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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각자 해야 할

by 조대리

서울 자가라던가, 미혼이니 자식이 명문대생도 아니지만, 대기업에서 부장까지 겪었던 지라, 아무래도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을 보며, 마음은 도 부장인데 자꾸 김 부장에게 이입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런 와중에, 마치 실제 대기업 인사팀장을 캐스팅한 듯한 ACT 인사팀장을 연기하는 이현균 배우의 연기에 그렇게 분노가 치밀더라.


별도로 인사팀이라는 조직이 없는 개인 회사 시절에는 이른바 직원들을 단속하는 '반장'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대개 대표이사의 신임을 받는지 마는지는 알 바 아니지만, 어슴푸레한 신뢰 관계로 엮인 듯한 중간 간부급이 그런 역할을 맡았었고, 어떤 회사 시절에는 그 반장 역할을 맡은 상무가 직원들의 근태를 학교 때 봤던 출석부 같은 노트에 빨간펜으로 일일이 체크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경악했었던 적도 있다.


대표이사부터 제시간에 출근을 안 하니, 직원들도 다 같이 지각을 밥먹듯이 하는 엉망진창인 회사 분위기 속에서, 반장 역할을 하던 상무는 훨씬 일찍 출근한 다음, 출석부에다 빨간펜으로 직원들의 출퇴근 시간을 일일이 적고, 수시로 대표이사에게 보고하는 식이었다.




그러다 대기업을 표방하는 큰 조직에 입사하고 보니, 인사팀이라는 조직이 있었고, 목줄에 걸고 다니는 사원증을 회사 출입문에 설치한 출퇴근 기록기에 갖다 대면 그 직원이 사무실을 드나드는 시간이 죄다 기록되었다. 이제 단 1분이라도 지각하는 일은 용납되지 않는다며 다짐을 했으나, 어라? 회사 분위기는 또 그게 아니었다. 지각을 밥 먹듯이 하는 분위기는 이전 회사와 매한가지였다.


조직의 규모를 막론하고 지각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저마다 구구절절 사연이 있었다. 전날 늦게 퇴근해서, 집이 멀어서, 출근길에 교통사고가 나는 바람에 차가 밀려서, 지하철이 연착되어서, 혹은 버스가 늦게 와서 등등. 이유는 다 거기서 거기인데, 엇비슷한 레퍼토리를 돌려 막기 하는 식.


인사팀에 속해서 일해본 적은 없지만, 인사팀의 업무가 비단 직원들의 출퇴근만 체크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었겠지. 새로운 직원을 채용하거나, 묵은 직원을 내보내는 일도 그들의 일이었을 것이다.




드라마 <김 부장 이야기>의 인사팀장 최재혁은 내가 실제 겪었던 인사팀장 여럿 가운데에서도 특정한 몇몇을 합쳐놓은 듯한, 드라마 속 가상의 캐릭터라고는 하나, 직원 입장에서 봤을 때 치밀하면서도 간악하고, 영리하면서도 간교한 악의 집합체로만 보인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봐도, 실제 비슷한 경험을 했던 전직 대기업 피고용인 입장에서 봐도, 최재혁은 분명 '빌런'이기는 한데, 더 무서운 현실은 최재혁 또한 그저 '최종 빌런'이라 할 수 있는, 먹이사슬의 최상단에 자리 잡고 있는 오너가 내세운 허수아비일 뿐이라는 점이다. 최재혁도 오너 일가가 아닌 다음에야, 그저 김 부장과 마찬가지로 자기 맡은 일을 하는 월급쟁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하지만, 최재혁과 같이 간악한 인사팀장과 마주하는 순간은 회사를 다니면서 딱히 겪고 싶지 않은 불편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미 넘치게 호형호제를 쉽게 하며 마치 간이라도 빼줄 듯이 친근하게 구는 인사팀장이라고 해서, 벼랑 끝에 몰린 김 부장을 구제해 줄 수 있었을까? 결국 자기 살 길 찾기 바쁘기는 매한가지라, 김 부장과 술자리를 가지고 형님 형님 이러면서 술잔을 채워줄 수는 있었겠지만, 결론은 같았을 것이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글을 쓰다 보니, 대기업 인사팀에 대한 불만을 대폭발 할 작정으로 시작했으나, 결론은 '그저 회사에서 맡은 일을 하는 같은 처지'라는 연민 어린 결론에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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