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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대리 Jul 24. 2023

S#2-3. 사회생활의 쓴맛이라 쓰고 뒤통수라 읽는다

illustrated by 조대리

방송 아카데미 과정은 나름대로 흥미로웠다. 우리말 자막과 더빙 번역의 다른 점도 익히고, 중반 이후 아침 정보 프로그램을 본뜬 아카데미 내에서만 통용되는 마이크로 방송도 재미있었다. 영어와 일본어로 나뉜 번역 및 더빙 연출 과정도 마이크로 방송에서 한 꼭지씩을 할당받아, 3분 정도 영상물을 편집해 아나운서 과정 학생을 섭외해 내레이션도 녹음하고, 기술반 학생과 함께 자막을 넣는 종편 작업까지 완료한 후 실제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마이크로 방송에 출연까지 했다.


다만 일본어 과정 학생은 십 수명 이상이라 편집과 방송출연까지 조를 짜서 한 명당 1~2번 참여를 하면 되었지만, 영어 과정은 나까지 4명뿐이라 한 사람당 적어도 2~3번은 차례가 돌아오는 나름 강행군이었다.


어차피 대외적 공개용도 아니었고, 영상물에 대한 저작권을 침해하는 우려도 없었기에, 소재 선택은 자유로웠다. 나는 영화 <데미지 Damage(1992)>를 TV 영화정보 프로그램 스타일로 편집하거나, 머라이어 캐리 Mariah Carey의 미니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문제는 졸업작품 때도 발생했다. 인원이 많은 일본어 과정은 역시 여러 명이 조별로 작업했지만, 영어 과정은 각자 영화 1편을 선택해 더빙용 번역부터 아나운서 과정 학생을 중심으로 성우를 섭외하고, 더빙 연출까지 맡아야 했다.


선택할 수 있는 영화는 S 방송에서 방영했던 외화 가운데에서 해야 했고, 내 선택은 에디 머피 Eddie Murphy 주연의 코미디 <너티 프로페서 The Nutty Professor(1996)>였다. 대사량도 많고, 난이도 높은 목소리 연기가 필요한 영화였지만, 꽤 재미있게 작업했다.


4명 중에 1등에 해당하는 최우수상을 내가 받게 되었는데, 그 상을 받았다고 해서 역시나 취업하는 데 어떠한 형태로든 이득이 되는 일은 없었다. 하긴 이력서에 따로 적지도 않았으니까.



그보다 수업이 한창 진행 중이던 때에, 자세한 사정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담당 교수님에게 무언가 학생들의 뜻을 전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영어 과정 학생 4명 중에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나보다 5~7년 연배가 높은 여자분들이었기에 학기 초 반장 선출 때 내가 지목당했음은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교수님에게 항의성이 다분한 의견 개진의 순간이 오자, 발언은 모두 나의 몫이 되었다.


뭔가 나의 발언을 듣고 난 교수님이 다른 3명에게 이 의견에 모두 동의하느냐고 물었다. 분명 그전에 약간의 협의를 거친 사안이라 내 맘대로 내 입이 열리는 대로 내뱉은 말이 아니었기에,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생각한 순간, 내 생각이 100% 틀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마디로 뒤통수를 맞은 셈.


나머지 3명은 방금 그 의견은 오직 나만 생각한 것이라며 자신들은 다르게 생각한다고 말하는 순간, 내 얼굴은 검붉게 타오르는 듯했고, 당장이라도 그 순간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다시는 탄현에 발도 붙이기 싫어졌었다!



어떤 문제였는지 까맣게 잊은 터라, 그 이후 교수님의 조치도 잊었지만, 그날 수업이 끝난 후 나는 격하게 토라져서 이 3명과는 다시는 상종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하고 머나먼 분당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그중 가장 연장자였던 P 씨가 대표로 내게 말했다. 나는 앞으로 번역에는 뜻이 없고, 더빙 연출이든 다른 길로 빠질 테니 별 영향이 없겠지만, 자신들은 번역을 계속할 생각이라 교수님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방향을 택했다고.


그전에 내가 거쳤던 초중고대학 과정을 포함해 미군들이 득실대던 군대 시절에도 나는 뭔가 의견 개진에 적극적인 타입이 아니었는데, 6개월짜리 방송 아카데미 과정에서 4명 중에 반장을 맡아 잠시 감투병에 걸렸었던 건지, 아니면 이 정도 의견은 충분히 말해도 좋다는 확신이 들어서였는지, 아무튼 내면에 어떤 확신으로 행했던 일이 결코 진리가 될 수 없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사람이 사람을 믿는다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 그때 그런 생각을 했다. 세기말이었던 1999년 12월 말 모든 과정이 끝났고, 그때 그 사건이 영향을 끼친 건지 내가 만든 결과물이 진짜 가장 훌륭해서였는지 모르지만, 나는 손바닥만 한 유리 상패 하나를 받고 탄현과의 작별을 고했다.


다행스럽게도 과정이 거의 끝날 때즈음, 태어나 처음 다니게 된 내 인생 첫 번째 회사에 취업도 결정되었다.


그리고, 그때 그 과정에서 함께 공부했던 3명과는 이후 단 한 번도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



사회생활의 쓴맛이라고 표현하기는 했지만, 그때 이후 겪었던 많은 일들에 비하면 당시 뒤통수는 이른바 '새발의 피'에 해당할 정도로 사소한 일이었다. 그럴 때엔 <유주얼 서스펙트 The Usual Suspects(1995)>에서 '카이저 소제'에게 크게 뒤통수를 맞고 머그잔을 떨어뜨리던 데이브 쿠잔 형사가 맞았던 뒤통수를 상기해 보자. 나름대로 대리 위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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