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은 남의 일이라 여겼던 대기업 퇴직자가 퇴직 후 맞은 다섯 번째 가을
시작은 이러했다.
1982년 버스 차장의 이야기로 시작해, 후반부에 1989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무리하게 끌어댔던 JTBC 토일 드라마 <백번의 추억> 후속으로, 류승룡 배우 주연의 새 드라마가 시작된다길래 일단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 1회는 보겠다는 심산으로 TV 앞에 앉았... 다가 누웠다.
제목은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였고, 정보를 찾아보니 2021년에 발간된 베스트셀러 소설이 원작이고, 대기업에서 근무했던 부동산과 재테크 전문가 송희구 작가가 네이버 블로그에 연재했던 글을 책으로 발간하고, 웹툰으로도 연재된 후 드라마화 되었단다.
첫 회를 보는데, 아무리 봐도 드라마 속 김 부장이 낯설지가 않다. 내가 CJ ENM이라는 이른바 대기업으로 분류되는 회사에서 십수 년을 보고 듣고 겪었던 불특정 소수가 떠오르기도 했고, 또 그 조직 안에서 '부장'이라는 직급까지 꾸역꾸역 올라갔으나 그 이상의 지점까지는 발을 디디지 못하고 40대 중후반이라는 '한창' 나이에 도태된 나 자신이 비치기도 했다.
갓 서른이 될 즈음, 5년 남짓의 경력을 안고 입사한 후, 꽤 많은 '선배'들이 소리소문도 없이, 혹은 요란법석을 떨며 이직을 하고, 퇴사를 하는 광경을 목도하면서도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라며 안도하던 내 과거가 스쳤고, 나는 '김 부장'이라는 구태의연한 꼰대 캐릭터가 아니라는 착각 속에 시간을 보내며, 회사가 원하는 인물이 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고, 또 어느 때엔가는 인정을 받았지만, 어느 순간 "저거 치워!"의 대상자로 전락해 버린 오욕의 순간을 맞이하는 등, 파란만장한 시간들이 머릿속에 촤라락 펼쳐진다.
시작은 그러했다.
미리미리 계획을 세우며 살아온 인생이 아니었기에, 갑작스럽게 내게 닥친 퇴직의 순간은 아찔했다. 하지만 또, 타고난 낙천주의자이거나, '어떻게든 되겠지' 주의자이거나, 막연히 믿는 구석이 어딘가 잠자고 있거나, 아무튼 COVID-19 팬데믹과 함께 꼬박꼬박 내 통장을 찾아오던 월급이 사라진 직후에도, 당장 손에 쥐게 된 퇴직금을 목돈이랍시고 안도하며, 마스크를 주섬주섬 챙겨 스타벅스에 맥북을 들고 집을 나섰다. 해리 포터 시리즈를 집 앞 카페에서 집필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지는 J.K. 롤링의 한국 중년남자 버전으로 나 자신을 업그레이드하겠다는 장대한 포부로 가슴마저 웅장해졌다.
경력 20년의 90% 이상을 차지한 '영화 일'이 내가 가진 밑천의 거의 전부였다. 물론 세부적으로 파헤쳐보면, 대학 졸업 후 카투사로 입대하고, 제대 후 뛰어든 취업 전선도 그렇게 매섭게 느끼지 못했던 나의 안일함이 문제라면 문제였고, 영어 자막과 더빙 번역을 배우겠다고 6개월에 200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분당에서 탄현까지 다니며 수업을 들었고, 그 과정을 마칠 즈음, 영어 번역 과정 수강생 네 명 중 유일한 남자라는 이점, 그리고 남자이기 때문에 번역가로 평생 벌어먹지는 않을 작정이며, 어딘가 '회사'라는 곳에 들어가 둥지를 틀 것이라는 막연한 계획 덕분에, 더빙 프로덕션에서 사회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반년 남짓 그 회사에서 일하며, 당시 생성한 온라인 아이디는 온통 '조피디'였다. 2000년대 초반 가수 조PD가 꽤 인기를 얻었었고, 내 성씨가 조 씨인 데다 하는 일도 여하튼 그랬으니, 내 아이디로 '조피디'는 딱이었다. 그러다 7개월 뒤에 여차저차하여 영화 쪽으로 이직하게 됐고, 여차저차하여 영화제에 살짝 발을 담근 이후, 여차저차하여 2000년대 중반 당시 한국 영화산업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꿈의 직장의 일원이 되었다.
꿈같은 시간 들이었다, 돌이켜보면. 40대 중반에 다 다랄 때까지, 그저 영화가 좋아서 열심히 맡은 일을 다했고, 그러다 입지가 좁아지자 테마파크를 기획하고 운영할 새로운 사업을 하게 될 계열사로 옮겨갈 때까지만 해도, 이거 영화 사업 쪽보다 정년퇴직 이후의 삶이 보장될 수도 있겠다는 헛꿈까지도 왠지 현실이 될 것만 같았다.
그러다 이런저런 사건사고가 터지고, 결국 임직원 할인도 인센티브도, 무엇보다 달마다 내 통장을 배부르게 했던 월급도 사라진 채, 나는 '백수'가 되었다. 아무런 구체적인 계획도 없었다. 스타벅스에 맥북을 들고나가, 내가 평생 좋아했고, 내가 직업으로 삼았던 '영화'와 관련된 일 중, '시나리오'를 쓰고 작가로 데뷔할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만이 가득했다. 어차피 밑천도 없는데, 갑자기 연기를 하겠다거나, 감독이 되겠다고 나서는 것보다는, 훨씬 실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아무튼 시작은 이러하다.
요즘 하루에도 열두 번도 넘게 들락거리는 소셜미디어 '스레드'를 보다가, <서울 자가에... 김 부장 이야기> 드라마를 본 사람들이 "내가 직장에서 겪은 진상에 대해 나도 한 번 써봐야겠다", "내 주변에 저것보다 더 심한 경우도 있다, 나도 써봐야지" 등등의 글을 보며, 내 무의식 속에 흐르던 생각을 저 사람들이 들여다본 게 아닌가 싶어 화들짝 놀랬더랬다.
브런치 작가에 여러 번 도전했다가 합격 소식을 들었던 언젠가, '아! 나도 이제 브런치 작가다!' 기쁨에 가득 차 '영화 일'을 하면서 겪었던 이런저런 일들을 글로 옮겼다. 금세 뭐라도 될 것 같았다. 브런치북 공모전에 야심 차게 도전했다가 치열한 경쟁을 뚫지 못했다. 두 번이나. 2025년 공모전은 진작에 포기했다. 내게 포기란, 여러 사람들과 식사를 하다가 어느 음식이건 마지막 한 조각이 남았을 때, 기꺼이 나 아닌 다른 사람 중 누구라도 먹도록 양보하는 것, 그것과 다르지 않다. 기꺼운 마음. 어차피 내가 갖지 못하더라도 누군가는 기쁨을 얻을 테니.
시나리오. 영화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 중에, 인연을 이어나가고 있는, 친분이 있는 소수의 몇몇에게 모니터링을 부탁했다. 두서너대엿명 정도. 처음 집필하기 시작해, 반년쯤 지났을 때 나온 초고를 본 친구 혹은 지인들의 첫 반응은 한결같았다. 시나리오 작법 수업을 따로 듣지 않았는데, 적어도 러닝타임 100분 분량의 장편 시나리오를 완성했다는 사실 자체는 훌륭하다며, 하나같이 귀를 즐겁게 하는 칭찬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시나리오 한 편이 장편 영화로 완성되기까지의 험난한 과정은 별개의 문제였고, 무엇보다 완전하지 않은 버전의 시나리오가 실현되기 위해 만나야 할 '단 한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아니, 그 사람을 만나나 마나, 시간을 흘러 흘러 어느덧 5년이 지났지만, 시나리오의 완전화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고치고 또 고치다, 지쳐 쓰러져 잠들었다가 다시 고치다 다시 지쳐서, 다시 방치한 상태.
야심 차게 시작한 브런치북 연재도 어느 순간 시들해졌다. 그리고 또 방치. 그러다 지난 주말 류승룡 배우의 신들린 연기를 보며, 저게 내가 아는 불특정 소수 누군가이든, 아니면 나 자신이든 간에, 그 이야기의 원천을 창조한, 나보다 8살이 어린 송희구 작가의 미친 필력과 천재적 재능이 부러워졌다. 그렇다고 내가 모차르트의 천재적인 재능을 시기했던 살리에리냐면, 그건 또 아니다. 적어도 살리에리는 궁정악장이라는 중책을 맡고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또 나 자신을 하염없이 깎아내리고 싶냐면, 그건 또 아니다. 무엇보다, 근거는 미약하지만 나 자신을 믿는다는 스스로의 자신감은 충만하니까.
아무튼 그래서, 다시 심기일전해 본다.
2025년의 어느 가을 저녁을 언젠가는 기쁜 마음으로 추억할 수 있기를 온몸으로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