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고 좋음에 대한 명확한 취향을 가진 주제에, 남의 말에 휘둘리기 딱 좋은 일명 '종이비누 귀'를 가진 나는, 태어나서 내가 본 사람 중에 불어를 가장 잘하는 한국 사람이었던 C 누나가 내게 던진 한 마디에 귀가 또 쫑긋한 일이 있었다. 나 정도 실력이면 통번역 대학원에 '무난하게' 합격할 것이라는 그 말에 내가 먼저 한 일은 통번역 대학원 준비반 등록이었다.
통번역 대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구체적으로 뭘 준비해야 할 지는 전문학원에서 '친절하게' 알려줄 거란 기대감과 함께, 9월 첫 수업일에 맞춰 강의실에 들어갔다. 강의실을 가득 메운 수강생들은 잔뜩 긴장해 보였고, 상황에 대한 심각성을 미처 깨닫지 못한 나는 (아니나 다를까) 강의실 맨 뒷열 빈자리에 착석했다.
잠시 후, 카세트 플레이어를 들고 묵직한 인상의 선생님이 들어왔고, 첫인사고 뭐고 다 생략한 채 재생 버튼을 냅다 눌렀다. 곧 강의실을 가득 메운 라디오 영어 뉴스. 아니, 뉴스인 것도 알겠고, 영어로 말하는 것도 알겠는데, 단어 하나 귀에 꽂히지 않아 도통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어 어벙벙한 상태였다.
뉴스는 끝이 났고, 대체 어쩌라는 건지 상황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후, 선생님은 맨 앞 자리에 있던 어느 학생의 이름을 불렀고, 그 학생은 딱 한 번 들려준 뉴스의 내용을 또박또박 우리말로 말했다. 충격이었다! 이게 C 누나로부터 들었던 통번역 대학원 수업 방식인가보다 싶었다.
그 학생에 대해 선생님은 칭찬도 비난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어느 정도 수준을 갖춘 답변이라 판단했을 것이라 짐작했다. 그리고 뉴스 몇 개를 더 그런 식으로 들려줬고, 다른 학생 몇 명도 마찬가지로 TV 뉴스 앵커의 말투처럼 또박또박 그 내용을 말했다.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내가 한 일은 학원 접수처로 달려간 것이었고, 당장 수강료 환불을 신청했다.
종이비누 귀를 팔랑거리며 학원에 등록만 해도, 나 정도 영어실력만 되어도 금세 갈 수 있을줄 알았던 통번역 대학원을 포기하는 데엔 딱 그만큼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당시 취업에 대한 갈망은 컸으나, 특정 분야를 정해서 깊게 파기 보다는 막연하게 '미디어'니 '엔터테인먼트'니 상위 카테고리에서 멈췄던 나의 준비성은 이후에도 M 방송국, K 신문사에도 지원서를 내는 패기에만 그쳤다. 어느 곳 하나 치열하게 준비하지 않는 내게 그들이 취업의 문을 활짝 열어줄 리 없었다.
아직도 '영화 일'에 대해서는 의문이었다. 영화 일이란 게 뭔데? 무슨 일을 해야 '영화업계 종사자'가 되는 것인지, 그렇게 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졌지만, 영화를 보는 일을 벗어나 내가 그 산업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여전히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안정적인 직장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다 나의 레이다망에 포착된 것은 S 방송국에서 운영하는 방송 아카데미였다. PD, 아나운서, 기술 부문 등 방송과 관련된 다양한 직군의 이론과 실무를 배우는 6개월 코스였다. 단서는 있었다. 그 과정을 이수한다고 해서 S 방송국에 즉각 취업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PD는 동경하던 직업 중 하나이긴 했지만, 내 기준에 안정적이지 않아 보였다. 내 기준의 안정성이란 정기적인 출퇴근이 우선이었는데, 모르긴 몰라도 PD라는 직업은 왠지 밤새는 일도 많을 것 같았고, 아무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단정지었다.
아나운서는 더더욱 아니었다. 아무리 실력을 갖췄다고 하더라도 거울에 비친 내 외모가 아나운서가 될 외모는 아니었다고 판단했기에 패쓰. 기술 분야도 마찬가지. 태생이 문과인 내가 기술 분야를 어떻게 감당한담. 기계와 관련된 직종이라면 이과여야 되는 것 아닌가. 이렇게 분야마다 패쓰를 외치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외화 더빙 PD와 번역' 과정이었다.
이거다! TV에서 우리말로 더빙한 외화보는 일이 커다란 즐거움 중 하나였으니, 정확히 어떻게 하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와 관련된 일이었으니 뭔가 막연한 동경에 한걸음 가까워진 듯 보였다.
아카데미의 위치는 일산 탄현이었고, 당시 분당에서 살던 때라 경기 남부에서 경기 북부로 기나긴 여행을 해야했지만, 수업은 일주일에 한 번이었기에 큰 부담은 없었다. 그렇게 취업을 위한 중간 관문에 접어들었다.
준비되지 않은 자의 어설픔이란, 돌이켜 보면 후회투성이다. 좀더 철저한 준비와 다짐을 갖췄다면 이리저리 휘둘리는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을까. 물론 후회하지 않는 인생은 없다지만, 이럴 때 철두철미한 야심가가 등장하는 영화를 보면 대리만족을 얻기도 한다. 그 야심이 반드시 바람직한 결말로 이어질 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뒤따르지만. <일렉션 Election(1999)>을 보면, 야심가 트레이시보다는 그런 야심이 못마땅한 교사 짐 맥칼리스터 쪽으로 감정이입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