부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결국, 어린이집에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이 건물 지하 1층으로 나와 주신다고 했다. 폐를 끼치는 것 같았다.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솔직하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자신이 3층으로 내려오겠다고 한다. 지하 1층에서 만나더라도, 출입카드를 부여받고 3층의 출입 통제 시스템을 통과해서 올라가야만 했다. 미안하고 부담스러워졌다. 잠시 얼굴만 보고 가려는 욕심이 몇 사람을 고생시키는 것인가. 더 서둘러야 했다. 마침, 버스가 강남역에 도착했다. 10시 35분. 5분 후에 카페의 문이 닫힌다. 도보로 6분 거리. 눈앞에 잡히는 전동 킥보드의 잠금을 풀었다. 1분 만에 도착해서 주차를 했다. 반납이 가능한 장소가 아니었다. 다른 곳으로 갈 시간이 없었다. 킥보드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한 번에 3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연결이 지연되었다. 통화 연결 중에 다른 전화가 걸려왔다. 아내였다. 쓸데없는 과금을 하고 싶지 않았다. 조금만 기다리라는 마음으로 그녀의 발신을 넘겨버렸다. 30초의 대기가 3분처럼 느껴졌다. 전화를 끊었다. 바로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 담당 선생님이 기다리신다는 말이 들렸다. 지하 1층으로 가야 했다.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거슬러 내려갔다. 다시 아내다. 3층에 거의 다 왔다고 한다. 다시 올라갔다. 휴대전화에 문자가 하나 수신되었다.


[Web발신] 체크승인
김*현 님
9,260원 일시불
전동 킥보드


계단 승강기를 작동시키는 팽팽한 컨베이어 벨트와 다르게, 머리 안의 무언가가 툭 끊어졌다.




활화산 같은 감정이 나간 후에야 고개를 숙였다. 봄의 아빠를 기다리느라 카페 운영 시간을 늘린 어린이집 원장님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렸다. 애먼 지하 1층에서 10분 이상 기다린 선생님에게도 사죄드렸다. 고객센터 상담원에게도 송구함을 표했다. 일 분 이용하고 만 원 가까이 과금이 되는 게 말이나 되냐고 악다구니를 질렀다. 시종일관 굳어있는 남편을 풀어주려고 했던 아내에게 사과했다. 표정 관리가 안 되는 아빠를 웃게 하려고 빵과 음료를 건네던 봄에게 진심으로 사죄했다. 무엇보다, 자신을 힘들게 만들고 화를 폭발하는 실수의 도돌이표 위에 있는 나에게 미안했다. 상담을 종료하며 환한 웃음으로 센터장님의 응원을 받은 지 일주일 하고 하루가 지난 오전. 나는 다시 강남역 한복판에서 불같이 화를 냈다. 어떻게 하면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고, 성난 황소처럼 날뛰는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까.


이날의 사진은 내 뒷모습만 담겼다. 굳어있는 나를 차마 찍지 못한 아내의 마음. 그럼에도, 시종일관 기뻐하는 봄의 서빙. 제대로 누리지 못한 것이 아직도 미안하다.


“뭘 하든 중간까지 해, 끝까지 해?”

“끝까지!”

“그걸 뭐라고 해?”

끈기!


퍼즐을 하는 도중 봄에게 가르쳐 준 것을 내 마음에게 전한다. 조각이 안 맞춰진다고 짜증을 낼 일이 아니다. 차분하게 그림과 모양을 하나씩 맞추면 되는 거다. 일이 겹친다고 당황할 일은 없었다. 하나씩 처리하고, 안 되면 덜어내면 그만이다. 무엇보다 평소에 되뇐 말을 기억하면 되었다. 그게 화낼 일인가. 상담센터를 나섰다고 부처가 된 것은 아니었다. 최선을 다해 치유에 임했던 마음을 유지해야 했다. 중간까지가 아니라 끝까지. 언젠가 생이 다하는 순간, 노력했던 나를 칭찬할 미래를 그린다. 자신을 토닥이는 마음으로 봄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을 함께 맞춘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1,000 조각의 퍼즐을 완성하는 꿈을 이루었다. 결혼 후 버킷리스트 하나를 이룬 날.


30회 연재로
'돌아와요, 가출아빠'를 발간합니다.


여전히, 가족과의 삶에서 조각을 맞추는 중입니다. 퍼즐을 하나씩 이루어 가듯이 기록도 이어질 예정입니다. 바로 다음 주 수요일 오전 7시에 프롤로그부터 연재하는 두번째 책에도 함께 해주세요. 여러분의 가족이라는 퍼즐도 행복하게 완성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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