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대리 Oct 09. 2023

세종대왕도 울고 가실 요즘

얼마 전 종영한 한 드라마의 한 장면.


이별을 앞둔 두 사람이 바닷가에 서서 이별의 아픔을 나누고 있던 중, 여자가 남자에게 말했다.


"중꺽마!"

그리고 마치 '나 잡아봐라~' 식으로 뒤돌아 달려가는 여자. 그런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남자의 슬픈 눈.


과연 남자의 그 눈빛은 헤어지기 싫은 마음이 가득한 아쉬움이었을까, 아니면 여자가 내뱉은 '중꺽마'가 어이없어서 공허해진 것이었을까.


같은 드라마에서 다른 여자 캐릭터가 온갖 악행을 저지르다 잘못을 뉘우치며 말한다.


"현타 오더라."



왜 이러는 걸까. 한창 유행하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이나 참가자들이 누군가의 무대를 보고 입버릇처럼 "찢었다"라고 말한다. 대체 뭘 찢었다는 건가. 무대를 찢었다? 기깔난다고 하면 비속어 같고 싸보여서 방송에서는 쓰면 안 되는 말일 텐데, '찢었다'는 용인되는 근거는 무엇일까.


유행이 지난 말 중에 '~~ 깡패'라는 표현도 이상하다. 어깨가 넓으면 '어깨깡패', 음색이 좋으면 '음색깡패', 실물이 잘 생기거나 예쁘면 '실물깡패', 어떤 분야에도 갖다 끼울 수 있는 만능 표현처럼 한참 동안 남발되었으니, 나는 어떤 쪽에 '깡패'일까를 생각해 본 적도 있다.



나는 국어학자도 아니고, 평생 바른 우리말만 구사하지 않았을지언정, 브런치스토리에 신변잡기 글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저런 해괴망측한 표현들은 가급적 피하려 애쓰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 제목이 긴 경우, 단어의 앞글자만 따서 줄이는 것은 차라리 양반이다. 제목이 짧으면 짧은 대로 또 줄여 쓰는 것도 귀엽게 봐줄 수는 있겠다. 예를 들어, 드라마 <별에서 그대>를 '별 그대'로 줄인다던가, <비밀의 숲>을 '비숲'으로 줄여 부르는 건 '국룰'이니까. 말난김에 이 놈의 '국룰'이라는 말도 해괴망측하다.


특히 TV를 보다 보면 이런 이상한 표현들 때문에 여간 피곤한 것이 아니다.


한글날이라고 KBS를 '한국방송'으로, MBC를 '문화방송'으로, Google을 '구글'로, NAVER를 '네이버'로 잠시 잠깐 바꿔 쓴다고 능사가 아니다.


온갖 기업과 브랜드에서 벌이는 각종 이벤트 문구부터, 채널만 돌리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온갖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에서부터 무슨 깡패니 무슨 국룰이니 찢었네마네 이러지 말고, 최대한 뜻 전달에 성의를 가진 올바른 표현을 쓴다면, 내년 한글날에는 세종대왕이 울고 가실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작은 실천이 생각지도 못한 커다란 성과로 이어질지, 누가 알겠는가?




작가의 이전글 내가 기억하는 죽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