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대는 피할 수 없는 의무였고, 골디 혼 Goldie Hawn 주연작 <벤자민 일등병 Private Benjamin(1980>이나 KBS 코미디 프로그램 <유머 1번지>의 인기 코너 "동작 그만"은 뭔가 현실에 기반했겠지만 현실과는 동떨어진 픽션일 뿐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아무 근거 없는 두려움이었지만, 군대에 가면 인생이 망해버릴 것만 같았던 나는 방법을 강구했다. 그러다 어른들은 '카츄사'로 부르는 게 더 익숙한 '카투사 KATUSA'가 내 레이다망에 포착되었고, 어떻게든 카투사로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겠다 다짐했다.
시스템이 싹 바뀌기 직전, 국사와 윤리 시험을 치러야 했던 그해, 하필 신검에서 현역 4급을 받아 지원을 해도 되는지 안되는지 주변의 의견이 하도 분분하여 국방부에 직접 문의하기로 했다. 그랬더니 '현역이지만 4급'이라 지원자격이 되지 않는다는 비보를 전해 들었다.
인생은 다시 암흑기에 접어들었고, 1년이 지나 카투사 지원 시험이 토익 점수로 바뀌었다는 소식을 듣고, 일단 토익을 치른 후 다시 국방부에 문의했다. 그랬더니 '4급이지만 현역'이라 지원자격이 충족된다는 기쁜 소식이 내 귀에 전해졌고, 곧장 지원서류를 접수시켰다.
한 차례 면접을 치른 후 최종합격한 나는 어느 해 3월 3일, 논산훈련소에 들어가면서 26개월의 복무를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신병훈련 6주는 사회와 완전히 격리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당장 입대일 방영을 시작한 MBC 미니시리즈 <별은 내 가슴에(1997)>를 보지 못하는 것이 가장 아쉬웠고, 곧 있을 아카데미 시상식 결과도 궁금했고, 매주 수요일 저녁 방송되던 KBS 2TV <가요톱텐>의 순위 변화도 궁금했다.
신병훈련소에서 일주일 동안은 면도기를 지급하지 않아 수염이 덥수룩하게 날 정도로 자연인처럼 지내며 딱히 특별한 훈련은 없이, 하지만 눈을 부라리고 지켜보는 교관들 틈에서 이 눈치 저 눈치 보면서 지내다가 2주 차에 정식 훈련이 시작되었다.
한 기수에 200명을 네 분대로 나누었는데, 군대 안에서는 실제 나이보다 계급이 우선인지라, 나이는 나보다 어렸을 수도 있지만 어딘가 늙수구레해 보이는 병장 하나가 내무반에 들어서더니 대뜸 내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왔다. 무슨 영문인지, 아무 짓도 안 했지만 큰 잘못을 지은 양 주눅이 잔뜩 들어있는 내게 종이 한 장을 들이대더라. 보니, 일주일 대기 기간 중 썼던 자기소개서였는데, 딱히 할 일도 없고 시간이 촉박하지도 않아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썼더니, 필체가 꽤 괜찮았나 보다. 이 글씨를 내가 쓴 게 맞냐고 물었고, 나는 그날부터 내가 속한 4분대의 서무병이 되었다.
마침 중고등학교 동창인 D가 나와 같은 날 입대를 해 3분대인가 2분대의 서무병이 되었길래, 더욱 푸근한 마음을 가지고 서무병의 임무(?)에 열심을 다했다. 그 임무란, 훈련병들에게 거의 매일 배달되는 수십 수백 통의 편지를 서무병 4명이 둘러앉아 각자 속한 분대별로 분류하고, 나눠주는 일이라던가, 얼마간에 한 번씩 지급되는 간식을 나눠준다던가 하는 허드렛일들이었다.
하지만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커다란 즐거움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국방일보였다. 대부분 군 관련 소식들을 다루는 일간지였는데, 그중에서도 비중은 극히 적지만 문화 예술 관련한 소식들도 반가웠지만, 무엇보다 <가요톱텐> 순위가 실렸다! 그즈음 <가요톱텐> 상위권에 어떤 가수의 어떤 노래가 올랐는지 일주일에 한 번 실리는 그 순위는 삭막한 훈련소에 비치는 한줄기 빛이었다.
그러다 몇 주차쯤 되었을 때, 마치 고등학교 때 학생부 선생님들과 안면을 터서 안전망을 확보했던 전력과 같이, 서무병이었어서 교관들이 있는 방(이름이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을 자주 들락거리다 보니, 훈련 시간에는 버럭 소리 지르고 무섭기만 한 교관들의 일과 후 모습들을 보며 친근함을 느끼기도 했으니 참 얄궂기도 하다.
이름은 잊었지만, 돌아가신 코미디언 서영춘 선생을 닮은 듯했던 교관 한 명이 유난히 내게 장난도 걸며 친근하게 굴기도 했지만,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라는 호의를 베풀길래, 당시 세상에서 가장 궁금했던 한 가지를 물어보았다.
이미 친구가 보내준 편지를 통해 <별은 내 가슴에>를 통해 안재욱 배우가 전국구 스타가 되었다는 소식은 들었고, 아카데미 작품상은 <잉글리쉬 페이션트 The English Patient(1996)>가 받은 걸 알고 있었다. 내가 궁금했던 건 따로 있었다.
"요즘 가요톱텐 상위권에 있는 엄정화의 신곡 '배반의 장미'는 좋습니까?"
뜨악!!! 당시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게, 그 한 번의 질문의 기회를 써버릴 정도로 매우 매우 궁금했던 게 바로 '배반의 장미'가 어땠는지였다니! 그걸 입 밖으로 꺼냈다니, 지금 생각해도 믿을 수 없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그다음에 벌어졌다. 서영춘 선생을 닮은 그 교관이 며칠 뒤 <가요톱텐> 본방송을 하는 날, 나를 교관들 방 한쪽 구석에 있는 TV를 통해 엄정화의 '배반의 장미' 무대를 볼 수 있게 해 준 것이다! 다시 생각해도, 그때 기준으로는 내 인생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이었다. 나는 소원풀이를 한셈이었고, 더는 원하는 것이 없어도 된다 싶을 정도로 너무나 행복한 순간이었다.
가수로 무대에 섰을 때만큼이나 배우로서 스크린을 꽉 채우는 엄정화의 에너지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